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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Dec 25. 2020

엄마의 엄마가 그리울 땐 어떻게 하시나요

그녀에게






유난히 지치는 하루였다.

영상 6도, 미세먼지 농도 보통, 어제는 쉬었던 붕어빵 사장님 출근 완료, 바로 도착한 버스, 연속되는 파란불, 정확한 시간에 찍은 출근 도장, 적당히 분주한 시간. 무난한 모든 것들 틈에서 소외된 건 유난스러운 나뿐인 것 같았다.


아니다.

이건 기억 왜곡이다. 영상 6도도 겨울이긴 마찬가지였고, 미세먼지가 없는 대신 비가 내렸고, 붕어빵 사 먹을 천 원이 없었고, 출근하기 싫은 몸을 끌고 억지로 파란불 켜진 횡단보도를 뛰었고, 그놈의 “화장실 어디에 있어요?” 라고 묻는 손님들에게 “화장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셔야 하고요. 비밀번호는 땡땡땡땡이고요. 휴지 필요하시면 문 앞에 휴지 가져가세요.” “네? 비밀번호가 뭐라고요?” “땡.땡.땡.땡이요”를 한 서른 번쯤 반복했을 참이었다.


솔직히 너무 고단했다.

‘아홉 수 때문인가?’ 역사 깊은 미신 핑계를 대보다가 내뱉지 못한 숨이 위까지 자리를 차지했는지 배고픔마저 잊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교복을 입은 소녀들을 바라보며 ‘좋을 때다.......’ 따위의 생각을 함부로 하기도 했다. 부럽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막을 정도였다. 열아홉 살이 스물아홉 살보다 덜 힘들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이다. 썩지도, 재활용도 되지 않는 생각들은 정말이지 처치 곤란이었다.  


감정의 싱크홀에 빠져버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조금만 뛰어오르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머니에 가득 담긴 감정들이 너무 무거워서 힘에 부쳤다. 핸드폰을 꺼내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뭐라고 쓰지? 처음부터 싱크홀 얘기를 하면 너무 무서울 테니까 안부를 먼저 물어야겠다!’ 지난 스물아홉 해 동안 배운 사회성이란 이런 것이었다. “뭐하니 친구야?”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가, 족같은 회사에 다니는 친구 S에게 제일 먼저 답변이 왔다. S는 오늘도 화목한 분위기를 맛깔난 욕으로 설명해주었다. 친구 Y는 ‘애’이기도 ‘새끼’이기도 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생명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친구 J는 배달의 민족답게 와플을 시키고 빔프로젝트를 연결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숫자 1을 너무 사랑한 친구 E는 여전히 과묵했다.


우리는 공중에 떠도는 낱말들을 묶어 얘기했다. 나는 ‘모두가 잘  살고 있군!’ 내심 흐뭇해한 뒤 깨달았다. ‘아차, 나 지금 싱크홀에 갇혀있지’ 친구들의 사연을 듣느라 구해달라고 말하는 걸 까먹은 것이다. 어쩌면 친구들을 내가 갇힌 싱크홀에 끌어들일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벼워지기 위해  친구들의 주머니를 무겁게 할 수는 없었다.


‘아, 오늘은 정말 누구에게라도 얘기하고 싶다.' 도와달라고 말하면 당장에라도 달려와 손을 내밀어줄 친구들이 분명하지만, 혹여나 내 감정이 그들을 부담스럽게 하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살은 찌고 마음은 쪼그라든다.


얘기할까 말까 여러 번 망설이는 사이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겨우 딛고 서 있던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나는 미끄러지듯 더 깊은 지하로 떨어지고 말았다. 간신히 보이던 하늘은 이제 점처럼 아득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소리쳐도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지하 500미터쯤 되는 것 같았다. 부랴부랴 핸드폰을 꺼내 보았지만 지하세계까진 와이파이가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울보 경력 29년, 나의 주특기를 쓸 때였다.


그때였다.

기적처럼 와이파이 무지개가 한 줄 떴고 저 멀리서 날아온 엄마의 파랑새가 메시지를 전달해주었다.


「퇴근하고 엄마 일하는 백화점에 와. 엄마 쉬는 시간에 같이 저녁 먹자. 뭐 먹고 싶어?」


순식간에 마음속 감정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한결 가벼워진 나는 파랑새의 등에 올라 단숨에 엄마에게 날아갔다.           





30분도 되지 않는 시간은 하고 싶은 말의 반도 꺼낼 수 없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마음을 위로받는 데는 충분했어. 엄마 앞에 앉아 두서없이 조잘거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순풍이 불더라.


그날따라 왜 그렇게 외로운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어. 무슨 얘기를 떠들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웃긴 건 그날 엄마는 우거지 감자탕을 먹느라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근데 난 있잖아, 엄마가 앞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어.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내 마음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거든.

 엄마는 1절을 끝내고 2절을 시작하려는 내 말 사이에, 간주처럼 “에이, 오늘은 우거지가 덜 들어가 있네. 원래는 넘치게 들어있는데. 에이.”라고 말했어.


난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2절 그리고 조금 긴 3절의 이야기를 시작했지. 그때마다 엄마는 “우거지가 왜 이렇게 적게 들었지.......” 란 말만 반복하는 거야. 엄마는 아쉬워하며 투덜거렸지만 맛있게 우거지 감자탕을 먹었어.


그리고 난 여전히 엄마의 정수리를 프롬프터 삼아 떠들었지. 그때 엄마는 조용히 내 밥공기에 우거지와 고기를 올려주었어. 그런 엄마를 보며 얘기를 멈췄던 것 같아. 도저히 젓가락으로 깨작거릴 수 없는 양이었어.


나는 우거지와 고기, 밥을 수저로 떠서 한입에 먹어버렸어. 푸짐하고 고소하고 맛있었어. 국물도 떠먹었어. 뚝배기 안의 국물은 여전히 식지 않고 따뜻했어. 이번엔 깍두기가 먹고 싶어 졌어. 그리고 깍두기를 씹어 먹으며 말했지.


“엄마 깍두기 먹어봐. 되게 맛있다.”

조금은 웃음이 나왔어. 고단했던 하루의 마무리가 맛있는 깍두기라는 사실이.


오늘 나의 하루가, 평소엔 가득 들었던 우거지가 오늘따라 조금 덜 들어갔을 뿐 별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 우거지가 많든 적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 어쨌거나 맛있는 우거지 감자탕이었거든. 그리고 생각했어. 엄마의 무심함이 꼭 뚝배기와 닮았다고.

 

엄마는 쉬는 시간이 끝나간다며 부랴부랴 올라가고, 나는 엄마가 사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바게트를 들고 백화점을 나왔어.


비는 어느새 멈춰있었어. 아직 마르지 못한 촉촉한 땅이 아니었다면 비가 온 줄도 모를 만큼 유난스러웠던 비는 소리도 없이 가버렸어.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어. 겨울밤의 젖은 바람이 가슴에 들어왔어. 시원했어.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다. 엄마가  곁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생각했어. 엄마가 없는 삶은 상상할  없었어. 그런데 갑자기 이상하게도 아침부터 참았던  눈물이 이제야 터져 나왔어. 갑자기 너무 슬픈 생각이 들었거든.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순간이 있었을 텐데. 엄만 그때마다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참았을까......?


엄마는, 엄마가 없잖아.......        





엄마는 가끔 맥주 한 병을 들고 내방 문을 두드렸다.

엄마는 늘 문턱에 앉았다. 나도 굳이 방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하지 않았다. 엄마의 한숨을 듣는 게 무서웠다. 엄마의 고단함을 듣는 게 어색했다. 엄마는 그런 딸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안주도 없이 한 잔 두 잔 혼자 그렇게 조용히 홀짝일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오늘 백화점이 얼마나 바빴는지, 진상 손님은 또 어땠는지, 매장 매니저는 어떻게 엄마를 힘들게 했는지 드문드문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먼저 엄마의 하루를 묻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녹초가 된 엄마의 목소리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내 모습을 숨기는 것밖에 없었다. 엄마를 위로하는 방법은 어디서도 배우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맥주 한 병만큼의 위로도 주지 못하는 딸이 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엄마가 일주일 내내 ‘1박 2일’만 볼 때도 있었다. 퇴근 후 곧장 화장실로 가서 한참을 뜨거운 물로 밖의 먼지를 털어내고 이불속에 파묻혀 ‘1박 2일’을 켜는 것이다. 까나리를 뿜는 복불복 장면이 나와도, 기상 미션을 할 때도, 이수근이 웃통을 까고 몸개그를 해도 엄마는 그저 지나가는 장면들을 묵묵히 보고 또 봤었다. 나는 그때도 엄마를 애써 외면했다. 무신경한 딸은 그 당시 엄마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엄마가 맥주 한 잔에 의지할 때, 주야장천 ‘1박 2일’만 볼 때, 그리고 내가 모를 엄마의 수많은 외로웠던 날들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때 엄마도 나처럼 유난히도 고단한 하루를 보낸 건 아니었을까. 누구에게라도 그 짐을 털어놓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엄마의 엄마가 그리웠던 날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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