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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May 16. 2021

다시 이곳에.

자카르타에서 듣는 노랫소리

 



 다시 이곳에 왔다.

아니 올 수 있었다, 가 맞겠다.

지난 1년 동안 이곳에 오기 위해 늘 동동거렸으니까. 원하면 언제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길을 내 의지가 아닌 다른 이유로 가로막혀 오도 가도 못 한 시간을 보냈다. 많은 이들에게도 그랬겠지만 내게 2020년은 부산스럽게도 멈춰있던 한 해였다.



 몇몇의 친구들이 내가 가는 여정을 '부럽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이 '부러웠'다. 만약 내게도 그만두지 못할 만큼 그럴듯한 직업이 있었더라면, 만약 나의 꿈이 한국에도 있었더라면, 만약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내 곁에 있었더라면 나는 굳이 이 방향으로 걷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곧잘 떠나지만 마음 깊숙이에서는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다섯 살 어린아이처럼 친구의 장난감을 빼앗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내 선택으로 이어진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의 삶의 좋은 면만 콕콕 빼와서 갖고 싶은 그런 마음. 욕심은 끝이 없다.



 자카르타에 온 지 삼일이 되었다. 하필이면 29층 높은 방을 배정받아 창밖만 바라보는 라푼젤 신세가 되었다. 때맞춰 오는 식사, 혹은 식량을 주러 오는 사람을 제외하면 나는 줄곧 혼자다. 이 시국에 외국에 나가는 게 왠지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친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알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현재 자카르타의 한 호텔에서 자가격리 중이다. 뒤늦게 내가 이곳에 있는 걸 알게 된 친구들이 어찌 된 일인지 물어왔지만 내가 왜 이곳까지 왔는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부럽다.'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였을까.


 

 입국은 할 수는 있을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그놈의 코로나에 걸려버리면 어쩌지, 걱정도 됐고 무엇보다 경유에 경유를 거쳐야 하는 여정이 멀게만 느껴졌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와 서류, 받아야 하는 검사와 검사를 준비하느라 진이 빠져버렸나 보다. 호텔에 도착하고 새벽 2시께쯤 일어나 또 한 번의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음성이었다. 첫날에는 내리 잠만 잤다. 너무 피곤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그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앉아만 있었을 뿐인데 고맙게도 창밖은 하늘에서 땅으로, 낮에서 밤으로 바뀌어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무슨 노래인지, 노래라고 부르는 것은 맞는지 어느 것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작년 롬복에 있을 때 줄곧 듣던 노래였다. 아마 이슬람 기도문인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다. 노래는 마치 알람처럼 길리에도, 롬복에도 그리고 이곳 자카르타에도 울려 퍼졌다. 새벽 다섯 시쯤이었을까. 처음엔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들리는 노래가 당연히 녹음해놓은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매번 다른 사람이 시간에 맞춰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뒤로 나는 묘한 울림을 느꼈다. 성스럽다고 하기엔 과하고 그 종교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하기엔 막연하지만 늘 같은 시간에 곳곳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분명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내가 낯선 곳에 있다는 게. 그리고 익숙한 곳에 왔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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