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올해 3월은 유난히도 길게 느껴졌다. 겨울처럼 춥고 때론 눅눅했다. 하지만 봄이 오는 것은 빛이 번지는 것처럼 고요하지만 한순간이었다.
아이는 봄바람을 맞으며 곤히 자고 있다.
어린이집은 결국 가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사실 결정은 엄마인 나의 몫이었다.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했다. 아이는 엄마와 함께 있기를 원했다.
반면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가 없는 시간들을 보내며 온전히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 안으로 등 떠밀어 넣으면서도 그게 내 아이를 위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지친 엄마보다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그렇게 하니까. 보편적인 테두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늘 어딘가 떠돌던 나처럼이 아닌 '보통의'아이처럼. 때가 되었으니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와 어쩔 수 없이 떨어지고 한 달 내내 눈이 짓무를 정도로 우는 아이를 보며 결심이 필요했다.
고민은 길었지만 결정은 한순간이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을 나오게 되었다. 한동안은 겉옷만 입으면 그 길로 어린이집에 가는 것인 줄 알고 불안해하며 외출 자체를 거부했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 친구들과 재밌게 놀자!"라는 말은 아이에게 두려움이 되었나 보다. 아이에게 '재미'란 어린이집과 연결이 되어 '재미'라는 말 자체도 싫어했다.
아이와 어린이집에 가기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바다에 가서 갈매기에게 과자도 주고 공원을 함께 뛰고 등산을 하고 꽃을 만지고 얼굴을 더 많이 비볐다. 내 마음에도 행복이 차올랐다.
아이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엄마를 신뢰하는 강한 마음이 정면으로 느껴졌다. 그 순간 불안했던 내게 따뜻한 봄빛이 드는 것 같았다.
아이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다행이다. 행복하다.
이 작은 아이도 언젠가 내 품을 떠나겠지. 엄마보다는 친구들과 연인을 더 많이 찾겠지.
다신 돌아오지 않을 오늘이 더없이 소중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