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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공원 Jun 28. 2022

풀장 가득한 위스키

<기승전위스키>


여름 내 나와 쥐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25미터 풀장을 가득 메울 만큼의 맥주를 마셔 없애고 , ‘ 제이스 바’의 바닥 가득히 5센티미터 두께로 땅콩 껍질을 흩뿌렸다. 그리고 그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따분한 여름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유튜브에서 떡볶이프렌차이즈로 성공한 창업가의 인터뷰를 시청했다.  그의 집 구석구석을 촬영하며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촬영이 진행됐다. 성공한 창업가의  서재, 드레스룸 등 낱낱이 보여주다 다다른 곳은 베란다였다. 베란다엔 작은 풀장을 가득 울 만큼의 와인병이 일렬종대 놓여있었다.

촬영팀이 “ 아니 이걸 사장님이 다 드신 거예요? 왜 이러시는 거예요” 묻자

 “ 그냥 이 정도 하다 보면 제정신으로 못 견딜 구간이 와요. 했다. 순간  최근 종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 나온 장면이 뇌리에 스쳤다. 남자주인공 구 씨의 방에 엄청난량의 소주병이 놓여있던 씬이다.



어쩌다보니 글보다 투자를 더 오래했는데  로나 때보다 더 지독한 최근의 시장을 이어가며 누군가에게 소리 치고 싶었다.

"다들 제정신으로 어떻게 사는거야 ?!"

최악에 최악에 최최악을 고려한 각종 필살기를 섭렵했다 생각했지만 포지션 잡기를 교묘히 방해하는, 서서히 말라죽이는 식의 김새는 시장에서 비중 관리도, 거래도 겁이났다. 멘탈은 덩달아 요동치며 긴장하기 일쑤였다.


쯤 어른이 되면 멘탈메무세를 더 단정히 가꾸는 대단한 상비 책이 있을 것 같지만  그나마 찾은 방법은  단순하고 유치한 방법들이다. 세상의 온갖 귀여운 것으로 뇌를 도배하기, 걷기, 친구, 술 정도가 되겠다.



힘들때 무슨 책 읽어요? 물음에 "귀여운 그림책을 보거나 귀여운 케릭터 전시 , 동물들을 뇌에 왕창왕창 우겨넣어요!" 신나게 답한다. 대답하면서 떠오르는 동물들만 봐도 신이나니까!

너무 힘들 땐 사실 글자가 안읽힌다.  하얀 바탕에 가지런히 놓인 글자들은 하얀 허공에  떠다니는 작은  벌레따위로  인식되며 그 작고 오밀조밀한 벌레들을 아무리 눈에 잡아두려해도 제갈길로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랄까?  당장 읽은 글자가 눈에서 뇌로 가는 기전이 고장난 사람처럼  버벅인다.  이런 연유로 그림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림과 글자가 만난 세계는 내게 새로운 귀여움으로 다가와 엉글어진 마음을 바로 잡아 주곤 했다.  귀여움한도가 부족하면 아얘 동물원에 가버린다.

 <나의해방일지>에서 염미정이  알콜중독자 구씨를  추앙하며  반복되는 현실에서 해방되 듯, 귀여운 것들을 추앙하며 해방감을 느낀다. 귀여움이 사람으로 치완되는 시기는 가끔 찾아오는 인생의 ~~축복기.


그러다가도 갈증이 나면 걷는다.  걷다가 길을 잃는것 방법이다. 길을 찾는데 몰두하다보면 근심이 사라지는 단순한 이치이다.  최근에 자청이란 작가의 <역행자>라는 책에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나온다. 같은 길을 다른 경로로 가거나 새로운 길을 걷고, 찾을 때 뇌가 급속도로 좋아 진다고 책의 저자는 말한다. 어제의 나는 계속 걷고 걷다 멍해질 때까지 걸었다.  기여코 지하철을 잘못타는 참사를 격었으며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있던 뇌가 즉시 스트레스를 잊고 길을 찾는데 몰두했다. 어렵게 집에 도착하면 급격한 피로 감으로 꿀잠까지 이어지는것은 덤이요.!


때론 사람을 붙잡고 늘어지며 타인의 안락한 뇌에  무임승차 하고 싶을때도 있다.  승차 가능한 친구에게 연락을 취한다.  근엔 친구이자 스승에게 긴급한 연락을 취했다. 투자 인생20년차 친구의 경험담으로 다시 주섬주섬 멘탈을 일으켜 세웠다.


 내가 투자 3,4년차일 때 그는 10년이훌쩍 넘은 투자자였다. 과거의 내가 힘들어 할땐 " 투자, 주식이야기 꺼내지 말자." 단호하게 선을 긋던  그였는데 이제 그 연유를 조금 알겠다. 지금에와서 나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나도 할말은 없기 때문이다. 투자는 어짜피 자기 마음대로 하는 구간이 있고, 2-3년에서 5-10년차 까진 자신이 경험하고 길을 찾아야 하기때문이다. 아무리 연애 개발서를 읽어도 내 진짜 모습은 쉬이 바꿀수 없는 이치와도 닮았다. 사랑에 아픔을 격고 변화 하는 사람, 포기하는사람도있다. 어쩌면 사랑하는이와 자신의 살점을 내어주며 퇴색되어 가는 과정과도 흡사하다. 그러니 내가 뭐라고 .... 입을닫고 우아 잘하시네요!  하는수밖에.



삼천포로 빠졌는데,  '아니 그래도 제정신으로 못 살 것 같을 때? 더더더- 느슨해지고만 싶을 때는 어찌하나!!? '에 답은 

술을 마신다.ㅋ

마시긴 마시는데 바뀐 부분은 과거의 엄청난 알콜의 양적 승부에서 질 적, 향 적 즐거움으로 넘어왔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의 양상에는 K라는 친구가 일조했다.  양적 알콜의 순간을 함께 보낸 사이이며 인생의 따분한 정체기, 투자의 암흑기를 견뎌준 친구다.  k와 나는 닿아야 할 곳가기위해 신경이 곤두선채 긴 통로에 놓여 있었고,  그 버석버석한 구간을 통과하기만을 고대 했었다.

둘 중 누구라도  어둠에서 조금 나아가는 순간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터널이 너무 지긋지긋했기 때문에  한발짝 나간다는데 붙잡는 용기또한 사치같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사랑에 비겁하고, 현실에 용감했던 k와의  터널안이 사랑의 한 복판이었다.



이제는 많은 양의 술로 지금을 잃기싫어서 위스키를 마시거나 한두 잔의 느슨함과 유유함을 즐기고 싶다.

어쩐지 제정신으로 살기 힘든 순간이,돌아보면 해갈의 시작이었을 테니까...대성한 창업가도 소득구간 중 ' 천'의 구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하지않나. 투자로 대성한 친구도 미친듯 차트를 돌리던 그때를 그리워 하겠지...<나의 해방 일지> 구 씨도 염미정도 술병을 쌓아 올리던 그때가 해방의 시작이었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풀장 가득한 맥주가 그리워 저렇게 글을 썼을 거야 ...





그래서 이번 주는 친구네 위스키집 가서 귀여운 동화책 보면서 마셔야지...-_-

(기승전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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