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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페디엠 Apr 01. 2024

부산 가시나 서울 가다.

부산 가시나의 서울 상경 스토리 01

나의 20대는 낯설었지만 화려했고, 외로웠지만 행복했다.


젊었을 적 시끄러움이 좋았다.

그냥 그 사이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았다. 

함께 그냥 즐거웠다.

봄에 피는 벚꽃을 보며 석촌호수에서 마시던 초코맛 맥주도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려 잠시 쉬며 마시던 맥주도

그렇게 소소한 일상이 즐겁고 좋았다.

하루의 힘듦을 털어놓으며 다음날 출근준비를 하던 그때가 좋았다.


무슨 소재든 한번 피운 웃음꽃은 지지 않았다. 

그것이 젊은 날의 내가 살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부산에서 상경한 부산가시나는 서울에서 외로울 줄 알았는데, 

그렇게 또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들과 서울에서 터를 잡으며 지내고 있었다.


부산을 벗어나본 적 없는 겁쟁이 아가씨가 감히 부모님도 없이 혼자 서울 생활을 해보겠다고 올라갔다.

처음에 부모님이 반대하였으나, 아빠는 한번 해보라며 나를 믿고 보내주셨다.

(엄마도 매일 눈물로 지새우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사실 처음 서울로 가게 된 계기는 그 당시 은행 영업하는 사람을 뽑는데, 나는 은행이란 말에 너무 솔깃하여 무작정 서울로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그리고 다니면서 알았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한번 해보겠다고 올라갔는데 뭐라도 끝을 보고 가야지. 그냥 이렇게 내려가면 나는 패배자인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이때 아빠가 대학원 다녀라고 할 때 다닐걸.. 하고 솔직히 후회했었다.)

영업을 함께 하던 동기가 관리직으로 발탁이 되었다. 너무 축하해 주고 잘되었다고 응원해 주었다.

배가 아팠냐고? 아니? 

그건 동기가 열심히 해온 결과이고,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어떤 것을 해야겠다는 완전한 목표는 없었다. 


그냥 항상 내가 무얼 해야 할까. 내 목표는 무엇일까. 

항상 물음표였기에.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거 하나는 확실하다. 

나의 모토는 현재를 즐겨라. 카르페디엠이었으니까.


그리고 어느 날 이 일에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영업을 못하지 않았다. 실적을 내지 못한 적도 없었고, 팀장이나 부장이 더 해라고 한 적도 없었다. 그냥 갑자기 어느 날 나에게 회의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만두고 무얼 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대로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그건 또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고집이 생겼다. 무언가 해내고 내려가야겠다고..

엄마 아빠도 보고 싶고 낯선 타지였지만 무엇보다 나를 믿고 보내준 부모님께 실망감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이 악물고 이력서를 내보았다. 나의 전공을 살려서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 머지않아 다시 취업에 성공하였다. 

서울의 중심지에 있는 곳에서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였다. 작은 전시회사 총무팀에서 회계업무와 총무업무를 배우며 말이다. 말이 좋아서 가족 같은 회사였다. 정말 가'족'같았다. 그 당시 사장님, 그리고 총무팀장(노처녀), 그리고 디자이너와 현장 전시를 도맡는 대리.

특히 사장님과 팀장님은 정말 가족 같았으나, 나는 낯선 이방인.. 젊은 여자였다. 

사장님이 이뻐할까 봐 쉬운 일 외에 어려운 일은 주지 않았고, 칭찬받을 거리를 주지 않았다.

그럼 보통 힘들어서 그만둘 거라 생각했나 보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씩씩하게 버텼고, 3개월 정도 다녔다. 그런데 영업을 하다 오랜 시간 앉아있는다는 게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월급이 작았다. 열정페이로 다녀라고 했다면 지금이었다면 '개뿔~!'이라고 했겠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배워야 하는 단계였으므로, 기꺼이 작은 월급으로 다녔다. 

3개월 다니면서 내가 앞으로 이 일을 길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한 결과 오래 다니는 것이 나에게 행복할 수 없다는 결과에 달합니다.

그래서 그 길로 사직서를 멋지게 내버리고 다시 백조가 됩니다.


내가 잘하는 것, 나를 필요로 하는 곳.

그곳이 어디일까를 고민하며 다시 이력서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 취업에 성공합니다.

그런데 1년 반 만에 실직자로 전락하게 될 일이 생기는데...

2008년... 금융위기로 지점들을 정리하며 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정리를 시작하는데..

2년이 되지 않아 계약직이었던 나는 다시 한번 위기를 겪게 된다.

그렇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때마침 다른 회사에 경력직을 뽑는다고 하여 지원하였다. 

결과는 합격! 

그런데 보통 이직을 하면 연봉을 높여간다고 하지 않는가? 

여긴... 통보.. 이 만큼만 줄 수 있단다...

능력 되면 올려준다는데 그 말을 순진하게 나는 믿었다..

함께 들어온 사람은 나까지 6명.

결론은 2년이 되어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위기에서 계속 살아남는 사람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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