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버님 제사 진짜 안지내실 거예요?"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3년째입니다. 아들도 아니고 며느리가 시아버지 제사를 시어머니에게 안 지내실 거냐 따져 묻는 이 상황은 과연 어찌 된 것일까요?
결혼하고부터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딱 10년째 되던 해 아버님이 앓던 폐암으로 하늘로 가셨습니다.
하필 코로나가 기승일 시기라 임종도 가족 구성원 모두 지키지 못하던 상태였고 막내며느리는 돌아가신 아버님만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평소 말씀도 많지 않으셨고 무뚝뚝한 옛날 아버지셨지만 속정은 세상 누구보다 깊으셨지요. 철이 없다고 해야 할지 그냥 본인만 생각하는 것을 타고난 사람이라 생각해야 할지 그런 어머니를 평생 모시고 살라고 막내아들에게 부탁하고 가시느라 많은 고민을 하셨던 아버님.
삼우제때 유산분쟁으로 이제는 큰아들 큰딸은 어머니와 거의 절연한 듯 지내 첫제사부터 자식들 함께 모인 제사상은 받아보지 못하셨습니다.
연초에 돌아가셔서 첫 상을 구정 차례로 받게 되셨는데 떠나버린 두 자식 때문에 어머니가 정신 못 차리실 상태라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천주교로 개종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막내며느리 혼자 인터넷 봐가며 상을 마련했습니다.
병원에서 마지막에 물도 못 넘기셔서 수액으로 버티셨고 돌아가시기 전 전날 마지막 기력이 있을 때 영상통화로 뵈었던.... 의식이 꺼져가는 상황에서도 아끼시던 맏상제 손자의 "할아버지" 하는 목소리에 가까스로 눈을 뜨시고 안타까움에 슬퍼하시던 눈을 잊을 수가 없어 할 수 있는 만큼 잘 잡숫고 가게 하고 싶어 그런 마음으로 상을 차렸지요.
그리고 추석과 첫제사가 지나고 시어머니가 담도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이 어른도 평생 고생하셨고 내 자식들은 절대 그럴 리 없다며 호언장담 하셨지만... TV 드라마보다 더하게 자식들이 등을 돌린 상태인데 속이 말이 아니셨겠지요. 그렇게 또 한바탕 큰 바람을 휩쓸고 지나갔고 몸 아픈 사람 있는 집에 제사를 지내면 안 된다 어머니 요청하에 제사를 쉽니다.
명절에 제사에 챙길 상없는 며느리는 편하기야 했습니다. 큰방 한구석에 놓은 제기를 담은 함과 병풍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뜨끔 하긴 했지만요.
시어머니 수술 후 1년이 지나고 친정 엄마가 그러시더군요. 이제 너희 시어머니도 살만 하시고 또 너무 빨리 제사를 접는 건 며느리인 너한테 안 좋을 수 있다고. 며느리인 저에게 안 좋은 것은 나중 문제이고 저는 왜 시어머니가 제사를 지내자 안 하시는지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 남편이시니까요.
"어머니 아버님 제사 안지내실 거예요?"
차례상도 없는 추석이 지나고 물었습니다.
"생각 안 해봤다!"
도리어 묻고 싶더군요. 살아계신 어머니가 아버님 제사를 생각 안 하면 누가 생각을 해야 하는지... 그러면서 "죽은 사람이 뭘 아냐? 나는 제사 지내지 말아라!!"
아! 정말이지 이런 대화가 지금 상식적으로 가당키나 한 걸까요? 그건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해 보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꾹 참았습니다.
효자둥이 남의 편에게 며칠에 걸쳐 시어머니 욕과 더불어 이야기를 했습니다. 도무지 왜 그러시는지. 무엇이 문제인 것인지. 그리고 이건 시댁의 일인데 성이 다른 내가 나서야 하는 일인지에 대해서요.
유산 분쟁 시 시어머니가 큰며느리에게 "아버님 제사는 어쩔 거냐?" 기가 차다는 눈빛과 말투로 동서라는 사람은 그러더군요. "어머니가 살아계시니 그건 어머니가 하셔야 하고 저희는 도와야지요." 처음으로 " 와 맞는 소리를 할 때가 있네!" 하며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물론 이 사람은 '사람'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시아버지가 아프셔도 거동 못하실 적도 한 번도 방문하거나 전화하지 않았으니까요. 집안의 대소사는 큰아들 등뒤에 숨어서 올림픽 마냥 참석에 의의를 두었으니까요.
그렇지만 한 번도 단 한 번도 시어머니는 제사상을 주관하지 않으셨지요. 이유는 본인 몸이 아파서, 누구네집은 며느리가 다해와서, 결정적으로 제사상에 올라가는 산적 같은 음식을 시어머니가 시도도 해본 적이 없어서가 제일 큰 이유일 겁니다.
몇 달을 제가 옆에서 옆구리 찌르고 시어머니는 또 가여운 막내아들에게 네가 결정해라고 미루는 가운데 남편이 나름 용단을 내립니다. 제사는 지내되 이 사람 일하느라 힘드니 배달을 시키자고. 그리고 배달업체를 고르는 임무는 또 제가 맡습니다.(배달음식으로 수고를 돌려준 것은 고맙지만 업체선정도 효자가 끝까지 했었어야 하지 않소? 여보?)
그렇게 다시 챙기게 된 아버님 제사.
요즘은 참 좋은 세상입니다. 집에서 준비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갈하고 모양마저 이쁘게 도착이 되었습니다. 제사 끝내고 보니 맛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일 정신없는 토요일 풀로 3시간 수업 도중일 때 '아뿔싸' 하고 찾아놓은 업체에 주문을 하다 보니 고기 산적이 빠져있었습니다. 다행인지 어쩐지 고기산적만 며느리가 챙길 수 있었습니다.
친정엄마 말씀이 제사상에 올라가야 하는 음식은 네모 반듯해야 한다고..... 그렇게 첫 배달음식으로 차린 제사가 지나갔습니다. 혹여 상이 초라해 보이면 아버지 서운해하신다 막내아들이 과일을 더 챙기고 일찌감치 배송시킨 상주곶감을 올려 조금은 죄송함을 덜었습니다. 몸은 덜 힘들었지만 내내 마음이 쓰이네요. "우리 아버지 배달음식 안 좋아하시는데"라는 남의 편의 이야기에 "그러면 다음엔 아드님이 직접 하세요."라 응수하는 나의 대화 중에 그래도 우리 남편이 나 미워서 하는 이야기 아니고 저 또한 아버님께 손수 상 차려드리지 못한 죄송함이 남습니다.
제사를 끝내고 얼마 들었냐고 돈 주시겠다는 시어머니 말씀에 괜찮다고 그냥 두시라고 하려다가 얄미운 마음에 많이 주시라 했지요.
"얼마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30만 원 준다. 나머지는 네가 보태라."
아.... 모르겠습니다. 결혼도 처음이고 시어머니 계신데 제사를 지내는 사람도 주변에 내가 처음이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아버님께
아버님 하늘나라로 가신지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평소 배달음식 싫어하시던 아버님께 제사상을 통째로 배달시키려니 막내며느리 마음은 편치 않네요. 12년간 암을 앓으시면서도 멀리 곡성까지 아버님 부모님 산소를 해마다 다녀오셨던 아버님께 참으로 죄송합니다.
할 수 있는데 손 딱 떼고 있는 어머니가 미워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누가 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건지 제 변명만 생각합니다.
아직도 철부지 막내며느리 그래도 너무 미워 마시고 하늘나라에서 우리 아이들 아버님 막내아들 잘 돌봐주세요. 아버님
며느리가 만든 고기산적 제외하고 다 네모 반듯합니다. 아버님 이번만 너그러이 잡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