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도 매일 시험에 든다.
“어머니,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몇 년 전 엄청난 화제의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나왔던 입시 코디네이터의 대사. 그렇다!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 내 돈 내고 보내는 사교육 시장은 이런 믿음이 필요하겠다.
학원을 개원하고 제일 큰 설렘과 동시에 스트레스는 바로 입회상담이다.
'주님 오늘도 시험에 들지 말게 해주옵시고...... 아니지 시험에 들어야 회원이 생기는데?'
상담하러 오시는 어머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원장도 긴장은 어쩔 수 없다. 급 들이닥치는 학부모님들도 있으나 우리 학원은 입회 전에 테스트가 동반되기 때문에 예약이 잡혀 있는 것이 대다수이다. 예정된 날은 시상식에 나가는 연예인 마냥 모든 것이 고민스럽다. 엄마들 모임에 나가면 그 학원 원장님은 화장이 너무 과하더라 말투가 어떻다더라 혹은 연세가 너무 많으신 선생님이시더라 하는 이야기들..... 속이 상하긴 하지만 어찌 되었던 나의 일은 교육사업이니 소비자의 호불호를 잘 파악해야 한다.
나름 갖추어 입고, 상담실 청소도 좀 더 깨끗하게 한다. 입꼬리도 더 올라가게 신경 쓴다. 그러고 나서 밝게 웃으며 정말 혼신을 다해 상담을 한다.
“어머니 우리 아이는요~.”하면서 어머니 제 이야기 들어보세요. 로 시작하는 레파토리를 풀어 놓는다. 그리하여 이런 솔루션을 제공하려 한다.라는 나의 상담에 “전적으로”라는 강한 악센트는 감히 섣불리 내뱉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교육은 강매하는 상품이 아니고 그런 회원은 오래두고 가르칠수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라면 신념이기 때문이다. 상담후 즉각적인 호응이 있으면 그리고 우리 학원 학생으로 입회하면 뛸 듯이 기쁘고 그날은 하루 종일 "경사 났네 경사가 났어"~장원급제를 한 기분이다.
그렇지만 세상살이가 늘 맑음만 있겠는가...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 실망감과 허탈감은 머리 위로 먹구름을 달고 사는 하루를 만든다.
먹구름만 만들면 좋겠다만, 그 끝은 항상 날카로운 천둥번개가 동반되니 그 번개의 희생양은 다름 아닌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이다. 그중에서도 엄마 눈치 못 알아채고 언제나처럼 천진난만하게 늘 하던 짓하던 큰아이. 결국 눈이 돌아가 사자후를 내지르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를 보며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멀었다. 이렇게 감정 컨트롤을 못해서 무슨 대업을 이루겠냐 하는 자격지심과 반성의 시간을 보낸다.
“엄마는 왜 학원에서만 친절해?” 그러게나 말이다. 학원에서는 지킬 박사요 너희와 있으면 마음속 하이드가 튀어나와 쑥대밭을 만드니...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작가님도 아마 후대에 내가 태어날걸 아시고 그 책을 지으셨나 보다.
<학원에 보유중인 문학동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책표지 사용>
‘시간이 약'이라고 했다. 반년정도의 시간이 흐르니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상담 후 그냥 가신 어머님들 상대로 아무렇지 않게 웃음 이모티콘을 과하게 사용하여 입회를 권하는 문자를 보낼수 있게 되었다. 읽씹이던 거절이던 쿨하게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고, 면전에서 불쾌한 일들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내가 되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또 선택의 몫은 내가 아니니 너무 마음 쓰지 말자 라며 스스로는 토닥이고 또 다른 기회에 실수하거나 후회하지 않게 오늘 적은 상담일지를 보면서 바둑기사가 그날 대회를 복기하듯 머릿속에 오늘의 상담을 재생하는 여유도 생겼다.
어머니 제가 가르치는 독서와 논술은 근력 운동이랑 비슷해요.
차근차근 아이의 공부 근육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어머니 학습의 가장 기본인 읽고 쓰는 것에 공을 들여 주세요.
우리 아이가 단단히 자랄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을 허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