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님의 전화가 이른 아침부터 걸려오는 날이 있다. 운영시간은 오후 1시 이후인데 아침부터 그것도 내 아이들 등교를 시키고 엄마의 혈압과 심박동이 평온을 찾을 때쯤 느닷없이 걸려오는 전화.
"네 어머니 안녕하세요. 요즘 우리 00가 좀 달라진 것 같죠? 네 ~ 대답도 잘 안 하고요."
"네 어머니~그분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렇다! 그분이 찾아오셨다.
사춘기
육체적ㆍ정신적성인이 되어 가는 시기. 성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여 이차 성징이 나타나며, 생식 기능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이성(異性)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춘정(春情)을 느끼게 된다. 청년 초기로 보통 15~20세를 이른다.
유의어로는 청년전기 춘기발동기 등이 있다.
표준국어 대사전 참고
귀엽지만 손이 많이 가고 엄마 체력을 쏙 빼먹는 시절을 지나 등하교가 스스로 되는 시기. 이제 엄마가 교문 앞에서 목 빼고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시기. 그래서 이제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기며 친구 엄마들이랑 수다 좀 떨만하다 싶으면 이제 엄마의 정신세계를 심난하게 만드는 사춘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큰 아이 5학년 학기 초 학부모 총회를 가니 담임 선생님이 그리고 안내책자에 공통적으로 눈에 띄는 표현이 있었다."여름 방학기 지나고 5학년 2학기가 되면 아이들은 사춘기로 접어듭니다."여름 방학의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그 찬란한 개학 후에 왜? 어째서? 숨좀 쉬려는데 사춘기가 찾아오는 거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턱턱 막혔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들이 그렇게 통계 맞춤형 아이인 줄 몰랐다. 어쩜 2학기 접어들 무렵 그분이 오심이 보이더니 2학기 말에는 무언가 내가 알던 내 새끼가 아니었다. '어리고 귀엽고 엄마 말 잘 듣던 아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나의 귀염둥이를 그리워하며 아쉽고 슬펐지만 그래도 내 아들이니 같이 싸우기도 삐지기도 옥신각신 애랑 더불어 나도 사춘기를 앓고 지냈다.
내 자식은 그렇다고 치자, 남의 자식들은 어떻게 하지???
어린 학생들은 "이쁘다 이쁘다." "너 참 잘한다'"로 자신감의 날개를 달아주면 우선은 해결이 된다. 그러나 사춘기가 온 아이들은 그것이 아니다. 우선 들어서자마자 한숨을 쉰다. 어디 컨디션이 안 좋은가 싶어 이것저것 물으면 "피곤해서요." 그래 피곤치 아침부터 안 떠지는 눈 뜨고 학교에 가고, 수업 끝나 집에 가서 늘어지고픈데 엄마 등쌀에 떠밀려 학원을 뱅뱅 도니라 힘들지. 그렇지만 여기는 교육비를 내고 공부하는 곳이니 피곤을 먼저 집에다 보내야 하지 않겠니?라는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을 누른다. 아이 심기 거스르지 않게 이렇게 저렇게 또 구슬려가며 수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하원할 때 오늘 아주 잘했다고 오버해서 칭찬하면 '뭘 이런 걸로~'하며 무심한 듯 시크한 자세로 하원등록을 하며 집으로 사라지는 아이.
학원에 들어오면서부터 집으로 가고 싶다는 아이에게 열심히 하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이야기하면 "그래도 하는 것은 똑같다."며 그 말을 위로라고 하느냐는 눈빛을 날리며 더 이상 말 걸지 말라는 이야기를 온몸으로 뿜는 아이. 성장의 한 부분은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애기 애기 같은 초등학교 5학년의 눈빛이 말투가 벌써부터 무서운 어른의 한 모습을 담아가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안탑깝기도 또 애잖하기도 하다.
이런 정도의 춘기 발동의 그 모습은 그래도 말로 가능한 수준이니 아직 엄마와 선생님 어른이 무서운 걸 아는 정도의 성장통이라 귀엽게 봐줄만하다. 그러면 병으로까지 표현되는 중2병은 또 어떨까? 학원에 유달리 덩치가 큰 형제가 다닌 적이 있었다. 요즘 아이들의 영양상태는 좋고 또 워낙에 큰 아이들이 많지만 이 형제들은 부모님이 운동선수를 하셨나 싶게 키도 덩치도 컸다. (모르긴 해도 둘 다 100kg 가까이 되어 보였다.)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 이 둘은 학원엘 오면 난투극을 벌였다. 남매를 키우며 둘 사이의 애증의 관계를 봐왔고 세상에 안 싸우며 크는 아이들이 어디 있을까? 하며 엄마 마음으로 또 들어온 회원을 나가라고 할 수는 없기에 어디 가서 덩치라면 밀리지 않는 내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둘을 떨어뜨려 놓으며 수업을 하느라 정말 온몸에 기운이 다 빠지는 날들이었다.
그러다가 작은애가 먼저 못하겠다고 나가떨어지니(다행이다 내가 먼저 너를 나가라고 안 해서!) 형이 또 그 이야길 듣고 버텼나 보다. 어머니는 이미 결제를 하셨는데 아이가 카드를 들고 환불을 요구한다. 어머니는 라이딩으로 아이를 데려다주고 아이가 학원을 올라오는 그 짧은 사이 나에게 전화를 하셔서는 어머니가 도저히 못 말리겠으니 원장님이 잘 좀 구슬려서 기말고사까지만 버텨달란다. 그나마 독서와 글쓰기를 하니 국어 성적은 잘 나왔다신다. 두고두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때 어떤 말을 했어야 했을까? "어머니 댁에서도 통제가 안 되는 아이가 학원장 말을 얼마나 들을까요?" "우리 서로 안 지 2달째인데 제말을 들으려고 할까요? "라고 전화기에 대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또 그럴 수는 없기에 가슴에 불을 안고 아이와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카드를 흔들며 무조건 환불이란다. 지금도 생각하기 싫지만 아이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최초였지 싶다. 이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환불을 해주었다. 기뻐 날뛰는 그 녀석의 뒤통수에 주말에도 여기까지 라이딩해주시고 차 안에서 먹으라고 고기반찬에 도시락 싸주시는 엄마 생각해서 열심히 생활하라는 공중으로 흩어지는 말을 내뱉었다. 어머니가 신앙에 매달리셔서 아이들 교회 봉사까지 시키며 마음 고생하신 것을 전해 들었던 터라 마음이 더 안 좋았다.
이렇게 사춘기의 아이들을 대하는 요령도 학원장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니 관련된 영상이며 자료를 틈틈이 보며 사춘기 공부도 해야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갈등을 최소화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여기는 집이 아니고 나는 어머니들께 입금을 받고 이 자리에서 아이들의 사춘기와 마주해야 하는데 참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 영상에서 아이들의 사춘기는 외로움과 더 이상 내가 부모의 기쁨이 될 수 없다고 느낄 때 최고조를 찍는다고 했다. 아이가 판단하는 부모의 기쁨은 당연히 공부, 성적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들 스스로가 부모님의 기대를 채우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포기가 마음속에 들어앉을 때 사춘기의 불안함은 그렇게 표출되어 나온다고 했다.
나의 천둥벌거숭이 아들도 그렇게 매일 귀가 따갑게 물어보곤 했다."엄마 나 싫어하지?" "엄마는 나 백점 못 받으면 싫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이게 장난인지 애교인지 모르게 귀 옆에서 외치는 내 아이의 말이 사실은 자신을 놓지 말라는 절규였던가? 하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던 순간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전략을 좀 바꾸었다. 무언가 심기가 불편한 아이들에게 조금 더 솔직하게 물어보았다. 지금 마음이 어떤지, 여기는 공부하러 오는 곳인데 주어진 시간을 참고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선생님은 진단결과가 안 나오는 걸로는 크게 모라 하지 않지만, 책을 읽는 너의 모습이 성실하지 않으면 그것은 혼낼 수밖에 없다고. 피곤해하는 아이들 안마도 해주고 피곤할 땐 당 떨어지면 안 된다며 마이쭈와 새콤달콤 셔틀을 하며 그렇게 나는 너희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제스처를 티가 나게 보여주었다.
사춘기는 온다. 더 단단하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불완전한 모습이 밖으로 삐져나오는 그 시기는 당연히 거쳐야 할 일련의 과정이다. 아름다운 나비도 번데기 안에서 멀리 날아갈 꿈을 꾸듯 너희들의 위태로운 번데기 시절을 원장님도 가만가만 응원한다. 못생기고 울퉁불퉁한 번데기도 어느 날 크고 화려한 날개를 가진 나비가 된다. 그때까지 너희들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원장님과 전쟁 같은 사랑을 행복하게 치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