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니어

엔지니어도 글을 쓰고 싶습니다.

by 글치


엔지니어와 글쓰기의 거리감

학부의 기본적인 커리큘럼에 글을 짓는 일과 관련된 것은 1학년 때 한번 들었던 ‘말과 글’이라는 과목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 수업만이 준 행복감이 있었다. 4학년 때 그동안 안 듣던 교양을 들어야 해서 골랐던 ‘서양미술사’도 기억에 남는다. 과제로 했던 미술관 관람도 공돌이에게는 생소한 그리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수학이라는 학문이 문제해결력의 향상, 논리 추론 능력의 훈련 측면에서 인문계열, 이공계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중요할 수 있듯이, 엔지니어로 살아온 지 12년쯤 되면서 느껴지는 건 글쓰기의 중요성, 효용성이다. 이렇게 중요할 것을 알았다면, 더 많은 투자를 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하는 순간 입시를 위한 최소한의 ‘글’ 외엔 접하기 쉽지 않아 진다. 그 후에도 공학계열 학부생으로서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글’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의 연속이다. 전공서적 외의 글을 읽는 것을 사치로 여긴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어떤 분들은 이과와 문과로 나누는 것을 폐지해야 한다고 까지 말하시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어느 정도 성향이라는 게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좀 더 유연하게 커리큘럼이 구성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입시를 궁극의 목표로 하는 한 어떤 방법으로 제도를 보완해도 본연의 취지를 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통합되어 있지 않은 교육과정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통합형 인재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몇몇 기존의 교육과정을 과감히 뛰어넘은? 사람들이 통합형 인재로서 얘기가 되는 것 같다. 스티브 잡스만 해도 그 처럼 살아라 본받아라 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가 받아온 교육과정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통합형 인재는 어려운 것임을 알게 된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얻게 된 유익

많은 분들이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비슷한 말씀들을 하신다. 글쓰기의 유익이 있다 라는 점. 몇몇 엔지니어 출신의 작가 분들을 보면 공감이 되는 말을 많이 볼 수 있다. 그중엔 엔지니어가 글을 쓰시는 건지, 작가가 엔지니어를 하시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문장력을 가지신 분들이 많다. 이 점이 한편으론 진입장벽이다.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느낌이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지니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엔지니어도 글을 쓰긴 쓴다.

엔지니어들도 짧게는 이메일을 쓰고, PPT에도 글이 들어가며, 연구 보고서, 과제 보고서 등 보고서도 많이 쓰는 편이다. 그것이 좋은 시작점일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생각들을 누군가에게 보고하듯 써도 좋을 것이고, 내가 가진 정보를 소통하듯 써도 좋겠다. 또 어떤 일을 분석해서 증명하듯 써도 될 것이다. 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읽는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일 조회수 많은 글도 10년 단위로 베스트셀러를 추려보면 뭔가 의미 있는 ‘분석 거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료를 모으고, 끄적끄적 써내려 갔을 뿐이다. 보고서를 쓰는 느낌으로, 내 의견을 소통하는 이메일을 쓰듯이 썼다. 그렇게라도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되어서 감사하다.


2. 입력(input) 집착하는 면이 있다.

속설에 의하면, 엔지니어는 치매는 안 걸린다고 한다. 계속 배워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많은 인풋을 추구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끊임없이 배우는 것을 덕목으로 얘기하시는 분도 있다. 그에 비해 입력된 것을 정리할만한 마음의 여유,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으면, 그만큼 정리되지 않은 지식이 많이 쌓여 있게 된다.

‘아 좀 정리를 한번 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면, 글쓰기를 통해서 정리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3.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종이 따로 있겠냐마는 엔지니어도 참 스트레스받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싸게, 더 작게 혹은 더 빠르게, 더 좋게 만들라는 윗분 혹은 고객의 소리에 맞추어 더 이상 안될 거 같은 개발을 해야 하거나, 혹은 개발만 하고 싶은데, 사내의 정치와 부서 이기주의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에 지친 상황. 감정이라는 존재를 잘 다루지 못해서 ‘감정 표현 불능증’ 이라도 걸린 것 같은 상황이라면, 제안하고 싶다.

글쓰기는 스트레스 해소에 참 좋은 방법인데 엔지니어 분들은 잘 시도하지 못하는 장르가 아닌가 생각된다. 적어도 내 경험상은 게임보다 나은 것 같다.


글쓰기와 거리감이 큰 엔지니어들이 ‘글지니어’가 돼서 새로운 기쁨과 위로가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한 편의 글이 써질 때마다, 한 조각의 위로가 내 마음에 쌓이는 느낌이다. 끝이 어떨지는 몰라도 시작했으니 계속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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