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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치 Oct 17. 2024

희로애락 시간순 설

희로애락喜怒愛樂

사람이 느끼는 감정들이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의미한다. 문득 왜 ‘노애희락‘이나 ‘애락희로‘가 아니고 희로애락일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다 시간의 흐름과 연관 지어 볼까? 하는 생각에 몇 자 적어본다. 인생의 시간을 유소년 청년 중년 노년 정도로 보고 이어 붙이면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기 시작한다.


희-유소년

유년기에는 기쁨을 추구하고, 기쁨을 알아가고, 충분히 기쁨을 누리는 것이 좋겠다. 아이들에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 그렇지 못한 환경들이 슬프기도 하다. 공부하느라 경쟁하느라 이 조선땅에 적응하느라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다. 이미 희로애락이 범벅인 된 감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주어진’듯한 삶이 대부분이지만, 적어도 우리 애들이 기쁨에 더 집중하며 살았으면 한다.


노-청년

청년이여 분노하라. 분노하라고 하지 않아도 화가 날 것 같다. 나도 화가 많이 나있었다. 나는 항상 화가 나있다고 말하는 어벤저스의 헐크 같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청년이 분노하지 않으면, 정의와 진실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역사와 예술과 사회가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그렇다. 나이가 들면, 분노가 줄어든다.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이해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생긴다.


애-중년

그렇게 기쁨도 적어지고, 분노도 줄어들면, 좀 슬픈 일들이 생기는 시기가 온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게 되고, 죽음이 찾아와 주변의 귀한 사람들을 데려가는 것을 보기 시작한다. 함께 기뻐했고, 함께 분노했던 친구들이 더 이상 친구가 아닐 확률이 높아진다.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것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점점 건강에 적신호도 느껴지기 시작하고, 원하는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이해’하기 시작한다. 꿈은 어느덧 잊어버렸고, 희생해야 하는 영역도 많아진다. 슬픈 중년. 그러나 슬퍼하지는 못한다. 슬픔을 잘 먹어 소화해야 한다.


락-노년

노년을 겪지 않은 내가 노년을 말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만. 내가 원하는 노년은 써볼 수 있을 것 같다. 즐겁고 싶다. 기쁨보다 더 수준이 높은 즐거움. 분노도 조절하고, 슬픔마저도 녹여버릴 수 있는 인생의 맛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즐거움. 그것은 넉넉하고 여유 있어서 생기는 즐거움은 아닐 것이다. 그 비결은 감사함에 있으리라. 모든 것이 감사한 삶이야말로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감성이 자극되어, 나중에 보면 부끄러울 글을 남겨둔다.





글치의 첫 출간입니다.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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