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테네시 윌리엄스는 어떻게 버려졌는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학에서 연극 영화를 전공했다고 한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 흥미가 있어 와세다 대학의 문학부를 택했다고. 입학 후 첫 학기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쓴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을 영어로 독해하는 수업을 들었는데, 담당 교수가 테네시 윌리엄스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단다. 그래서 학기 내내 테네시 윌리엄스가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작가인지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듣고 들어, 세뇌를 당한 건지 해당 교수가 나름의 논리와 이유를 잘 펼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하루키 역시 테네시 윌리엄스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세장 남짓의 이 짧은 글 속에 시간이 지나고 하루키가 테네시 윌리엄스를 좋아하게 되었다! 라는 식의 극적인 반전은 없었다. 그러나 와세다 대학에서의 그 경험을 계기로 하루키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험담하는 것을 주의하게 되었다고 했다.
특히 누군가의 창작물에 대해서.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해석은 다양하고, 얼마든지 비판도 할 수 있지만 오로지 잘못된 점만 찾고 비판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 작품이 별 볼 일이 없고, 작가가 바보같다고 해도 말이다. 그것은 해당 작품과 작가에 대한 비판으로 그치지 않고 그런 비판을 하는 자기 안의 무언가를 무너뜨린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타인을 비판하는데 내 안의 무엇이 무너지는 것일까?
더구나 나는 그와 그의 작품이 욕을 먹어 마땅할만큼 별 볼일 없다고 믿고 있는데?
내 바깥에 있는 어떤 것의 문제점을 계속 찾는 것이
사실은 내 안의 따듯함과 생명력, 궁극에 '나'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자기 안에서 무너지는 무언가라는 것은 결국 인간으로서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그렇다고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뒷담화를 하고 돌아올 때 찝찝한 기분이 이런 것일까.
아.. 아까 그 얘기는 괜히 했어. 상대가 욕을 들어 마땅한 사람일지라도, 자리에도 없는 상대를 욕하고 있는 나는 뭐 얼마나 더 나은 인간이려나. 에라이.
이건 이래저래서 문제가 있고,
저건 요래요래서 스토리가 빈약하고,
또 결말은 어쩌고.. 하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게 훨씬 더 똑똑해보인다.
그러나 하루키는 똑똑해 보이는 사람이 되기보다, 바보같이 보일지라도 "이건 이 부분이 참 좋죠!" " 정말 그렇죠? " "저도 여기 좋아해요."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고단함을 아는 사람이기에, 누군가의 작품에 대해 무작정 욕만 늘어놓을 수는 없다고.
이 짤막한 이야기를 읽는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지만(달리기와 고양이에 대한 글을 읽은 게 전부다.), 그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이고,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어 불편한 인터뷰들로 괴롭힘을 당할 거란 것도, 또 그만큼 그의 소설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는 알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게 된 것은 그가 퍽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나 글, 작품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다 저마다의 눈으로 볼테니. 물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좋고, 자신만의 눈과 안목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따뜻함과 애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말들은 안 하니만 못할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보니 평론가들은 어깨가 무거울 것만 같다..
(아무 것도 아닌 나도 이러쿵저러쿵 했었지..)
쓰다 보니 자꾸 자아 비판으로 이어져서 ㅠㅠ
나에 대한 애정이 줄어들 것 같아
이만 끝!
(아무튼 하루키는 좋은 사람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