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메테르링크, <꿀벌의 생활>
제목만 보고 오해가 있을까봐 미리 알려둔다.
이건 사람이 아니라 진짜 여왕벌, 꿀벌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날 점심 시간,
학교 안에 있는 산책로를 걷다가 클로버 꽃에 꿀벌 한마리가 머리를 파묻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녀석이 어찌나 열심히 작은 꽃잎 하나하나까지 머리를 들이밀던지, 꿀벌이 부지런함의 상징이 된 이유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자세히 꿀벌을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정말 이렇게까지 열심히 꿀을 빤단 말이야? 싶어서 한동안 꿀벌을 쫓아다녔다. 한 녀석은 얼마나 열심히 꽃술에 얼굴을 들이밀었는지 다리에 노란 화분이 가득 묻어 태생부터 다리가 노란색인가 오해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동네 서점에 갔던 또 어느날,
<꿀벌의 생활>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덥썩 집어들었다.
이 책은 파랑새, 우리가 아는 바로 그 파랑새를 쓴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꿀벌 관찰기이다. 책의 겉표지에는 이 책이 메테를링크를 노벨문학상으로 이끈 대표작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노벨상의 기준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닌가 보다.
아,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일러두자면 나는 곤충에게 그리 관심이 없다. 벌, 이라고 하면 어릴 적 시골집 뒷마당에 벌통이 있었고, 어느날 아빠가 퉁퉁 부은 입술로 벌에 쏘였다고 했던 기억이 전부다. (벌집 주인은 뒷집 아저씨였다.) 아빠의 입술은 벌침에 꽤 예민했던지 정말 상상 이상으로 부어 올라 있었다. 그 후 교실에 벌이 들어오면 쫓아내거나 도망치기 바빴다. 정말이지 그게 전부였다.
그런 내가 <꿀벌의 생활>이라니!
꿀벌의 세계에도 많은 지위와 역할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주목을 끄는 건 단연 여왕벌이다.
여왕벌은 우두머리니까 집안에 편하게 앉아서 주는 꿀이나 먹는, 정말로 꿀빠는 자리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꿀 보직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벌들의 세계에도 인간 세상처럼 권력 투쟁과 암투, 편 가르기 등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여왕벌이 죽으면 후계자는 어떻게 정해질까? 알도 많이 낳을텐데 그것들이 모두 왕위 다툼을 하게 된다면 아주 골치 아프지 않은가.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여왕벌이 그리 행복한 존재가 아닐 거란 거였다. 아직 요 한 권밖에 읽지 않은 터라 다 알지는 못하지만, 벌들의 세계는 집단의 보전과 진화에 맞춰 아주 기능적으로 역할이 분담되어 있는 듯 했다. 여왕벌은 생식기능이 강화된 대신 뇌 기능은 아주 낮고, 일벌은 반대라고 한다. 그리고 여왕벌을 향한 충성도 역시 그 개체를 향한 애정이나 충성이 아니라, 오직 공동체의 보전이라는 더 큰 목적과 DNA에 새겨진 듯한 질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여왕벌은 끔찍하게 돌봄을 받지만 또 제 기능을 잃어버리면 언제든 팽당할 수 있는 안쓰러운 존재였다.
물론 다른 벌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 하다.
꿀벌 수컷은 이른바 여왕벌의 결혼 비행이라 부르는 고공비행에 참여해 운좋게(?) 여왕벌과 짝짓기를 하고 나면 바로 죽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몸 어딘가에 새겨진 듯한 짝짓기에 대한 열망으로 죽음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무섭게 여왕벌은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하는데도. 그래도 짝짓기를 통해 절정의 순간을 맛보는 거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할런지… 그럼 짝짓기가 아니면 이 수컷들에게 꿀벌로서의 삶은 뭔가, 짝짓기에 실패한 녀석들은 어찌 되는 건가.
꿀벌의 세계는 상상 이상으로 단순했고, 또 한편 복잡했다. 이 세계를 보며 사회 속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 자체보다 내가 해야 하는 역할과 그것을 제대로 해내는가가 중요하고, 그에 따라 내 존재 가치가 결정된다면, 나는 불안할 것이다. 나의 행동과 성과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고 평가받는다면 어디 마음 편히 살수 있을까.
언젠가 둘째 동생이 그랬다. 남편에게 화가 나고 서운할 때도 있지만, 자기 ‘남편’이자 아이들 ‘아빠’ 이전에 그냥 한 인간이 있는 거 아니겠냐고. 결혼했다고 해서 그 역할들로만 상대를 묶어버리기 싫다고. 그냥 한 명의 사람으로서 본인이 원하는 것 하면서 즐겁게 사는 걸 보고 싶다고. (와, 내 동생 제부 엄청 사랑하는 거였다)
그러자 막내 동생이 그랬다.
아니 자유롭게 살거면 결혼을 하지 말고 애도 안낳아야지. 결혼했는데 자유는 무슨 자유야, 자유는 본인만 누리고 싶은가 뭐. 언니는 그렇게 생각하니까 힘든 거야. 결혼하고 애가 있으면 주말에 나가는 거 미리 이야기하고 허락도 받아야 하는 거라고. 애는 누가 봐 그럼? (이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결혼한 부부는 공동의 목표와 역할이 있어서 한쪽이 그걸 게을리 하면 잘 굴러가지가 않는다. 동생처럼 깊은 사랑으로 상대를 자유롭게 해주려 해도 그런 이상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상대방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주려면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러니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것이다. 막내 동생처럼 그 정도 각오도 없이 결혼했느냐며 다른 생각 안하고 사는 게 속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동생이 자기 남편을 아이들 아빠나 남편의 역할만이 아니라, 그냥 자기 삶을 살고 싶은 사람으로 봐주려 애쓰고 있다는 점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언젠가 배우 유태오의 부인 니키리가 유퀴즈에 나와서 남편 연기하라고, 소년다움을 잃지 말라고, 세상의 풍파는 자신이 맞으면 된다고 했다. 나도 보면서 와! 니키리 진짜 멋있는 여자네, 했는데 그 영상 보고 제부가 동생에게 보냈다고 했다. 니키리 같은 여자가 되어 달란 건가봐 라며 웃었다. ㅎㅎ 내 동생도 세상 풍파 내가 다 맞아주겠다, 정도까진 못 되어도 본인을 끔찍히 생각하는데.
이런 세상에서
‘역할’에 매몰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유롭고 행복한 모습으로 살게 해주고 싶다는 부인이면 괜찮은 거 아니오?
꿀벌 이야기에서 또 너무 샜다.
요는 여왕벌은 자유도 없고 그리 행복하지도 않을 거 같단 거였다. 지위가 높고 꿀 빠는 편한 자리여도 자기 삶이란 게 없으니까. 생식기능만 발달하고 뇌기능은 축소된다니 ㅠㅠ 그리고 할 일을 마치면 폐위된다니. 여왕이 아닌 여왕벌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니려나.
그럼 슬픈데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