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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Nov 17. 2024

달나라로 떠나는 꿈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평범한 가정을 일구고 남부럽지 않게 살던 마흔 일곱 살의 증권 중개인이 갑자기 가족도, 일자리도, 그간의 명성과 인간관계까지 모든 것을 버리고 화가가 되겠다고 떠난다. 당신은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 당신이 그의 아내나 친구라면, 뭐라고 말할까? 아니, 당신 자신이 그런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그랬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아내에게 편지를 써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노라 선언하고 파리로 떠나버린다. 남들은 카페 종업원과 도망을 갔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실상 그는 다른 여자를 좇아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 도저히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림을 좇아간 것이었다.


표면적으로 그는 가정을 버린 무책임한 남자였고, 죽어가는 자신을 도와준 지인의 아내를 꼬여낸 파렴치한에, 그렇게 꼬여낸 여자가 자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인간 사회의 도덕에서 벗어난 사람 같다. 그래서 처음 책장을 넘길 땐 그를 욕하면서 보게 된다. 어쩜 이럴수가 있나? 아니, 아무리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다 해도 그렇지, 주위 사람을 좀 배려하면서 그 길을 갈수는 없었나? 이런 이기적인 인간 같으니라구!

 

그러나 남은 책의 두께가 얇아질수록

나는 그를 부러워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삶을 대하는 그 열정과 용기에 감탄하기도 했다. 책에 적혀 있던 말마따나 대개의 사람이 안정과 반복되는 일상을 택하는 사십대 중반에 모험을 택할 수 있는 그는 어떤 면에선 위대한 면모를 지녔다. 그래서 그를 마냥 미워할수가 없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다른 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그를 욕하다가, 부러워하다가, 감탄하다가, 안쓰럽기도 했다가, 존경심이 들기까지 한 것은 스트릭랜드가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그가 가진 그 꿈과 그림을 향한 본능 같은 욕구가 내 안에도, 우리 모두 안에도 있기 때문에, 있을 거였기 때문이었다. 설령 내가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명확히 찾지 못했다고 해도, 그것이 월급 봉투만으로는 대체될 수 없을 거 같으니까.


너는 네 인생을 다 바칠만한 것,

그토록 간절히 원하고,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나는 내가 아닌 게 되는

그런 걸 가지고 있느냐고,

스트릭랜드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래서 거듭

“ 나는 그려야만 하오.” 라고 답할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이니 그깟 남들 눈과 사회의 관습, 도덕이 대수겠나 싶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제목 <달과 6펜스>는 닿을 수 없는 달로 대변되는 꿈과 이상, 돈으로 상징되는 현실과 세속적 삶 가운데 무엇을 택했는지, 택할 것인지, 너는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는다.


그럼 우리 모두가 스트릭랜드처럼 다 버리고 꿈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느냐고?

어떤 면에선 그렇고, 어떤 면에선 그렇지 않다.

이 책에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건 “~ 해야만 한다.”가 아니라 나를 나이게 하는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니까.

먼저 스트릭랜드처럼 산다는 건 어떤 걸까?

나만 해도 그 같은 재능도, 간절한 열정도, 남들이 뭐라 해도 내 그림은 최고라는 확신도, 세간의 평 따위 완전히 무시하고 살 자신도 없다. 스트릭랜드만 놓고 본다면, 천재 예술가나 되어야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건 아주 특출난 한 명의 괴짜에 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극 중에는 스트릭랜드 외에도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아 자족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 눈엔 대단찮고 평범해 보이지만 위대한 사람들. 그들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부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책의 후반부에 등장한 선장과 글쓴이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의사가 그렇다. 아내와 함께 아무 것도 없는 섬을 아름답게 가꾸고 아이들을 낳아 기른 선장은 자신이 변화시킨 불모의 섬을 바라보며 뿌듯해했다. 의대에서 가장 총명하다고 기대를 한몸에 받던 친구는 그대로라면 성공의 탄탄대로를 달렸겠지만, 어느 날 방문한 한 도시에 꽂혀 모든 부와 명예를 버리고, 그렇지만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이 책은 당신도 스트릭랜드처럼, 선장처럼, 의사처럼 살라는 게 아니라, 그 삶이 세간에서 평하는 부유하고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삶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는 것을,

그런 가치보다 더 큰 열망을 택하고,

결국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위대함에 대해 알아달라고 하는 것 같다.


가만히 있었으면 훨씬 더 잘 살 수 있었을텐데…

그 친구 참 어리석었어ㅡ


아, 누가 그를 어리석다 할 수 있을까.

그는 자기 자신인 것만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있었을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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