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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냄작가 Jan 06. 2020

육아를 이해하는 남편의 차이점

 싱글대디가 소아과 병동에서 바라본 남편의 육아

 인천 모 병원 소아과 병동 801호. 기계처럼 단단해 보이는 병원 침대에 얇은 침대보가 깔린다. 바늘이 30개월 아이의 손등 위에서 혈관을 찾고 나면, 아이와 엄마가 진이 빠진 상태로 병실로 들어온다. 기침과 가래로 넘기기 힘든 아이들은 쉽게 밥을 먹지 못한다. 뱉어버리거나 토해내기 때문에 환자복과 침대 시트는 하루에 몇 번씩 갈아야 한다. 최근 며칠간 일어난 801호 병동의 패턴이다. 심한 경우에는 새벽에도 똑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며칠 후 지칠 대로 지친 엄마의 머리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난다. 며칠 째 입은 옷은 얼룩과 밥풀이 묻어있다.

 아이 엄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몇 시에 끝나? 필요한 거 정리해서 보낼 테니까. 끝나면 바로 갖다 줘."

저녁 9시 남편은 필요한 물건을 들고 병실로 들어온다. 아내의 처참한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아픈 아이를 안아준다. 그때서야 숨을 돌리는 아이 엄마는 가져온 물건을 꺼내 본다.

"뭐야? 기저귀 이게 다야? 하루에 몇 개씩 쓰는지 아직도 몰라?"

아내는 지친 하루의 일과를 남편에게 차근차근 설명할 여유가 없다. 아직도 하루에 기저귀를 얼마나 쓰는지 모르는 남편이 답답할 뿐이다.


입원한 지 이틀 째 되는 어느 날,  옆 침대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여보, 힘들지? 오늘은 내가 있을게 조금이라도 집에 가서 쉬어."

 "내일 출근하잖아. 됐어. 내가 보면 돼."

 "애들 키우다 보면 잠도 못 자고 출근하고 그런 거지"

 그날 새벽 아이 아빠는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아기띠를 한 채 병원 복도를 수시로 돌아다녔다. 아기띠는 엉성하고 살짝 기울어진 상태로 말이다. 필요한 물건만 건네고 사라지는 남편도 있었지만, 아내와 아이를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준 남편도 있었다. 육아가 어색하고 서툴러도 말이다.

'이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신혼부부는 신혼의 달콤함과 사랑으로 서로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행복한 미래를 그린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빨래, 설거지, 요리를 하고 에피소드를 서로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안정된 생활이 유지되면서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게되고, 곧 육아가 시작된다. 육아는 행복한 미래로 가득한 부부에게 막대한 역할과 과업을 준다. 회사에서는 직원으로서 좋은 성과를 보여줘야하는 부담감이 생기고 가정에서는 아내(남편), 며느리(사위), 엄마(아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한다. 신혼의 달콤함은 서서히 굳어간다.


남편은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이번 프로젝트를 잘 마치면 승진과 더불어 풍요로운 삶의 질이 보장된다. 비싼 음식과 새 보금자리를 얻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 퇴근한다. 아내에게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진실되게 전달할 수 있을지,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연습한다.

아내의 첫 마디.

"그래서? 애는 누가 보라고?"

계속되는 남편의 설득에도 아내는 예민하게 반응 할 뿐이다. 신혼 때 자신의 얘기를 귀 기울이고 공감해서 들어준 아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가 답답 할 뿐이다.

"당신은 내가 지금 어떻게 사는 지 모르지?"

아내는 지쳐있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최근 복귀한 회사에서 먼저 승진한 동료들을 보면서 가정이 가져다준 엄마의 역할이 원망스럽다. 육아휴직 동안에 잃어버린 업무능력을 따라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육아가 쉽게 발목을 놔두지 않는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기.

"어머님, 안녕하세요? 지금 00이가 열이 나는데 병원에 가보셔야 할 거 같아요."


주52시간제도, 워라벨 등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시도는 물거품처럼 만지기도 전에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회사와 어린이집 사이에서 눈치를 보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내 모습을 알아주지 못하는 남편이 원망스럽다. 프로젝트 보다 오늘 그리고 내일, 한달, 일년동안 내 삶을 누가 위로해 줄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할 뿐이다. 가정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인 맞벌이 가정은 막대한 과업과 역할에 지쳐버리는 일상이 되어버린다.  만약, 부부중 한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일과 가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거나, 나몰라라 한다면 그 가정은 누군가는 아주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될 지 모른다.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지면 이전에 나는 충분한 아빠이자 남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병원에서 깨달았다. 육아는 단순히 아이를 키우는 노동이 아니다. 단순히 노동을 덜어주었다고 육아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었다. 육아는 척박한 땅에서 예쁜 꽃을 키워야 하는 것과 같다. 씨앗에 싹이 돋고 꽃봉오리를 맺을 때까지 어떤 꽃이 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랑으로 물을 주고 땅을 고른다. 손톱이 깨지고 손에 상처가 생겨도 말이다. 적어도 이전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도 꽃에 물을 주고 땅을 고르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충분히 육아를 하고 있다고"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게 육아라고? 천만에! 지금 당장 아내의 손을 잡아주고 비가 오면 우산을 씌워줘. 꽃을 키우다 변해버린 아내를 알아주란 말이야!"

신혼의 달콤함은 굳었지만, 육아의 희로애락을 같이 느끼며 가족과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개봉한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많은 분들이 공감으로 다가오는 건 대한민국 여성이 겪었던 힘든 시간과 육아가 가져오는 어려움을 극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지영(정유미 님)'과 같이 잃어버린 자신의 삶과 며느리 역할에 아내가 지쳐있다면,  남편 '대현(공유님)'과 같이 육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아내를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내와 아이를 위한 정서적 교감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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