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림 Feb 17. 2024

부정직한 나를 수용하고 투명하게 자유로

반바퀴묵상 32 (55번, 59번)

59번 유전자키

그림자: 부정직

59번째 그림자 뒤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깊은 불신과 관계에 대한 핵심적인 두려움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그림자는 세상을 외로운 곳으로 만드는 그림자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 주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진정으로 깊이 있게 소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떤 것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숨겨 놓은 한, 거기에는 항상 그들이 두려워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의식적인 부정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유전적으로 부정직합니다. 이 59번째 그림자를 묵상할 때 오는 놀라운 계시는 우리의 유전자가 실제로 우리가 부정직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삶 자체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높은 본성을 깨닫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59번째 그림자의 억압적 본성은 소외된 느낌에 관한 것입니다. 소외된 느낌은 희생자 상태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느낌에 책임을 지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때문입니다. 소외되는 느낌은 아직도 당신 자신의 감정적 환경을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을 줍니다.


59번째 그림자는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반응적으로 분노로서 표현하며, 그러면 그것은 타인을 침범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문을 두드리면서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다른 사람의 오라를 침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거부당하면 그들은 분노하고 스스로를 소외시킵니다.


선물: 친밀감

59번째 선물 '친밀감'의 실재는 다소 다릅니다. 친밀감이란 정직과 그림자 상태의 수용을 전제로 합니다. 이것은 남녀 간의 두려움의 차이가 인정되어야 하고 이해되어야 하며 존재하도록 하용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친밀함의 힘은 두 개의 오라가 승화되는 과정에서 세 번째 오라를 만들기 위해 상호작용하는 힘입니다. 원래의 오라들이 더 차별화된 것일수록 초월의 가능성은 더 커집니다.


가슴이 열리면 진정한 친밀감이 생겨 두 사람은 하나의 인식 안에서 서로 만나게 됩니다. 따라서 성의 승화로 알려진 과정의 진정한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더 높은 출현이 감지되기 전에 혼란이 경험되어야 하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과정입니다.


시디: 투명성

태양신경총의 돌연변이는 본질적으로 우리의 행성의 가슴 센터가 열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듯이 사랑에 빠질 때 시간은 멈춥니다. 그림자로부터 선물로의 변형 너머에는 송과선과 뇌하수체의 뇌 화학 내에서 유전적 돌연변이가 일어나게 될 변형이 있습니다.

투명성의 시디는 실제로 자아의 모든 측면이 창조의 바다로 되돌아가 분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투명성의 상태는 의제나 목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인식의 통로 역할을 할 뿐입니다. 따라서 59번째 유전자 키의 유일한 목적은 통합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투명성으로 인도하는 순서는 4번째 유전자 키에 의해 촉발되어 용서의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일단 당신의 인간관계를 하나의 거울로 사용하면서 자신을 용서하게 되면 당신은 덕(Virtue, 7번째 유전자 키)의 진정한 오라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내면의 덕을 발견하면, 당신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동일한 신성한 근원을 알아보면서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투명성으로 가는 진정한 출구가 바로 이 봉헌(Devotion, 29번째 유전자 키)입니다.


투명성은 안과 밖이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고 당신 자신의 존재 속으로 모든 것을 가져옵니다. 그것은 전체 삶의 영역에서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드는 가장 훌륭한 평등자입니다.


55번 유전자키의 통찰

55번 유전자키가 주디의 삶의 일이며 프로그래밍 파트너인 59번째 유전자키를 묵상할 때, 주디는 이 두 유전자키의 상호작용을 통해 특별한 통찰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묵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은 다음과 같습니다:  

     변화와 친밀감의 균형: 55번 유전자키는 변화의 힘과 삶의 단맛을 경험하는 능력에 중점을 둡니다. 이는 주디가 변화하는 시대를 넘나들며 자신의 감정적 과정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는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59번 유전자키와의 결합은 이 변화 과정에서 진정한 친밀감을 발견하고 관계 속에서 자유를 탐색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내면의 자유: 59번 유전자키의 친밀감은 주디가 관계에서 진정한 자유를 발견하게 도와줍니다. 이는 주디가 다른 사람들과의 솔직한 소통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더 깊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관계가 더 이상 함정이 아니라 자유를 발견하는 장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자아의 해방: 55번 유전자키의 광휘와 59번 유전자키의 친밀감 사이의 상호작용은 주디가 자신의 감정에 더 깊이 연결되고, 이를 통해 더 깊은 자아 인식과 해방을 경험하도록 합니다. 이는 주디가 자신의 감정적 상태에 대한 통제력을 얻고, 이를 통해 더 큰 내면의 평화와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줍니다.   


     통합과 투명성: 59번 유전자키의 투명성을 통해 주디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삶의 모든 측면에서의 장벽을 해체하는 깊은 통합의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주디가 자신의 삶의 일과 관련된 모든 활동에서 더 큰 통합과 조화를 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디가 이 두 유전자키를 묵상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러한 통찰은 그녀의 삶의 일을 수행하면서 겪게 될 내적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더 깊게 이해하고 포용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는 주디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고, 그녀의 존재와 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출처: 진키코리아네트워크 제공 주디의 인생의 황금길 AI 챗봇)




 유전자키를 묵상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더 깊이 탐색하게 된다. MBTI가 아주 신빙성이 있지는 않다지만 그래도  F와 T로 대변되는 감성-이성우위의 반응적 태도에서 나는 T형, 사주 상의 오행으로 보았을 때 금기운이 많은 계수, 때론 단호하고 냉철한 현침을 날리는 성격의 소유자에, 휴먼디자인 유형으로 보았을 때 프로젝터인 나는 소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그들이 아프리만치 직면할 수밖에 없게 하는 질문, 혹은 직언을 할 때가 (자주) 있다. 이전엔 이런 유형의 나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이 아플 때 왜 나는 사람들의 감정에 그토록 무심하며, 감정이 아프더라도 그들을 위한 각성을 진심으로 바라면서 원망을 무릅쓰는지 나 자신을 스스로 질타하는 시간이 많았다.


"네가 좀 참지 그랬어!"

"좀 부드럽게 말해주면 안 되겠니?"

"네 말투가 편하지는 않은데"

"너만 조용히 하면 다 편하잖아."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말로 부딪치고 상처를 주고받는 일은 대체로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들과의 관계는 대화의 이후에도 줄곧 이어지기 때문에, 게다가 그들의 감정과 역동이 보이는 상황에서 나는 관계를 위해 스스로 부정직을 택했다. 힘들 때는 그저 웃었다. 이 고통이 그저 내가 모난 돌이기 때문이며, 내가 둥글게 닳아야 성숙하고 사회에 적합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마음 뒤에는 "내 잘못이다"는 자책과 "희생시킴"의 55번 그림자가 함께 하고 있었다.


 두려움에 사적인 관계에서의 내 말투와 표정도 어딘지 어리숙하게 바뀌고 있었다. 애교 섞인 높은 톤의 목소리와 어딘지 아이 같은 말투는 내 원래 나이보다 나를 어리게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주는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가식적이라는 평을 받을 때도 많았다. 성인이 되어 강의를 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나는 같은 목적으로 말의 속도가 매우 느린, 부드럽고 나지막하게 다소 허스키한 탁성을 쓰며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편안한 이미지에,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키는 강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부정직했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다소 일방적인 면도 있었는데, 그들이 생각하기에 내게 좋은 것들을 일방적으로 해줬다. 마음이든 행위든 물질이든, 내 여린 마음으로 받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부정직하게 그것들을 기꺼이 받고자 했다. 기대를 받는 경우도 많았는데, 버거워도 그 기대에 부응하려 갖은 애를 썼다. 애쓴다고 다 달성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럴 땐 그냥 웃었다. 내가 그렇지 뭐. 어수룩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어릴 때의 날카로운 현침은 어수룩하고 미약하고 어린 나로 있고자 하는 나의 두려움을 가리는 가면 속에 숨어들었다. 나는 예민하고 투명한 사람이라, 이 당시에 내 몸에서는 임파선염, 다낭성난소증후군, 만성피로, 습관성 위염 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더 이상 부정직한 나를 감당할 수 없게 될 무렵, 몸과 마음에 고장이 났다.


 살려고, 살려고 갖은 애를 썼다. 어렵게 들어선 아이가 유산되고,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이혼을 했다. 이혼의 과정에서 술을 중독된 것처럼 마시기도 하고, 잠을 통 자지 못해 손발이 퉁퉁 부었다. 당시에는 심리상담, 아바타과정, 명상원 등을 찾으며 어떻게든 살 길을 찾고자 했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병들어있었는데, 그렇게 병든 내가 세상에서는 매력적이었다. 나를 진정성 있게 돌봐주고자 다가온 사람들과 친밀하게 엮였다. 그들의 위로가 달콤해 잃고 싶지 않아서 내 마음속에서 올라온 집착들이 그들을 나와 더 가깝게, 밀접하게 옭아매고 싶어 했다. 그렇게 엮이고 나서 또 버림받을까 두려웠던 나는 두려움이 실현되기 전에 관계를 끊고 떠나버렸다. 삶이 가장 척박하고 가시밭길이었던 시절이 2020년 전후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리고, 가족도, 학교도, 하고 있던 일도 뒤로하고 새롭게 제로에서 시작했다.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더 힘든 운동에 도전했다. 수영과 마라톤으로 이끌어준 이가 있었다. 그가 이끄는 하드트레이닝 수준의 운동을 꾸역꾸역 따라갔다. 죽을 것 같아도 현실보다는 달콤했다. 겪고 있는 현실이 냉정하고 거칠어서, 앞에서 포기하지 말라고 혹독하게 한계 극복을 이끄는 코칭은 차라리 다정했다. 첫 데이트에서 20킬로를 달렸는데 온몸이 아파 3일을 누워있어야 했다. 그래도 세상의 풍파를 맨몸으로 맞는 것보다 근육통이 더 달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중랑천으로 뛰어나가 달렸다. 5킬로 정도를 빠르게 달리지도 못했지만 온몸이 땀에 젖게 달리고 나서 돌아오는 길엔 엉엉 울었다. 온몸의 물이 땀과 눈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통곡하며 울면서 돌아온 날들이 많았다. 통곡하기에 부끄러워서 사람들이 없는 새벽 달리기를 즐겼다. 그리고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겠다 싶어질 무렵, 나는 더 이상 다정하고 부드럽고 어리숙한 나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남편조차 아무것도 아닌, 존재조차도 모를 사이로 돌아가 버리는 마당에, 사람들이 다치거나 관계가 깨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졌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에도 홀로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가득했기에, 관계에 조건화되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좋으면 있는 그대로 좋고, 싫으면 있는 그대로 싫었다. 상대가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가 누군가에게 압박의 오라를 가하거나 조건화의 오라를 씌우려고 할 때, 그게 좋은 의도였다 하더라도 현침을 가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힘들어하셨다. 이혼 후 안쓰러워 본가로 부를 때마다 아버지와 나는 부딪쳤다. 권위적인 아버지가 하는 말에는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시대의 잔재와 편견들, 선입견들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좋은 이미지와 의도를 갖고 있다 해도, 그러한 생각의 본질이 발하는 주파수를 나는 견디기 힘들었다. 이전엔 아버지가 두려워 삼키곤 했던 말들을 웃으며 했다. 울며 말했다. 그러면서 더 정직해졌다. 말하고 나서 괴로워하는 소중한 이들에게 진정성을 다시 전하는 법을 배웠다. 말하지 못해도 괴롭고, 말한 후에 괴로워하는 이들을 보는 것도 괴로운 사이, 상처에 소금을 바르듯 따가운 마음의 살갛에 바를 약을 찾기 위해 깊이 성찰한 결과 길어 올린 결과물이었다. 본질을 전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상대가 마음이 다쳤다면, 마음이 다치기 전에 미리 감지하는 것을 놓쳤다 하더라도 후에 마음을 돌보기 위해 정성을 다했다. 나는 울고 또 우느라 차갑게 식고 굳어버린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다시 배웠다. 그렇게 투명하게 가슴을 여는 법을 배우게 됐다.


진심으로 사는 법. 투명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런 나의 말과 행동이 나에 대한 공명심을 위함이 아닌, 악의 없이 모두가 가장 좋은 방향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깊은 사랑을 바탕으로 전달될 수 있다면 나는 투명할 수 있다. 한 사람이 투명할 용기를 내면, 덩달아 따라 투명해지며 취약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모인다. 취약성은 도약의 동기이자 사랑의 씨앗이기에, 용기를 가진 이라는 반증이기에, 투명한 가운데 드러나는 취약성이 반갑고 기쁘다. 이번주는 감정을 많이 썼다. 어쩔 수 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던 이에게 의심 없이 신뢰하게 된 마음의 변화를 전했고, 회의를 하며 좌충우돌 현침을 날리고선 회의에 참여해 내 현침을 어려움 속에서도 투명하고 수평적으로 수용해 주신 선배 코치님들께 진심의 마음을 전했다. 가까운 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따끔한 현침을 날리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나는, 아파하는 마음을 거울처럼 투사하며 따가운 마음을 부여잡고 힘겨워했을지언정,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고 충만했다.


 탁월함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은 쉼 없이 취약성에 직면하고 성찰하는 것이다. 성찰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로 인해 내가 괴롭다면, 괴로움을 덜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관점 전환이 필요하진 않은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야 한다.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길이지만, 가장 빠르게 도약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늘 삶의 현명함을 나눠주는 도반이 오늘 나에게 해준 이야기는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않고 나 자신에게 돌아와 내면과 대화를 나눌 줄 아는 현자라면 쭉 함께 할 수 있지"라는 깨달음이다. 또 나에게 늘 지지와 응원을 듬뿍 해주신, 이번주 감정주간의 역동을 함께 나누느라 힘드셨을 선배 코치님께서도 브런치 글로 내면의 성찰을 나눠준다.


무수히 촘촘한 권력 위계들 속에서 수평적 파트너십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궁극적 목표와 목적은 같다 해도 각자의 스타일이 달라서 합을 이루기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사적인 관계에서 공적인 관계로 확장되어 갈 때, 특히 서로 다른 모습에 당황하기도 난감해지기도 합니다. 그때가 얼른 나 자신에게 돌아올 시간입니다. 다른 곳으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과 대화를 나눠볼 때입니다.

개별적 존재의 고유한 상황, 고유한 표현 방식, 고유한 반응이 있을 수 있음을 수용하는 일. 자극과 반응 사이 더더욱 세심하게 살피고 마음을 헤아리는 일, 비언어적 요소를 포함한 언어사용에 민감성을 가지자고 다져 봅니다.

https://brunch.co.kr/@mhjyook/300


치열하게 지나가는 30번 주간의 펄스,

거기에 맞춰 59번 유전자키를 묵상하는 시간.

나로서는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로 도약하는, 성장의 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릎수술 후 재활하고 계신 차소년의 부활동반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