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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엔 Apr 10. 2024

잃지 않는 마음 01. 기억하는 마음

아들과 서른 살 차이 엄마의 갑상선암 치료일기

 <잃지 않는 마음>이라 제목을 지어 첫 글을 이곳에 발행한 지 2년이 흘렀다. 지난 2년간 이곳에 글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부채감과 또 그만큼 분주했던 현생 사이에 그만큼의 간극이 필요했나 보다.


 7살 유치원생이던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의젓한 어린이가 되었고, 나는 마흔이 되었다. 아직 갑상선암은 수술 후 5년이 지나지 않아 완치 판정은 받지 못했고 매년 5월 말쯤 일산차병원에 가서 CT 검사를 하고 박정수 교수님을 뵙고 있다.


 그 사이 나보다 3년 먼저 이 수술을 했던 동생의 보호자로 검진일에 동행했고, 가까운 친구와 언니도 같은 수술을 하는 걸 곁에서 지켜보며 기도하고 응원했다. 내가 갑상선암에 걸렸던 3년 전에도 그 사실을 공개했더니 여기저기서 "나도 갑상선암이야, 추적 중이야, 울 엄마도 했어."라는 말들을 많이 들었던 터다.


 그만큼 암 환자 수가 많기도 하거니와 그중 갑상선암은 소액암으로 분류될 만큼 예후가 좋은 암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암이든 악성 종양이고, 크든 작든 그 병이 발병되었을 때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고는 함부로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 내가 암에 걸렸을 때 제일 듣기 싫던 말 중 하나도 "갑상선암이라 다행이다. 착한 암이라잖아."였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착한 암? 그런 게 어딨어... 그럼 당신도 걸려볼래?' 하는 욱,이 울컥 치밀어 올랐었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담당의를 만났던 날 토로했더니 "무식한 사람의 말"이라고 듣지 말라고 했던 교수님과 코디 선생님의 말이 큰 위로가 됐다. 아플 때마다 어떻게 위로하는 게 도움이 되는 건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다. 때로는 어떤 말보다 침묵의 기도가 큰 힘이 된다는 것도,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말보다 나의 마음속 말이라는 걸. 그래서 어떤 일도 무조건적인 희망도, 절망도 아님을 늘 동전의 양면처럼 두 가지의 감정이 줄다리기한다는 걸 안다.


 3년 전 갑상선암 전절제술을 하고 1차 방사선동위원소 치료를 마친 뒤부터 현재까지 나는 '암세포 없음. 100점'을 받고 있다. 다가오는 5월 검사에도 같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면서.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공복에 신지로이드 한 알과 물을 마시는 건 여전하고, 후유증으로 호되게 앓았던 수면장애와 그로 인한 과호흡 증세는 작년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과 상의해서 수면제 복용을 중단하고 스스로 수면 패턴을 찾아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 노력 중이다.

매일 아침 공복에 먹는 씬지로이드. 용량은 환자마다 다르게 처방된다. 나는 0.1을 먹다 방사선동위원소 치료 때부터 0.112를 먹고 있다.

 갤럭시 워치와 스마트폰의 삼성 헬스 기능을 이용해서 내가 숙면에 드는 시간과 적정 수면 시간을 체크했고, 평일에는 밤 10시부터 수면 모드에 들어가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는 것을 루틴으로 잡았다. 그대로 잘 잠에 들고 기상하면 6시간~6시간 30분간 취침하는 셈이다. 7시간 미만이라 충분한 수면 시간엔 못 미치지만 수면 장애로 2시간 남짓 3시간 미만으로 잤던 때를 생각하면 천국 같은 시간이다. 방사선 치료 이후 난생처음 겪은 수면 장애가 나에게 극심한 스트레스 요인이 됐고, 이를 통해 이전의 관성을 끊고 연약해진 나를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 (물론 여전히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방사선동위원소 치료 이후에 겪은 여러 기저질환과 수면 장애, 과호흡은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난하고 괴롭고 처절한 어두운 터널이었다. 과호흡은 증후군으로 일종의 공황장애와 같아서 완치가 아니라 주의해야 하는 평생의 그림자 같은 거다. 나는 성격이 착하지 않아 어떤 일이 생기면 그에 따른 원인을 집요하게 찾아가는 성향이다. 그것이 때때로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 같은 성향은 수면 장애와 과호흡을 겪은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드러났는데, 이는 나에게 맞는 병원과 약, 원인과 치료 방법을 찾는 이로움도 주었다. 완벽주의 성향에 스스로에 대한 검열 기준이 높다는 것도 그래서 결국 과호흡을 이겨내는 방법도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과하게 내뱉은 이산화탄소를 다시 내 안으로 들이마시는 심호흡과 여유를 가져야 하는 것이란 걸 호흡 곤란으로 119에 실려간 뒤 알았다. 119에 실려갈 정도로 응급한 경우가 또 오면 안 되기에 그럴 때는 처방받은 신경 안정제를 복용한다. 과호흡이 어떤 때 오는지, 어떤 전조 증상이 생기는지 파악해 두는 것도 증후군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암 수술과 방사선 치료 이후 수면 장애와 기저 질환, 일상으로 회복하는 과정에서 오는 과로와 스트레스 등이 겹친 것이기에 달라진 나의 일상에 맞춰 새로운 리듬과 속도, 방법을 찾는 게 이런 병들을 극복하는 치료약이었다.

작년 9월부터 '모닝루틴챌린지'를 자연드림 조합원들과 진행하고 있고, 매일 1.5리터 이상 물과 500g의 채소를 섭취하려 노력 중이다.

 무엇보다 큰 깨달음은 이러한 증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나이가 들어갊에 따라 달라진 나의 몸과 마음을 그때그때마다 정확히 마주하고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 그러면서 더 나은 내가 되도록 건강한 습관을 가지는 것이 평생의 숙제라는 걸 알게 됐다는 거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리지만 3년 먼저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만성 아토피 질환이 다시 심해지면서 5년이 지나 산정 특례는 끝났지만 암 완치를 받지 못한 내 동생도, 10년 전 복막암 수술을 하고 여러 장기를 떼내고 완치 판정 없이 매년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하는 우리 엄마도, 두 다리가 이젠 성치 않아 매일 아이고 아프다 하는 88세의 우리 할머니도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과 숙명대로 매일 달라지는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다독이면서 한숨보단 웃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자세가 그리고 그 사실을 '기억하는 마음'이 어두운 우리 삶을 조금 더 밝게 비추는 빛이 되는 거 같다.


 모두 말을 하지 않을 뿐, 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뿐 우리는 모두 각자 살아가느라, 살아내느라 힘겹다. 그 모든 삶에 응원과 격려를 뜨겁게 보내며 2년 만에 다시 이 챕터의 글을 발행한다.

지난 주 아이와 본 원주 단계동 벚꽃과 경남 진해 여좌천의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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