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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연 Jul 19. 2020

아노는 왜 한국말을 했을까?

TV언박싱 - 랑콤 단편 영화 <아노와  호이가>

<이자연의 TV언박싱>에서는 대중문화예술 비평을 다룹니다. 아주 주관적이고, 가끔 사심을 듬뿍 담아 인상적이었던 콘텐츠 속 여성 인물의 서사를 풀어내고 의견을 공유합니다.


https://youtu.be/9SRcorBGQCg

풀 버전 영상이 삭제되어 대체 영상을 올립니다. ⓒ랑콤X마리끌레르


아노는 왜 한국말을 했을까?

<아노와 호이가>는 2018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해 ‘랑콤’과 <마리끌레르>가 함께 제작한 단편 영화다. ‘행복한 여성’을 주제로, 11여 분의 짧은 러닝 타임 동안 몽골에 사는 연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배우 안소희와 연우진은 각각 ‘아노’와 ‘호이가’ 역할을 맡아, 몽골 원주민 연기를 선보였다. 이재용 감독의 말에 따르면 안소희는 자연스러운 몽골어를 터득하기 위해 고난의 시간을 보냈고, 그 끝에 현장에서 실제 몽골인들이 그가 한국인인 줄 차마 몰랐다고 했다. 


그만큼 영화에서 두 인물이 몽골인이라는 정체성은 중요했다. 몽골 청년인 호이가(연우진)는 남풍이 부는 것으로 곧 겨울이 끝날 것을 알아차렸고, 아노(안소희)는 유목민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사랑하듯 “온 세상을 다 볼 거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했다. 초원에 정착한 삶을 바라는 남자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되뇌는 여자. 그 사이로 서운함이 스며들면서 작은 균열이 조금씩 일었다. 아주 평범한 연인이었다. 


ⓒ아노와 호이가

호이가가 섹스를 원하는 신호를 보낼 때 아노가 “안돼, 콘돔 없어” 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풀썩거리는 그에게 아노가 갑자기 한국말을 시작한다. "그만 좀 하라고! 남자들 다 똑같애. 넌 나 사랑해, 내 몸 사랑해? 넌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지?”

 

잠깐. 왜 한국말이었을까? 눈이 이만큼이나 쌓인 설원의 한 게르에서 하룻밤을 막 같이 보낸 연인 사이에 갑자기 한국말이 왜 나왔을까? 감독 이재용의 답변을 찾아봤다. "갑자기 떠오른 거였어요.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돌발적인 재미를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노가 어떤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는지 각자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의 엄마가 한국인일 수도 있고,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을 수 있고, 공부했거나 케이팝이나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을 수도 있고. 각자 상상하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오호라, 답이 없다 이거지? 나는 나의 상상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 아노의 한 마디가 힌트처럼 들렸다. 섹스를 거절하고 집에 가야 한다는 아노에게 호이가는 협박처럼 “너 안 태워다 준다? 곧 늑대들이 울부짖을걸?” 이라며 침대에 누워버린다. 그런 그에게 아노는 콧방귀를 뀌며 답한다. “그러시던가. 여자가 아니라면 아닌 거야(No means no).” 


그동안 여자의 No를 Yes로 여겼던 이유를 돌이켜 보면 ‘여자의 언어는 남자의 것과 다르다’라고 온 사회가 잘못 믿어왔기 때문이다. 여자의 말이라고 하면 내숭을 잔뜩 부려 아닌 척하고, 좀 빼고, 빙빙 돌려 말하고, 숨겨진 의중이 반드시 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섹스만 그런 게 아니다. “오빠, 이거 예쁘다. 그치?”, “그래서 오빠가 뭘 잘못했는데?”, “됐어. 내가 연락할 때까지 연락하지 마.”라는 말을 반복하며 연애의 주체자인 여성을 얼마나 지겹도록 조롱해왔나. 특히 ‘여자어’라는 명칭과 함께.  


ⓒ아노와 호이가


아노가 호이가는 절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여전히 “싫다”는 메시지를 말할 때, 이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여성의 행복’이 ‘언어’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비로소 납득이 갔다. 그토록 남자들이 해석하기 어렵다던 여자의 언어랄 게 있을 리가 있나. 그냥 그 자체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을. 익숙한 몽골어로든, 알 수 없는 외국어로든 의미는 매한가지다. No means no. 이 말이 살아있을 때 진짜 ‘여성의 행복’도 존속할 수 있다.


사실 랑콤이 영화 속에서 밀고 싶던 장면은 따로 있는 듯했다. 랑콤 화장품으로 화장을 막 마친 아노에게 호이가가 “그렇게 예쁘게 꾸미고 낙타를 돌보러 간다고? 솔직히 말해.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이러는 건데?”라고 묻는 장면. 그리고 아노가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거 아니거든?”이라고 답하는 장면. 하지만 나는 이 장면보다는, 아노가 어떤 언어로든 일관된 의견을 말하는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튼튼하고 큰 기둥이라고 생각했다. 


안 태워 줄 테니 알아서 걸어가라던 호이가를 두고 아노는 게르 밖을 씩씩하게 나섰다. “눈이 왔네! 가볼까나?” 혼잣말을 하고 환하게 웃기까지 했다. 발자국이 푹푹 찍히는 눈밭 위로 성큼성큼 걷는 뒷모습이 너무 경쾌해서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행복한 여자를 생각해 보다가 초반의 장면이 불쑥 떠올랐다. 세상이 점점 험악해지고 있다며 겁을 주는 호이가에게 아노가 했던 단 한 마디. “나는 유목민이야. 어디든지 갈 수 있어.”


ⓒ아노와 호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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