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난 네가 미워졌어 - 프롤로그
오늘의 나를 구성한 선택에 관한 수필
어젯밤에 난 네가 미워졌어
우리 엄마가 뱃속에 날 가졌을 때에는 첫째 딸을 잃고, 그 뒤에 겨우 얻은 두 번째 첫째 딸이 돌에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몇 번 부르지 못한 첫 아이의 이름은 은영이다. 엄마는 은영이 이름을 목구멍 밖으로 꺼낼 때마다 여전히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성겨 온다고 했다. 은영이는 온 힘을 다해 모체로부터 겨우 빠져나왔지만 인큐베이터가 세상의 전부인 줄로만 알다 떠났다. 아주 가끔 엄마의 꿈나라에 놀러 와서는 태산같이 우렁찬 울음을 선보이고 홀연 사라진다고 했다. 그런 날이면 엄마는 빠짐없이 아팠다.
같은 인큐베이터에 두 번째 첫째 딸, 호연이가 들어갔다. 세상으로 멋지게 입장하는 순간 몸이 거꾸로 뒤집어져 나왔고 턱이 엄마의 몸에 턱! 걸렸다고 했다. 숨을 잘 쉬지 못해 인큐베이터의 힘을 빌려야 했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은영이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호연이는 젖을 많이 먹고 쑥쑥 자라주었고 불행스럽게도 여전히 많이 먹는다. 어쨌든 엄마의 모든 신경은 이토록 귀한 맏딸에게 쏟아져 있었다. 행복했지만 피로했다. 가사 노동과 육아는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고 먼 지역의 친정 식구 손을 빌리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엄마는 연년생 아이를 키우는 게 도저히 엄두 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둘째 딸, 비공식적으로는 셋째 딸인 나. 자연이는 아무래도 계획에서 지워야 할 것만 같았다. 아직 얼굴도 만들어지지 않은 세포에 죄스러움을 이고 지던 어느 날, 아빠가 일터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헐레벌떡 찾아간 곳에는 모든 걸 계획한 멀쩡한 아빠가 있었고 둘은 점심으로 냉면을 먹었다. 그리고 아빠가 말했다. 둘째도 낳자.
그렇게 태어난 게 나다. 어때? 내 탄생 설화. 그러니까 나는 냉면으로 태어난 아이다. 모두가 엄마의 고통과 외로움을 외면한 결과로 엄마는 낙태를 선택하려 했다. 하지만 냉면을 먹으며 나누었던, 나는 모르는 그 시간이 엄마의 선택과 나의 운명을 바꾸었다. 냉면이 없었더라면 그 기로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만약 냉면이 아니라 고등어 구이나 불고기 백반이었으면? 아님 냉면을 먹고 체했다면? 냉면이 너무 맛이 없었다면? 내 탄생 에피소드를 곱씹다가 불현듯 더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나를 구성한 나의 선택들은 무엇이 있었는지. 그래서 그것들이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몸이 아프면 마지막 끼니에 뭘 먹었나 되짚어 보고, 어제 미룬 일로 오늘 고통받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 그 말은 결국 그때의 선택(무엇을 먹을지, 일을 내일로 미룰지)이 오늘의 나를 만든다는 우주보편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아주 자주 지난 선택들을 미워하곤 한다. 그 선택은 긴 마감 끝에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 절체절명의 순간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 나의 자취. 나의 총합. 나.
이 꼭지의 이름은 <어젯밤에 난 네가 미워졌어>다. ‘소방차’의 노래 [어젯밤 이야기]의 첫 소절이다. 이 노래 속 화자의 마음으로 숱한 나의 선택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어젯밤엔 난 네(선택)가 (또) 미워졌어. 이 세상을 다 준대도 바꿀 수가 없는 난데 너는 그걸 왜 모르니.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