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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빗ORBIT May 15. 2020

지구에서 사라지는 법

기운이 없다. 나더러 기운 좀 차리라고 삼계탕을 먹으러 갔다. 저녁에는 다리를 꼬고 속이 꽉 찬 사람이 되어야지. 찹쌀처럼 찰기 어린 말만 내뱉어야지. 삼계탕집 이름이 팔도라서 나는 문득 팔도를 유랑하고 싶어 졌다. 다리를 꼰 나도 멋진데 유랑하는 나는 더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하는 나는 연휴에 일터에 묶여서 일과 씨름하고 시름이 잦고 시름시름 앓기도 하는 걸. 거지 같아. 삼계탕집 마당에는 꽃잎이 떨어져 가는 모란꽃이 바람에 일렁인다. 얼마나 큰지 흔들리는 모양새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꽃 한 송이가 얼굴만 하다. 향기를 맡으려고 꽃 속에 얼굴을 처박는다. 모란꽃이 얼굴을 삼킨다. 너는 라플레시아. 꽃들의 피라냐. 나는 벌이야. 땡벌. 도롱 도롱 꿀을 빨 테야. 도시 양봉을 배운 적이 있다. 벌들의 철저한 계급사회에 기가 질려서 이제 양봉이라면 엄두가 안 나지만 여전히 꿀은 좋다. 뜨끈하고 끈적한 꿀. 일벌의 고난을 음미한다. 사람들이 벌에 여러 번 쏘여 고생할 동안 나는 무사했다. 벌들한테조차 나는 존재감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내게서 동류의 징후라도 발견한 걸까. 일벌이 되기는 싫어! 전자보다 후자를 더 기분 나빠하며 닭의 다리를 찢는다. 잘게 자주 움직이는 부위일수록 맛있데. 엉성한 나의 갈비뼈를 바라본다. 이런 뼈로는 아무도 태어나게 할 수가 없었겠지. 나는 고기의 인간. 고기로 태어나 고기를 먹고 고기로 돌아간다. 동물의 복지보다 나의 복지가 시급해서 나는 저열하다. 단백질을 생성하는 일에 혈안이 된다. 마당의 모란꽃 따위는 잊고 와구와구 입 속으로 밀어 넣는 오늘의 분노. 배를 채우니 늘어진다. 가만히 마당을 바라본다. 나무처럼 무성한 모란꽃이 여전히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정원이라는 안일한 단어보다 마당이라는 생기 어린 말이 좋다. 마당은 뭐든 될 수 있다. 주차장도 텃밭도 결혼식장도 장례식장도 공터도. 이 얼마나 지구 다운지. 지구가 품은 벌도 모란꽃도 삼계탕도 나도 다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은 삼계탕과 함께한 인삼주 탓이다. 인삼은 하필이면 인간을 닮아서 맛도 쓴 걸까. 일벌이 한 달 내도록 날개를 저어가며 모은 꿀은 한 스푼도 채 안된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좌절은 쓰다. 인내 따위보다. 그러나 나는 모쪼록 쓴맛이 좋다. 커피도 술도 약도 쓰니까 삼킨다. 모순이라고 쓰고 나라고 읽는다. 일 때문에 취하지도 못하고 비틀거린다. 취하지도 않았으면서 비틀거리는 것은 추하다. 나의 추함을 피해보려 천체망원경을 뒤적거린다. 가끔 일터 옥상에 달을 보려고 걸어둔 초급자용이다. 유명한 별자리를 훑거나 달을 관음 하노라면 나는 저만치 사라진다. 달이 나를 가만히 구경한다. 육각의 건물에 나를 배양해서 일터로 내몬다. 꿀이라도 주랴. 지구와 달 사이에 몸을 던지기에 옥상은 기만적인 장소다. 담배 연기조차 위로 피어오르는데 왜 나는 추락하고야 마는 걸까. 다리를 꼰다. 나는 정말이지 찰기 어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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