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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빗ORBIT May 15. 2020

오월성

5월은 어떤 맛입니까? 나의 별에는 오월이 없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활엽수들의 자욱한 냄새를 맡고 싶습니다. 희붐한 물안개와 싹이 찐 풀숲은 문헌으로 전해집니다. 문헌의 냄새는 헌책방과도 같습니다. 부재하는 오월의 가슴에는 젖이 흐른 흔적만 있습니다. 하얀 풍선이 날아갑니다. 헬륨의 형의를 입고 사라질 일입니다. 신부는 곧 소박을 맞을 차례입니다. 내쳐진 상처는 계절을 좀 먹고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신방에는 고목이 썩어가네요. 이끼로 만든 향을 피웁니다. 오월을 모르는 나에게 묵념합시다. 전구가 달린 연등이 나부낍니다. 시절이 공존합니다. 구전되던 초록이 빼곡한 광경을 상상합니다. 오월이라고 발음하는 것은 어쩐지 아침에 지나치는 장례식장과도 같이 부조리합니다. 죽음은 어디에나 있어. 어제 주워 먹은 단어가 오늘 체했습니다. 백지에 왈칵 쏟아낸 구토에 오월의 구절이 적혀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죽을 모양입니다. 부처가 태어나고 어린이와 어버이와 근로자와 스승이 생을 부추깁니다. 종합소득세를 내지 않으면 아무런 소득이 없습니다. 장미 꽃잎으로 만든 고지서를 손에 쥐고 부들 거립니다. 이른 수박이 무른 딸기를 밀어냅니다. 하잘 것 없는 별에 계절이 존재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짐작도 못했습니다. 어린 별이 오월의 꿈을 꾸고 나니 몸살을 앓습니다. 불기둥이 치솟습니다. 영원한 얼음을 간직한 바다는 태양계로부터 멀어집니다. 모든 온기로부터 유배당합니다. 그것이 오월 없이 사는 별의 숙명입니다. 오월에는 제발 아무도 태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쏟아지는 생을 반길 수가 없습니다. 토끼풀로 만든 화관은 달의 모조품입니다. 오월은 진짜를 섭렵합니다. 그러므로 오월은 정확히 나의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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