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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Yeon Cha Oct 19. 2015

베를린 할무니 할부지랑
​베네치아 가는 길~♬

신랑이랑 유럽여행 여섯째 날.-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 가는 기차 안

잘츠부르크에서 베네치아 가는 날.

다들 이동시간을 절약할겸 야간열차(쿠셋)로 갈 만큼

꽤 오랜 시간 기차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여정인데

우리는 낮에는 여행, 밤에는 쉬면서

최대한 22일간의 유럽여행의 컨디션을 지켜나가기 위해

한국에서 낮시간을 이용해 이동하는 열차를 예약했다.


하지만 굳이 원치 않았으나 뮌헨에 사는 진드기씨들의 환영파티에

몸을 맡기느라 바닥으로 떨어진 체력이 

파티... 그 날 이후로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게 철저히 지키려 했던 컨디션이건만

우리는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베네치아행 기차에 오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잘츠부르크에서 베네치아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인스브루크까지 약 2시간 가서 베네치아행 열차로 환승해서

다시 약 4시간 반동안 가야 한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나와서 인스브루크행 열차를 탄 후

우선 미친 듯이 두 시간가량 헤드뱅잉을 한 후,

인스브루크에 내려서 간단히 브런치 할 수 있는

빵과 마실 거리를 샀고

베네치아행 열차에 올랐다.


베네치아는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가고 싶었던 곳이고

어른이 되면 신혼여행으로 가겠다며

누군지도 모를 미래의 신랑에게 우겼더랬다.

결국 신혼여행은 다른 곳으로 갔지만

옛날 어디선가 살고 있던 신랑이 귀가 간지러웠나...

이렇게 회사 그만두고 데리고 와 주다니...

고고고마워야 하는 거지?

ㅎㅎㅎ


잘츠에서 인스브루크까지 잠시나마

헤드뱅잉으로 머리를 누르던 피곤함을 털어서일까

정신이 말끔해지고 몸에 바람이 들어간 것이

다시 '머 신나는 일 없나?' 궁리하는

호기심 가득 장전한 원래의 '나'로 충전돼 있었다.

(그런 나를 보는 신랑은 뭔가 불안한 듯 바라봄.)


유레일 패스 예약할 때

우리 나이는 싼 2등석을 예매할 수 없었다.

무조건 1등석만 타야 했다.

왜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그랬다.

(혹시 우리가 잘못 안 것인가?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그랬다.)

자의는 아니지만 비싸지만 편한 1등석만 타다가

베네치아행 열차는 2등석 좁은 열차칸에 타야 했는데

그 이유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머... 중요한 거 아니니까 패스~)


한국에서 예매할 때는

'내가 싼 표를 예매하겠다는데 왜 안된다는 거야?'

하며 이해도 안 되고 부당하다는 생각에 짜증도 났는데

막상 1등석 타고 편하게 여행하다 보니

이번엔 좁은 2등석에 오르자마자 갑갑해서 짜증이 났다.

인간이 이렇게 간사할 수가...


하도 소매치기니 뭐니 들은 얘기가 많아 겁도 나고

좁은 열차 통로에는 이 사람 저 사람들 짐이 나와 있어서 발에 치이고

우리 트렁크는 하필 집채만 한 크기를 가져와서는

우리가 트렁크 주인인지 트렁크가 우리 주인님인지...

가까스로 비좁고 비좁은 틈을 가르고 지나가

우리 자리를 찾았다.


신랑이 낑낑거리며 트렁크를 머리 위 짐칸에 올리는 순간,

우리는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한다.


60대 후반 즈음되어 보이시는 할무니 할부지이셨는데

젊은 부부? 연인쯤으로 보이는 우리가 낑낑대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던 모양이다.

포근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시더니

두 분이 뭔가 말씀을 나누시고는 다시 웃음을 지으신다.


할무니는 갈색 커트머리에 동글동글한 얼굴형에

아담한 체구이셨고

할부지는 하얀 백발에 하늘빛 니트를 입으셨는데

조금 날씬한 KFC 할아버지같이 생기셨다.


두 분을 본 순간

난 결심했다.

이분들과 베네치아 가는 여정 동안

이야기 꽃을 피워보리라.

나의 결심을 눈치챈 신랑은

지긋이 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말 걸지 마. 제발..."

(신랑은 매우 수줍음이 많고 모르는 길도 웬만해서는 묻지 않을 만큼

낯선 이에게 말 거는 것을 매우 매우 싫어하는 사람.)


그러나 나는 날 잡은 그의 손을 쓸어 내리며

"ㅎㅎㅎ 싫어!"

라고 말했다.

신랑은 한 번 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으며

간절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지만

나는 신랑을 향해 한쪽 입꼬리를 올려 보인 후

우리 앞의 노부부에게 재빠르게 말을 걸었다.

"헬로우~^^"


그때부터 무릎을 맞댄 노부부와 신출내기 우리 부부의

운명적인 만남의 서사시가 펼쳐졌다.


계속해서 웃고 계시던 두 분은 반갑게 화답했다.

"할로우~"


나는 빨리 다음 말을 생각해 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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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한국말 전체 번역입니다.ㅋㅋㅋ


뭔가 말은 하고 싶은데 생각이 나지 않아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나에게

할무니가 먼저 말을 걸어오셨다.

"여행 중이신가?"

"네~"

"연인?"

"아니요. 부부예요. 결혼 한 지 2년 되었어요."

"오! 어려 보이는데 부부라고? 놀랍군."

"저는 32살이고 신랑은 34살이에요."

"오 훨씬 어려 보이는데... 호호호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요."

"네 반갑습니다. 그런데 어디 가는 중이세요?"

"우리는 온천 가는 중이에요. 그쪽은 베네치아 가는 길이죠?"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호호호 대부분 여행객들이 베네치아를 가기 위해 이 기차에 오르니까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두 여자는 한 동안 말을 이어갔다.


두 분은 베를린에서 살고 계시고 

이탈리아에 베네치아 도착하기 1시간 전쯤 한 역이 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안타깝지만 그 곳으로 온천여행을 가는 중이라고 하셨다.

할무니가 류마티즘을 앓고 계셔서 종종 찾는 곳인데 매우 좋다고 우리에게도 추천하셨다.


그렇게 한 20분 이야기 나누다가 영어도 달리고 할 이야기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고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서 미리 사 두었던 빵과 음료수를 꺼내었다.

나는 할무니 할부지께도 함께 드시라고 빵을 건네었다.

그런데 괜찮다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으셨다.

한국 예의상 한 번 더 권한 나에게 이번엔 손까지 저으며 적극 사양하셨다.

하는 수 없이 신랑과 나는 부스러기를 잔뜩 흘리며 준비해 온 빵을 먹었다.


마주 보고 있는 할무니 할부지와 눈인사하랴

얼굴과 무릎 위로 떨어진 빵 부스러기 털어내랴

약간의 민망함을 머금고 분주하게 빵을 먹어대고 있는데

크로와상부터 알 수 없는 이름의 샌드위치까지

끝나지 않는 브런치를 하는 우리를 보고

두분도 출출하셨던 걸까

할부지가 식당칸에서 샌드위치 같은 것을 사 오셨다.


그때 틈을 보던 내가 물티슈를 권하며

"얼마든지 필요할 때 쓰세요."

했더니 또 한 번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하신다.


살짝 무안해질 만도 한 타이밍에

절대 굽힘 없는 나의 오지랖은 마지막 필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껌을 꺼내어 건네었다.

옆에서 신랑이 조용히

"유럽인들에겐 너의 친절이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어."

라고 하는 것 아닌가...

순간 깨달음이 머리를 스쳤으나 내 손은 이미 껌을 두 분께로

쭉 내밀고 있었으니...

다시 담을 수도 없고 그저 웃을 수밖에...

그런데 다행히 이번엔 고맙다며 받아주셨다.

"참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아가씨군요. 고마워요."


여행하면서 활짝 열린 마음이

가뜩이나 오지랖 넓은 날 더 상기되게 한 탓에

친절이라고 베푸는 행동이 누군가에겐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울 수 있겠단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정신을 붙들어 줄 침착한 신랑이 있어서 다행이었고

나의 친절을 처음엔 낯설어했으나 이내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 준 베를린 할무니 할부지 덕에 내민 손이 부끄럽지 않았다.


두 분께 처음엔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를 나의 친절 담은 오지랖 덕에

무릎을 맞대고 베네치아를 향하는 네 사람은

국경, 인종, 나이, 성별, 언어 아무것도 상관없이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두 분에겐 아이가 없다고 하셨다.

옛날에 많이 가난해서 아이 갖는 것을 미뤘고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후 새로운 일거리도 찾고

자리를 잡아가며 아이를 가지려고 했을 땐 생기지 않았다며

우리에게도 아이를 가질 것이라면 미루지 말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러면서 갑자기 할무니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시더니

"인사해요. 여기는 럭키예요."

라고 말씀하시며 참새인형을 꺼내셨다.

정말 참새처럼 생긴 그 인형은 할무니에게 행운의 마스코트라고 하셨다.

럭키는 아마도 할무니에게 귀여운 아기처럼 위안이 되는 존재인 것 같았다.

열차 안에서 만난 우리 부부에게 할무니의 소중한 럭키를 소개해 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할부지도 보여주실 것이 있다시며 뭔가 꺼내어 간이 탁자 위에 올려 놓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  신랑과 나,  소금과 후추!  뗄 수 없는 관계.

좀 전에 할부지가 샌드위치를 살 때 뿌려 먹으라고 준 일회용 향신료 통이었다.

우리 네 사람은 그 향신료 통을 보자마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 반만한 크기의 향신료 통이 앙증맞게 생긴 것이 정말 귀여웠다.

이탈리아 인들의 손재주와 아기자기한 미적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물건이었다.

한참을 웃으시던 할부지가 던지신 함축적인 한 마디!!

"으흐흐흐 이탈리안~!!!"


할부지는 계속 무언가 권하던 나에게 고마움의 선물로 이 향신료 통을 주셨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우리와 닮아 있는 선물이다.

할무니와 할부지,

나와 신랑,

소금과 후추...

정말 뗄 수 없는 환상의 짝꿍!

'신랑~ 이렇게 꼭 붙어 다니장!'


할무니와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눈웃음만 지으며 곁에 있던 할부지와 신랑도 향신료 통 이후로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할부지는 영어를 전혀 못하신다고 했다.

할무니는 옛날 영국의 멋쟁이와 펜팔을 하시며 영어실력을 쌓으셨다고...ㅋㅋ

조금 편안해 지신 할부지는 미소만 머금고 계시던 KFC 할아버지 옷을 벗고

어느 새 염려 가득한 한국의 울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앉아계셨다.

"영감이 베네치아는 조심하라고 전하라네요. 소매치기가 많다고..."


"@#%&*(^&**!!!!!!"

"뭐라고요? 아이 됐어요. 뭘 그런 얘기까지... 저들이 알아서 한다고요."

갑자기 할무니가 독일어로 할부지와 말씀하시는데 나는 한국말처럼 알아듣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알려줘야 한다고. 조심해야 한대도~!"

할부지가 빨리 통역하라고 할무니를 쿡쿡 쑤신다.

못 이기신 할무니가

"영감이 당신들을 엄청 걱정하고 있어요. 안 해도 되는 걱정을... 으흐흐흐"

"늙으면 간섭이 심해진다오!!ㅎㅎㅎ"

라고 하셨다.

답답하신 할부지는 손짓 발짓을 모두 모아 팬터마임을 시작하셨다.

그렇게 준엄하신 모습이던 할부지는

찰리 채플린도 울고 갈 만한 슬랩스틱 개그까지 선보이시며

우리에게 베네치아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이야기하셨다.

소매치기와 소매치기당한 사람, 1인 2역을 소화하시던 할부지...

그립다.


할부지에게 동화되어 신랑도 팬터마임을 시작하였다.

역시 배움은 어딘가에 다 쓰이는 날이 온다더니

연극과 나온 실력이 돋보이던 때였다!ㅋㅋㅋ


한참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세 시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고

곧 할무니 할부지가 내리실 때가 되었다.


"정말 만나서 반가웠어요. 오늘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왔군요.

항상 어디서나 행복하길 기도할게요. 우리 럭키와 함께."

"베네치아 소매치기 꼭 조심하라고!! 즐거운 여행 하구~!"


할무니 할부지와 껴안고 볼을 비비며 뺨에 키스를 나눴다.


할무니 할부지와의 만남의 여운을 느끼다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는데

할무니 할부지가 고개를 쭉 빼시고 우리를 찾고 계셨다.

벌떡 일어나 창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손바닥에 키스를 묻혀 연실 창쪽으로 날려 보냈다.

열차가 출발해서 움직이는 한 동안 우리 쪽을 따라오며

키스 묻은 손을 흔들어 보내던 할무니 할부지...

'두 분이서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두 분과 한참을 이야기하면서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데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마음과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가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등석 넓은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2등석의 좁은 공간에서 무릎과 무릎이 닿아 체온이

전하는 따뜻한 기억...


베네치아 가는 길에 만난 두 분의 오래 익어진 사랑의 모습은

우리의 도화지에 미래로 그려지고 있었다.


결혼 30주년 즈음 다시 베네치아행 열차에 함께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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