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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Yeon Cha Oct 23. 2015

피렌체의 붉은 지붕 위에 오르다

신랑이랑 유럽여행  ​여덟번째 날-이탈리아 피렌체


많은 이들이 피렌체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붉은 지붕 외에 무슨 볼거리가 있겠냐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유명하다는 이름의 피렌체에 발도장이나 찍겠다는 생각으로 기차에 올랐다.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까지는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우리는 피렌체에 8시간 정도 머무르기로 하고 기차를 예약해서 왔다.

그저 레스토랑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노천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하고 지금까지의 여정과 달리

쉬어가기 코스로 관광명소에서 인증사진이나 찍고 여유 있게 로마로 돌아오면 되겠다 생각하고

부담 없이 둘러보기 시작했다.

처음 맞이하게 된 장소는 역 이름에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고 있는 산타마리아 노벨라 교회였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교회











          


          계획대로 사진만 몇 컷 찍고 지나친 곳인데

     여행을 마치고 알게 된 사실은 모 여배우가 써서

     유명해졌다는 수분크림의 '본거지'였다는 사실.

                                             아깝다...



조토의 종탑 앞에서













역시나 그저 명소 앞에서 한 컷 남기고 있다.







유럽의 아름다운 건물들도 며칠 동안 눈에 익숙해지다 보니 슬슬 지루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여행 중에 생긴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 때문에 살짝 체력이 달리고 있었고

우리에겐 가만히 쉬어가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한 때였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를 유럽에 와서 마음을 비우고 가만히 있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결국 '피렌체에 왔는데 두오모 지붕이라도 봐야 하지 않겠냐.' 며 티켓을 샀고

어느 새 두오모 지붕 위로 올라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큰 맘 먹어야 올 수 있는 곳에 와서 여유 있고 멋스럽게 느끼는 여행을 하기란 쉽지가 않다.


어두컴컴한 좁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다지 원치 않는 이 일을 왜 하는 것일까? 여러 차례 물어가면서...


두오모의 464개의 계단을 올라가다.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니다.



결혼 후 제대로 운동다운 운동을 해 본 적 없이 말초신경만 까딱 거리며 살다가

두오모 제일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464개의 계단을 밟으려고 하니

허벅지는 숨겨둔 말근육이 솟아 오르고 숨은 턱까지 차올라 꼴깍꼴깍 넘어가게 생겼고

급 상승한 혈압 때문에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

'지금 뭐하는 짓이지?'

또 스스로에게 물었다.

좁은 계단길을 쉬어갈 수만 있다면 그나마 할 만할 텐데 뒤에서 똥침 하듯 올라오는 관광객들 덕분에

고행길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나 살려...'

결국 나중엔 거의 네발로 기어가듯 올랐던 기억이...

머 이쯤이야 하며 올라갈 사람도 많겠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계단을 오르던 모든 사람들이

사색이 되었다는 것은 엄살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더 이상 못 가겠어!!' 바로 그때 쉬어갈 수 있는 전망대가 나왔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더 이상 못 하겠어!' 할 때 길이 보일지도...


철조망으로 가려진 창문 틈으로 피렌체가 보였다.

'와...'

아름다웠다.

정말 한톨만큼도 기대하지 않았건만 우리는 그대로 멈춰 서서 밖을 보았다.

그때,

"Excuse me, Can you take a picture of me?"

우리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동양인 여자가 사진기를 내밀고 있었다.

흔쾌히 사진기를 받아 들고 각도를 위해 허리도 꺾어보고 무릎도 꿇어가면서 열정적으로

그녀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이번엔 그녀가 우리의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나서더니 똑같이 허리도 꺾고 무릎도 꿇고 심지어는

우리를 여기저기로 체스판에 말 옮기듯 움직이며 적극적으로 찍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여행 내내 동양인을 마주친 적이 없었기에 그녀에게 고향 친구 만난 듯 마음이 갔다.

사실 사진을 열심히 찍어 준 그녀에게 고마워서 더 그랬다.

그 순간 또 오지랖 발동한 나는 혹시 피렌체를 함께 둘러보지 않겠냐며 제안했고

혼자 여행 중이던 그녀도 외로웠던 것인지? 적극적인 나를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인지... 흔쾌히 수락했다.


순식간에 둘이 아니라 셋이 된 우리는 두오모 제일 꼭대기 전망대로 향했다.

그녀는 중국인이었고 상하이에 살고 있으며 남편과 아들을 떼어놓고 혼자 여행을 왔다고 했다.

사실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 '혼자'보다는 '같이'를 좋아한다는 것인데 그런 이유로 혼자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


그녀와 통성명을 하고 이런저런 서먹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전망대에 다다랐다.

두오모의 붉은 지붕












모두가 입을 모아

피렌체의 두오모를 부르짖는 이유...

전망대에 오르고서야 알 수 있다.





두오모 전망대에서

우리 더하기 그녀 이렇게 셋은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대며 감동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하고 유럽에 온 듯했다.

우리가 산 티켓이 두오모뿐만 아니라 조토의 종탑과 우피치 미술관까지도 모두 관람이 가능한 티켓이라는

사실을 그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공부해 온 지식들로 가이드도 해 주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영어가 짧은데 그녀의 특유의 억양으로 인해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신기한 건 어느 순간부터 한국어도 중국어도 영어도 아닌 언어로 들린다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는 것은 언어가 아닌지도 모른다.

가끔 같은 한국말을 하는 신랑과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데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그녀와 나는 그렇게 잘 통했으니 말이다.


한동안 그녀와 명소를 둘러보고서야 헤어졌다.

피렌체에서 머물기로 한 시간의 반에 가까운 시간을 그녀와 보내다가 헤어지려니 아쉬웠지만

우리가 마지막 목적지로 계획한 미켈란젤로 광장을 그녀는 이미 다녀온지라

우리 셋은 각자의 계획대로 발을 옮기기로 했다.


그때 서로 나눈 메일 주소를 통해 지금까지도 가끔 안부를 묻는다.


다시 우리 둘이 되었다.

우리는 손잡고 마지막 목적지로 향했다.

베키오 다리

베키오 다리를 지나서 한동안 걸으면 미켈란 젤로 광장으로 올라가는 긴 계단 길이 나온다.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계단을 한참 걸어 올라가고 나서야 미켈란젤로 광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 광장에 오르자 우리는 진짜 피렌체를 만날 수 있었다.


'항상 '우리'였던 우리에서 분리돼 잠시 혼자 피렌체를 만나고 있는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사실 이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이 순간 다시 사진을 통해 신랑을 보자니 쓸쓸함이 느껴진다.

살기 위해 그만둔 직장이었지만 돌아갈 직장을 두지 않고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겠지?



신랑은 내가 웃을 때 가장 예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랑에게 이 말을 처음 듣기 전까지 나는 항상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버릇이 있었다.

스스로 웃는 얼굴이 못났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예뻐 보이기 위해서 손을 내리고 웃기 시작했고

나는 진짜 기쁨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나는 웃는 내가 가장 예쁘다는 신랑 앞에서 가장 나다운 웃음을 짓고

웃는 내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신랑은 나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 애 쓴다는 것을 잘 안다.


나의 신랑 나의 전부를 위해 일곱 번 넘어져도 웃으리라!


우리는 피렌체의 붉은 지붕과 노을이 뒤엉켜 붉은 물결을 이루는 장관을 뒤로 하고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도 이렇게 멋진 선물로 다가와 주는데 기대하는 우리 삶은 얼마나 더 멋질까?

그래서 좌절보다는 기대하며 살겠다!

신나는 인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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