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랑 유럽여행 아홉 번째 날-이탈리아 로마
우리는 이탈리아 몇 곳을 투어를 신청해서 둘러보기로 했다.
대중교통으로 이탈리아를 다 둘러보기에는 시간 소비가 크다고 판단하였고
무엇보다 로마의 많은 유적들을 직접 공부하고 만나기에는 그 양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첫날은 로마버스투어, 다음 날은 토스카나 버스투어, 마지막 날 남부 해안투어로 스케줄을 짜서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우리는 '바실리카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 앞에서 모여 로마투어를 시작했다.
어릴 적에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에서 인형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모습으로
눈을 깜박이던 여배우 '오드리 헵번'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녀의 깜찍한 외모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반하기에 충분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내용보다는 오드리 헵번이 짓는 표정이나 몸짓, 입었던 옷,
그리고 그녀의 발길이 닿는 곳곳의 장소들에 마음을 빼앗겼었다.
'나도 꼭 저런 드레스 입고 멋있는 남자랑 로마를 돌아다녀야지!' 하고 굳게 마음 먹었었다.
그러고서 강산이 세 번째 변하려고 할 즈음 멋있는 남자? 자리에 선 신랑과 영화 속 오드리 헵번 보다는
다소 나이 먹고 살집 있는 내가 로마에 서 있었다.
내가 로맨틱하다고 느끼는 5~60년대의 흑백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여자들의 치마...
허리라인부터 A라인으로 쫙 퍼지던 헵번의 드레스와 같은 로맨틱 무드를 뽐내기엔
너무 간편함에 익숙해진 지금의 시대가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
뻔뻔스럽게 로맨틱한 드레스를 입고 투어를 다니기엔 자신감이 조금 부족했던지라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은 간편한 복장에 마음만으로 헵번이 되어보기로 했다.
책에서나 보았던 콜로세움을 눈 앞에서 보고 있자니 또 현실감각을 잃게 되었다.
이렇게 웅장하고 오랜 세월의 멋을 지닌 유적을 날마다 보면서 살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해졌다.
바닥에 기하학적인 무늬가 미켈란젤로의 작품인데 실제로는 직선으로 그려진 도형이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곡선의 예쁜 무늬로 보인다고 한다.
포로 로마는 콜로세움과 카피톨 언덕 사이에 있는 고대 로마의 중심지로써
정치, 경제, 법, 종교 활동을 활발히 하던 곳이라고 한다.
가이드가 원래의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측하여 작업해 놓은 가상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사진을 본 후 유적 앞에 서서 조금의 상상력을 불어넣자 옛 로마시대의 온전했던 모습으로 눈 앞에 펼쳐졌다.
요즘 밋밋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세워진 건축물들보다 섬세하게 예술미를 살린 옛 유적에서
인간의 격과 존엄성이 느껴졌다면 과한 것일까?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아기들을 표현한 동상인데 두 명의 아기가 로마제국을 세운
로물루스와 레무스라고 한다.
타원형으로 길쭉한 모습을 한 광장은 원래 경기장으로 쓰였던 곳임을 알게 해 준단다.
광장을 바라보고 늘어선 카페와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여유로움을 안긴다.
미켈란젤로가 극찬한 건축물인 판테온은 정말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놀라운 건축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데
높이가 43.4m나 되는 건물 안에 기둥이 단 하나도 없고 반원형의 지붕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오는 자연채광으로 조명의 효과도 낼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비 오는 날 구멍으로 물이 다 들이칠텐데 어쩌나...' 했더니 건물 안의 더운 공기가 상승하면서 들이치는 비를 밖으로 밀어낸다고 한다.
여기에 그나마 남아 있는 습기 마저 바닥에 미세하게 뚫어놓은 배수구멍으로 모두 빠져나가게 되어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청 오래되고 맛있는 커피 집이라고 가이드가 추천하여 들어가게 된 곳인데
사람들이 많아서 바리스타들은 거의 영혼 없이 커피를 뽑아내고 있었다.
라떼와 에스프레소를 시켰던 것 같은데...
아무튼 놀랄 만큼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커피의 나라 답게 향과 맛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너무 바빠서 인상 팍 쓰고 있던 바리스타에게 여유를 선물하고 싶었던 나는 한국 껌을 내밀었다.
당황한 바리스타는 처음엔 어리둥절 하다가 '별 것 아니지만 당신을 위한 작은 선물' 이라며
통에 든 껌을 통째로 내밀자 갑자기 동료들에게 "와우 나 선물 받았다!"라고 외치더니
잘생긴 미소와 함께 "땡큐" 하며 윙크를 날렸다.
로마를 둘러본 후 버스를 타고 카타콤베와 수로를 보기 위해 이동했다.
먼저 들른 곳은 카타콤베인데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 이동해야 한다.
이 곳은 초기 기독교인의 지하 공동묘지인데 일부만 개방하고 있었다.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대에 묘지에는 아무나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로마 법이 있었는데 이점을 이용하여
기독교인들이 피신처로 사용했다고 한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누릴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현재도 일부 지역의 수로를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하는데 믿어지지 않았고 첨단 장비도 없었을 그 옛날에 경사도까지 고려하여 길고 긴 수로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대단한 로마의 건축물들을 보며 감탄할 때마다 수없이 피 눈물을 흘렸을 로마 노예들의 아우성이 들려오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기대했던 트레비 분수 앞에 도착하자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오드리 헵번처럼 포즈를 취하기는커녕 그저 평범한 한 컷을 찍기도 버거웠다.
까치발을 들고 종아리에 있는 힘껏 알을 세워봐도 파묻혀 버리는 나를 찾지 못해 신랑은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결국 한 손을 쭉 뻗어 존재를 알리고 처절한 한 컷을 남겼다.
젤라토 하나 사서 입에 물고 사진이라도 찍을까 했더니만 이 곳에서는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된단다.
자칫하면 경찰에게 벌금까지 물 수도 있다고 하니...
헵번 따라 하기는 영 글렀다.
'흥 칫 뿡!'
어찌됐든 로마의 꽉 찬 하루를 마음만큼은 상큼한 헵번이 되어 마음껏 누비고 다녔다.
버스투어라고는 하지만 80%는 걸어 다니며 투어를 하다 보니 다리도 퉁퉁 붓고 허기도 지고 해도 졌다.
우리는 호텔 가는 길목에 깔끔해 보이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정말 돌도 씹어 먹을 수 있을 만큼 배가 고팠다.
이곳은 이탈리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그럼 음식은 당연히 훌륭하겠지~♬
잔뜩 기대에 부풀어 봉골레 파스타와 해산물 리조토를 주문했다.
두구드구두구~짜짠~^^
설레는 마음으로 한 스푼 듬뿍 퍼서 입에 넣었다.
당연히 맛있어서 황홀한 표정을 지을 줄 알고 셔터를 누른 신랑의 사진 속에서
나는 적나라하게 맛이 없다고 답하고 있었다.
버적버적 씹히는 모래에 바다의 비린향을 그대로 품은 알알이 살아 있는 밥알이 목구멍 뒤로 넘어가지 못하고
입안에 맴돌고 있었다...
파스타에 대해서는 굳이 표현하지 않겠다.
아직도 입 안에서 그 맛이 정확히 맴도는 것을 보면 정말 맛있는 음식만 혀가 기억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여행 내내 경비 아끼느라 대부분 빵에 기대어 끼니를 때우다가 뮌헨 이후 큰 맘 먹고 레스토랑에 들어왔건만...
결국 배가 고파 돌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오만함이었을 뿐,
굶주린 배를 채우지 못하고 호텔로 향해야만 했다.
이 맥주를 어디서 샀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카타콤베 갔을 때였던 것 같은데...
아무튼 엄청 맛있는 맥주라고 가이드가 추천해서 맥주를 사랑하는 신랑이 덥석 물고 온 녀석이다.
우리는 결국 맥주로 배를 채우고 로마의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