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랑 유럽여행 열 번째 날-이탈리아 토스카나
이탈리아 투어 둘째 날.
사실 이번 유럽여행 중에서 가장 기대하던 일정이 바로 토스카나 지방 투어였다.
앞서서 만난 유럽의 다른 도시들도 정말 아름답고 정서를 동화처럼 물들이기에 충분했지만
흔한 유럽의 도시 이미지 대신 유럽의 자연이 채운 진짜 그들만의 아름다움이 묻어 있는 곳,
상상 속 그곳을 정확히 재현해 줄 곳은 토스카나 지방일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서둘러 준비하고 아침 일찍 호텔 조식당 오픈 하기도 전에 가서 빵 몇 조각을 챙겼다.
(호텔을 조식 포함으로 예매를 했는데 막상은 투어를 가기 위해 시간을 맞추어 조식을 할 수 없었기에
체크 인 하는 날 호텔 매니저에게 따로 부탁해서 빵 몇 조각을 챙겨가겠다고 이야기해 두었었다.)
우리는 세탁할 옷 가지를 담아오려고 챙겨갔던 비닐 백에 빵을 꾹꾹 눌러 담았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조식 준비 중인 식당 직원 분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우리가 빵을 싸는 이유를 설명했다. ㅋㅋㅋ
'우리 훔쳐가는 거 아닙니다!!!'
ㅎㅎㅎ
우리를 토스카나 지방으로 데려다 줄 버스에 올랐다.
역시나 배꼽시계 정확한 신랑은 싸 온 빵부터 하나 물고 나는 피곤함에 바로 잠이 들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중간에 휴게소에 잠시 들러서 간단히 아침 식사도 하고 볼일? 도 보기 위해
쉬었다 가는데 휴게소 곳곳에 쓰인 글씨만 다를 뿐 꼭 한국의 휴게소 같았다.
역시 사람 사는 곳 다 거기서 거기인가 보다.
버스는 설렘 가득한 여행객들을 싣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피곤했던 몸은 버스에 기대어 한동안 유럽에서 누리는 가장 비싼 낮잠을 즐겼다.
누가 잡아가도 모를 듯이
온몸의 근육을 이완시킨 채로 자고 있는데
일일 가이드의 목소리가 간질간질 귀를 자극했다.
이내 버스가 어딘 가에 멈춰 서더니 사람들의 감탄이 쏟아지듯 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눈을 뜨고 창을 내다 보고서 간절한 바람이었던 토스카나에 발을 내딛는 것이
지금, 순간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발도르챠 지역의 전망대였다.
마음에 그리던 풍경을 실제 눈으로 담을 때 비현실적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마음 외에 또 볼 수 있을지 모를 아름다움에 대한 안타까움,
함께 공유하고 싶은 이들에 대한 그리움, 너무 좋아서 막상은 어찌할 바 몰라 허둥지둥하고 있는 모습.
카메라에 담을 수 없어서 더 조바심 내어 눈에 담으려고 애썼다.
전망대에서 짧은 첫인사를 나누고 도착한 곳은 반뇨비뇨니 온천지역이었다.
이 곳은 정말 고요와 따뜻한 햇살만 가득했다.
이 곳에서 온천도 하고 여유로움도 한껏 즐기다 올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렇게 잠시나마 둘러볼 수 있는 기회라도 가질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다음으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와인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다 안다'는 와인이 이 곳 와인이라는데
그 맛을 확인할 수 있도록 와이너리 안을 견학하고 시음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와이너리 공정과정을 견학하던 중 가이드가 자신이 태어난 해에 담가진 와인이 있는지
찾아보라는 미션을 주었다.
그러나 모든 해에 생산된 와인이 다 남아있지는 못하다고 했다.
가끔 포도생산이 풍년을 이루지 못했거나 했을 때의 와인이 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혹시나 없어도 큰 일 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또 없으면 섭섭한 것이 사람 마음 아닌가?
매의 눈으로 와인 표딱지를 아무리 훑어보아도 내가 태어난 해의 와인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로또라도 당첨된 듯!
"있다! 있어! 여기! 내 꺼 있다.!!!!!"
신랑의 한 껏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태어난 해가 이탈리아도 좋은 해였던 것이 틀림없다며...
괜스레 얄미운 신랑을 향해 눈을 쭉 찢어 눈 화살을 쏘았더니
그제야 상심한 와이프의 마음을 다독이듯
"아니야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야. 그냥 재미로 하는 거지."
라고 말하며 나의 어깨를 감싸 안았지만 그의 얼굴에 퍼진 미소는
사라질 줄 몰랐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와이너리 안을 천천히 견학하고 나와서 드디어 시음을 할 수 있었다.
잔에 와인을 따르자마자 확 퍼지는 향이 입맛을 돋우었다.
그리고는 잔을 입에 조심스레 가져다 댄 후 섬세하게 한 모금 입 안에서 굴리며
맛을 음미해 보았다.
적당한 달콤함과 가볍지 않게 잡아주는 약간의 떫은맛, 은은한 향이
와인 전문가가 아닌 우리가 먹기에도 좋다라고 느껴졌다.
어차피 가이드 여행에서 유도하는 쇼핑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직접 맛 본 와인은 하나쯤 데리고 오기에 충분했다.
와인으로 입맛을 돋우자 먹돌이 먹순이의 배가 심하게 알람을 울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다음 행선지인 몬탈치노 마을에서 점심 자유식을 먹기로 되어 있었다.
몬탈치노는 해발 567m에 위치한
시에나와 피렌체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산꼭대기에 지어져 있는 마을은 요새처럼 형성되어 있다.
14-16세기까지 마을을 감싸고 있던 성벽과 망루들이 지금도 남아 있고
5000여 명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방문한 와이너리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이 생산되는 마을이기도 하다.
몬탈치노 마을에 도착한 후 먼저 점심시간을 가졌다.
가이드가 이 마을의 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여행 시작부터 칭찬일색이었다.
특히 질 좋은 스테이크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고
버섯요리가 굉장히 유명하다고 했다.
고기와 버섯 모두 좋아하는 재료이니 우리에겐 이보다 희소식이 어디 있을까?
가이드가 추천해 준 집이 있었지만 딱 점심시간에 걸려 모든 레스토랑에 자리가 없었다.
토스카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통창을 통해 한 눈에 즐길 수 있는 고급진 레스토랑은
들어갈 수 없음에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그래서 아쉬움을 대신할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갔다.
대단한 전경은 없지만 마을의 따뜻함과 향토적인 느낌을 가진 레스토랑이 우리의 발걸음을 당겼다.
메뉴판에 간단히 음식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었지만 그 정도로 맛을 확신할 수 없었다.
아무리 가이드가 이 곳 음식이 맛있다고 했어도 운이 나빴던 것인지 이탈리아에서
음식에 실패를 여러 번 맛본지라 한참을 고민했다.
레스토랑을 고르느라 점심시간의 1/3을 써 버렸기 때문에 음식을 주문하고 나오고 먹기까지
시간이 빠듯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우리는 일단 안전하게 피자를 하나 주문했고
이 곳에서 유명하다는 스테이크와 버섯 요리를 주문하였다.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사진에 보이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이 곳을 다시 찾고 싶을 정도로 최고였다.
우선 맨 앞에 보이는 것이 '풍기 크림치즈 어쩌고'하는 요리인데 향긋한 버섯에 크림치즈를 얹어
화덕에 구워 낸 요리다.
이 요리는 사실 파스타인 줄 알고 시켰다가 접시가 나온 것을 보고 당황했었는데
맛을 보고 또 한 번 당황했다.
정말 정말 정말 정~~~~ 말 맛있어서...
먹는 내내 친정아버지가 제일 많이 생각났다.
치즈를 워낙 좋아하시는데 분명 좋아하셨을 음식이기에...
다음은 피자!
피자는 나머지 두 가지의 요리에 밀려 흔한 맛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이태리에서 먹은 피자 중 제일 맛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스테이크!!!
솔직히 정확히 어떤 스테이크를 시켰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잡내도 하나도 없었고 향긋한 불향과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질감이 정말 최고였다.
이 곳의 스테이크가 왜 유명한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맛!
일단 맛에 감탄하고 양에 놀라고 가격에 만족하게 되는 스테이크!
어렴풋한 기억에 한국 돈으로 150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잠시 마을을 둘러보았다.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졌다.
마지막 목적지는 '삐엔차'라는 마을이었다.
이 곳 또한 몬탈치노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는 작은 마을이다.
치즈가 유명한 곳인데 특이한 점이라면 양젖으로 만든 치즈라는 점이다.
가이드가 치즈를 꼭 한번 시식해 보라고 권했지만 삐엔차 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많이 허락하지 않았기에 맛을 느껴보는 즐거움 대신 눈에 담는 즐거움을 선택했다.
가이드가 앞서 정말 아기자기하게 예쁜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정말 그랬다.
고요함에서 느껴지는 평안함, 평안함을 통해 생기는 여유, 햇살이 마음까지 따뜻하게 했다.
이 세상을 다 가보지는 못하였어도 할머니가 되어서 신랑과 함께 여생을 보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다면 지금도 그 마음엔 변함이 없다.
나름대로 길게 계획하고 온 유럽이지만 가야 할 곳이 너무 많아서 일정이 여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시간을 단축시켜 보려고 일일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는데
토스카나는 렌트해서 천천히 돌아다니며 여유를 한 껏 누리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다음 여행을 약속하게 하는 동기가 되니
또 하나의 그리울 친구 삐엔차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다시 로마에 돌아오니 어둑어둑해 있었다.
최대한 많이 보고 느끼기로 마음먹었던 우리는 피곤하지만 힘을 내어
콜로세움 야경을 욕심내 보기로 했다.
신랑이 지도들고 지름길이라며 안내하는데 한 번도 가보지 않고서 지름길이라니...
도시는 캄캄하고 인기척은 없고...
무슨 일이 일어나서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평소에 쓸데없는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겁 많기로 유명한데
역시나 긴장해서 신랑을 꼭 붙든 손에 땀이 촉촉하게 배어 있었다.
그렇게 꾸불꾸불한 길을 한동안 걸었는데
갑자기 길이 맞는지 어쩐지 알 수 없지만 왠지 틀려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새 새로운 자극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층 기분 좋아져 신랑 팔에 매달려 폴짝폴짝 뛰어가는데
오래된 바닥과 벽이 띄엄띄엄 있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서
은은한 분위기를 내는 통로를 만났다.
늘 이곳을 지나는 로마 시민에게는 큰 감흥이 없을지 몰라도
우리에겐 으슥함에 눌린 공포감마저 녹여버릴 만큼 매력적인 장소였다.
저 벽에 기대어 멋진 남자에게 키스를 받는 상상도 슬쩍해 보고...
'미안~! 신랑아...'
짜잔~!
드디어 콜로세움 앞에 도착했다.
낮에 본 콜로세움과 달리 조명이 밝히고 있는 콜로세움은 또 다른 웅장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현대인도 압도할만한 건축물인데 옛사람들에게는 그 위대함이 얼마나 더 컸을까...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항상 유명한 명소를 가면 어찌할 바 몰라 얼어버린다.
그래서 결국 선택하는 것은 최대한 좋은 배경 삼아 사진으로 남기기!
2000년 역사의 콜로세움 앞에 발도장 쾅 찍고 다음 날 투어를 위해 금세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굿바이~! 콜로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