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떠난 유럽 여행의 기차 안에서,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즉흥적으로 떠난 겨울 바다에서.
여름을 지난 어느 가을 면접장 앞에서나
영화 속에서는 그리도 운명적인 사람을, 참 우연히도 잘 만난다.
어릴 적부터 동화나 영화를 많이 봐서였을까?
부모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운 좋은 사람이어서였을까?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영화에서처럼 운명적인 만남이나 운명의 상대가
당연히 내게도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운명의 상대가 있다고
믿어왔었다.
근사한 경치와
그럴듯한 우연함이 있는
그런 이상적인 만남을 기다려왔고
운명이라는 확신과
운명적인 만남을
찾아다녔다.
그래서였는지
처음 사랑을 겪어보기 전에는
신데렐라를 만나기도 전에, 구두부터 만들어 놓고는
구두에 맞는 누군가를 찾아다녔던 것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몇 번의 사랑을 겪고
또 그만큼의 헤어짐을 겪고 나서야
내가 믿었던 '운명'이라는 것의 막연함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하던 순간에는
‘아,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다가도
헤어짐을 지나고 나서.
또, 그리움이 다 하고 나서는
‘인연이 아니었다 보다.’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고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
'이 사람이다.' 하고 생각하게 되는 일은
‘운명은 그저 감정에 따라 믿기 나름.’
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운명이었기 때문에 만나서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냥 우연히 만나서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운명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 거라고.
그렇다고 해서
'운명'이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 양,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운명이라는 것이
기대가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라고 해도,
감정에 따라서 달리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해도
그렇게 가끔 회의적으로 생각하게 될 지라도,
하물며 그게 진실이라 할 지라도
모든 일이 우연이었어도,
필연이라 믿고 싶어질 테니까.
특별할 것 없는, 흔한 사랑이라도,
조금 더 특별하다고 믿고 싶어질 테니까.
그렇게 믿게 될 테니까.
그래서 여전히 나는,
온 힘을 다해 믿으려 한다.
언제든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이런 믿음까지 합해서
온 마음을 다 해 사랑하고 싶다.
운명의 상대가 있다
하지만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꿈꾸던 사람과 달라도
운명의 상대라는 확신이 없어도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하게 된 후에
그 사람을 운명의 상대라 믿는 것
그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일 테니까
Painted and Written by
Lee Jin-Hy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