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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리남 Feb 09. 2021

벌레가 된 것이 중요한게 아니었던 남자의 이야기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아래 글의 내용은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으로 보시면 이해하기 더 좋습니다. 보시게 되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리며, 누군가가 제 영상으로 인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https://youtu.be/eypTqFsoskQ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 공통적으로 혐오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벌레”입니다. 그리고 오늘 리뷰 할 책은 벌레로 변신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골몰하는 그레고르. 그는 왜 벌레로 변신한 것일까?

1. 줄거리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을 부양하고 있는 외판사원인 그레고르.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해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벌레로 변한 것에 놀란 것도 잠시, 평소 출근시간보다 늦었다는 것에 더 깜짝 놀라고 말죠. 그래서 몸을 움직여보려 하지만, 벌레가 뒤집어졌을 때 몸을 일으키기 어려운 것처럼, 바둥바둥 거리지만 쉽게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가 출근하지 않자 직장의 지배인이 찾아오고, 자신이 출근할 수 없는 상태임을 알리려던 그레고르는 결국 자신의 모습을 지배인과 가족들에게 보여주게 됩니다. 이에 지배인과 가족들을 놀라게 됩니다. 어머니는 혼절하다시피하고, 아버지는 그런 그레고르를 방에다가 폭력적으로 몰아넣게 되죠.     


결국 흉측한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로 인해 가족들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정황상 벌레를 그레고르라고 인식해서 내쫓지는 않습니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그레고르가 책임지고 있었고, 아버지는 사업 실패 이후 5년 간 일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기에 가정의 살림은 궁핍해지게 되죠.      


어느 날 아들을 보기를 원했던 어머니와 그레고르는 마주치게 됐는데 이로 인해 집안이 뒤집어집니다.  뒤늦게 들어온 아버지는 화를 내며 사과로 그레고르를 맞췄습니다. 이때 그레고르는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레고르의 집은 곤란해진 가계 상황 때문에 하숙인들을 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던 하숙인들과, 이를 보고 있던 그레고르는 여동생이 자신을 봐주길 원하는 마음에서 방에서 나왔다가 하숙인들에게 발견되죠. 이에 하숙인들은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 이르자 그나마 그레고르를 돌봐주던 여동생은 그레고르를 “이것”, “괴물”이라고 부르며 그레고르에게서 가족 모두가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나마 마음으로 의지했던 여동생의 이 말을 모두들은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낸 상처와 더불어 점점 쇠약해져 죽게 됩니다. 이에 가족들은 신께 감사하며 교외에 나들이를 갑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풍염한 소녀로 자라난 여동생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그려지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2. 벌레가 된 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입니다. 사실 이 소설은 이야기 자체는 매우 단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 소설의 설정들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설정은 주인공이 벌레로 변신했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자신의 흉측한 해충으로 변한 사실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찌된 일일까 한번 반문 했을 뿐, 외판사원으로서 일에 대한 중압감, 가정을 부양해야한다는 책임감에 더 신경을 쓸 뿐입니다. 벌레에서 어떻게 다시 인간이 될까라는 생각, 말, 행동은 전혀 없습니다.     


그는 원래 4시에 일어나서 5시에 기차를 타고 일하는 곳으로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6시 반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되죠. 그리고 자신의 몸에 대한 고민은 없고 얼른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어되지 않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면서도 그레고르의 머리속은 계속 시간의 압박과 직장의 일에 대한 생각,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감과 가족을 좋은 집에 살게 하는 자부심 등의 내용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즉, 몸이 벌레가 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일에 늦지는 않을지, 내가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가족을 계속 부양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카프카의 [변신]은 1915년 출판되었습니다. 실제 집필은 1912년이라고 하는데, 이 상황에서 유럽의 열강들은 식민지배를 본격적으로 해나가고 있었으며 물질주의와 자본주의 상황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습니다. 산업혁명과 분업화의 과정들이 깊이 진행된 시점이었죠.

 

초판본. 잡지사에 출판된 1915년 이듬 해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 상황에서 한 인간은 그저 돈을 버는 기계, 도구화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인간존재의 의의는 퇴색되어버립니다.     


카프카는 그런 모습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인간이 벌레가 되었는데도 그에 대한 놀라움은 잠시일 뿐, 그저 돈을 벌 수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하는 그레고르의 사고방식은 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존재의 상실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닌, 노동력이 있는지,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그것이 그레고르에게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레고르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는 일에 대한 생각에 몰두합니다. 심지어 연구할 필요도 없는 기차시간표를 연구한다고 그의 어머니는 말합니다. 그만큼 일과 돈벌이에 집착하는 한 인간을 카프카는 신랄하게 꼬집고 풍자하는 것입니다.      


카프카가 그레고르를 벌레로 바꾸어버렸던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이런 자본주의 상황에 종속되어 버린 한 사람의 모습은 참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노동력을 상실한 한 인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레 같은 존재라는 것이죠.   


        

3. 그레고르를 대하는 가족들   

  

가족들에게는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에 대한 걱정이나 연민, 어떻게 그를 되돌릴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일절 없습니다. 그저 전체 재산상황에 대한 논의와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뿐이죠. 

     

그레고르에 대한 인간적이 고려나 배려는 없습니다. 자신의 자식이, 그리고 오빠가 해충으로 변했는데 관심이 있는 것은 오직 돈을 벌어다주는 그레고르가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 뿐입니다.     


애초에 가족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왔던 그레고르를 부모님은 살갑게 대하지도,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적으로 그를 대했던 것은 여동생뿐입니다. 하지만 그 여동생도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에게 점차 차갑게 대하기 시작합니다. 최종적으로 하숙인들과의 사건을 겪으면서 여동생은 그레고르를 괴물 취급해버립니다.    

 

결국 그레고르는 가족의 손에 목숨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아버지의 폭력성으로, 정신적으로는 여동생의 외면으로 그는 죽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벌레인 것은 그들의 가족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하게끔 하는 삽화


심지어 그의 죽음을 발견하고, 시체를 처리한 것도 가정부였습니다. 가정부는 그레고르의 가족에게 돈으로 고용된 사람임을 생각한다면 카프카의 의도를 또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설정들이 곧 자본주의 사회와 그 사회에 종속된 사람들의 모습을 신랄하게 꼬집고 비판하고 있다고 우리는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4. 카프카의 [변신]은 우리의 이야기이다.     


카프카의 [변신]이 고전문학으로서 계속 꾸준히 주목받고 읽히는 이유는, 우리 역시 그레고르와 그의 가족의 상황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곧 무능력이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설처럼 사람이 벌레로 변하는 엄청난 상황은 일어나진 않겠지만, 자본주의 상황에서 우리는 그레고르처럼, 벌레처럼 내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회와 상황 이전에 한명의 인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그 존엄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원래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태어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여기고 살아가지 않도록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혐오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인간됨을 항상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능력의 유무로 판단하기 이전 그 사람의 사람됨, 인간됨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타인을 혐오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에서는 특정한 집단의 사람에 대한 혐오표현을 쓸 때 “OO충”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이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던가, 부도덕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우리는 인간을 인간이라 인정하지 않고 벌레라 표현하는 이런 혐오표현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그 존재자체로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마땅합니다.      


결국 [변신]은 자본주의 시대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돈의 가치가 정말 우리 인간에게 최고인지, 그리고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최고로 중요한 것인지 말이죠. 우리 사람들에겐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 그것일까요?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내 안의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 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타인을 만날 때 자본주의적 가치만을 갖고 대하지 않았는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변신은 제가 대학교시절 만났던 소설입니다. 대학교 전공수업 중, 삘을 받으신 교수님이 다음 시간까지 갑자기 읽어오라고 한 소설이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소설이냐 생각했는데 교수님의 열띤 강의를 들으며 생각이 트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후로 시간이 흘러 다시 접한 [변신]은 역시 저를 돌아보게 하고, 제가 있는 상황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이 [변신]을 읽어보시면 어떨가요? 이번 리뷰는 여기까지입니다. 영상을 유익하게 보셨다면 좋아요와 구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여러분께서 주신 힘으로 더 좋은 영상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책을 리뷰하는 남자 책리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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