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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재영 Aug 06. 2023

26.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 적 있는가?

기도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들.

이 질문에 떠오르는 몇 가지 기억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다 합쳐서 무언가를 설명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그 이야기들을 나열해 보기로...


1. 나는 태어나서부터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보통 모태신앙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나는 그래서 기도가 익숙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빈말이라도 "기도 할게"라고 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너는 신을 믿지?" 하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나는 신을 안 믿어서 그러는데 나 대신 기도를 해주겠냐는 부탁을 받았었는데 그 기억이 참 오래간다. 별로 친한 친구가 아니어서 기억에 남는 건지 아니면 기도할 절대자가 없다는 느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줘서 기억에 남는 건지는 모르겠다.


2. 기가 막힌 일들이 많이, 아주 많이 일어나는 시기가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새벽기도에 갔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 깨어있는 사람들은 간절하기도, 억울하기도 한 것 같았다. 어느 날 어떤 여자애가 땀에 흠뻑 젖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갑자기 두 손을 모으고 울면서 기도를 했는데 그날 어쩐지 무슨 사연인지도 모르는데 그 여자애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마음이 평안하길, 그 삶이 편안해지길 기도했었다.


3. 기가 막힌 일들이 도저히 풀리지가 않아 기도원도 가보기로 했다. 거의 기도라기보다는 화풀이에 가까웠나 싶기도 했다. 눈이 터질 것 같을 때까지 울었던 것 같다. 울음이 끝나고 눈을 떴는데 내 앞에 곱게 접힌 화장지가 있었다. 그때 갑자기 전에 새벽기도에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기도했던 여자애가 생각이 났다. 그날 나와서 봤던 달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만 같다.


4. 교회에서는 서로 기도해 달라면서 기도제목을 나눈다. 친한 사이면 듣기만 하고 기도 안 해 줄 거 아니냐며 공격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럼 이렇게 하자 특정 약속한 어떤 상황이 되면 기도하기로 하고 나는 핑크색 머리를 보면 기도하겠다고 했다. 핑크색 머리는 별로 흔하지 않지 않냐며 서로 웃고 헤어졌다. 그 주에 누군가가 찬양집회에 같이 가자며 날 우연히 데리고 갔는데 앉은자리 앞에 핑크색머리를 하신 분이 있었다. 세상에는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게 있는 것이 아닐까?  섭리라고 정의하기에는 더 복잡하고 미묘한 그런 것이.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요즘 사이비가 많아 덧붙이지만ㅋㅋ 짜고 치는 고스톱도 있으니 조심하시길... 타깃으로 잡고 작업한다고 합니다.)


5. 자신만이 아는 그런 신호가 있다. 누군가는 하얀 장미꽃이고 누군가는 뜻밖에 연락일 수도, 누군가는 지나고 나서야 맞춰지는 퍼즐 같은 사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결국에 스스로가 구원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신비한 것들이 우리를 두르고 있을지도, 당기고 있을지도, 얽혀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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