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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노 Jun 15. 2017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기다림

「엄마 마중」 -이태준 글. 김동성 그림.

  그림책을 펼쳐 들고 주책 맞게 눈물을 쏟았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의 그 간절한 기다림이 안쓰러워서, 그리고 자신을 기다릴 아가를 생각하며 어디선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엄마가 왠지 나인 것 같아서.

  서너 살이나 되었을까. 조그만 아가가 아장아장 걸어 전차 정류장으로 간다. 곧이어 전차가 땡땡 하며 들어오고 아가는 차장에게 묻는다.

"우리 엄마 안 와요?"

  전차가 오기까지 또 기다리는 아가. 기대감에 목을 쭈욱 빼고 들어오는 전차를 바라본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지만 거기에도 엄마는 없다.

  "우리 엄마 안 와요?"

  무슨 사연일까.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무슨 사정으로 저리 조그만 아기를 혼자 두고 간 걸까. 혹시 전쟁고아는 아닐까. 

  날은 어둑해지는데 꼼짝 않고 서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의 모습이 안쓰럽다.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코 끝이 새빨개진 아가. 얼른 가서 꼭 안아주고 싶은데 빨리 돌아오지 못하는 엄마는 얼마나 애가 닳을까.

  첫째가 딱 그림책에 나오는 아기만 할 때였나 보다. 아이가 막 20개월이 되던 때에 복직을 했다. 아이는 아침 출근길에 어린이집에 맡겨졌고 나의 퇴근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친정 시댁 모두 다른 먼 지역이라 급하게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아이가 갑자기 아파 정말 어찌할 수 없는 날에는 새벽에 급히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엄마는 ktx 첫 차를 타고 부랴부랴 달려오시기도 했다. 조퇴, 지참, 연가를 돌아가며 썼고, 정신없이 일하다가도 퇴근 시간 알람이 울리면 모든 일을 내일로 미뤄두고 책상이 엉망이 된 상태로 그냥 뛰쳐나왔다. 그 당시 내가 자주 꾸던 꿈은 집에 가는 지하철을 놓치거나 어디선가 길을 잃어 아이를 찾으러 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꿈이었다.

  아직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는 어린아이에게도 몸에 각인되는 생체 시계가 있다. 아이는 잘 놀고 있다가도 내가 올 시간 즈음이 되면 귀신같이 알고 어린이집 초인종 소리에 반응을 한다고 했다. 목이 빠지게 날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조급해 퇴근길은 늘 종종걸음으로 달렸다.

  그래서 아기는 결국 엄마를 만났을까? 마지막 장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엄마와 왕사탕을 든 아가가 손을 잡고 골목 어귀를 걷고 있는 뒷모습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그래도 엄마를 만났구나.

 
  아이는 이 책을 읽어줄 때마다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들여다보곤 했었다. 사실 마지막 장에 엄마 손을 잡고 가는 아기를 발견한 것도 아이가 먼저였다. 아이는 아기가 엄마를 만난 것이 맞는지,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는지 늘 몇 차례나 확인하며 되묻곤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태준의 원작은 아가가 그저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서있는 데서 끝이 난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그림작가 김동성이 덧붙인 것이다. 아마도 아가를 보며 어서 엄마를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덧붙인 것이리라. 첫 장의 모노톤의 마을이 아닌 환한 연둣빛으로 표현한 것 역시 그러한 바람과 희망을 불어넣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덧 아이는 친구들과 노는 게 즐거워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다섯 살이 되었다. 때때로 어린이 집에 일찍 데리러 가는 날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기도 한다. 서운하면서도 자라는 아이가 대견스럽다. 아이는 더 이상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를 심각한 표정으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늘 안절부절 종종걸음 했던 때가 불과 몇 해 전인데 그 사이 아이와 나의 마음도 부쩍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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