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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노 Feb 20. 2017

감정 :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에 대하여

「이 방으로 곧 사자가 들어올거야 」-아드리앵 파를랑쥬

  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 내 방이 생겼다. 그리고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좀 더 자라 방을 같이 쓰기 전까지 한동안 나는 내 방에서 혼자 잠드는 연습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이지만 잠이 들기 전까지 어둠 속에서 혼자 누워있는 공간에서 느꼈던 공포는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다. 엄마가 이부자리를 깔고, 잘 자라는 인사를 하며 불을 끄고 나가면, 어둠 속에서 내 모든 촉각이 곤두섰다.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내 방 구석구석의 모든 것이 낯설게 다가왔다. 잘 보이지 않는 저 구석에 무서운 무엇인가가 나를 노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옹기종기 놓여있던 인형들의 흐릿한 형체도 왠지 무서웠다. 눈을 질끈 감고 이불을 꼭 껴안은 채로 어서 잠이 들길 기다렸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는 후다닥 방문을 열고 안방으로 뛰쳐 들어가곤 했다. 


실체 없는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  


 그림책  「이 방으로 곧 사자가 들어올거야」는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판화로 나타낸 간결한 선과 그림, 반복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단순한 이야기는 우리가 가진 실체없는 막연한 두려움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보여준다.

  호기심 많은 소년이 사자의 방에 들어간다. 때마침 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던 생쥐가 놀라서 달아난다. 그리고 조금 뒤, 소년은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사자가 돌아온 줄 알고 침대 아래로 숨는다. 하지만 방에 들어온 것은 또 다른 소년. 침대 아래 숨은 첫 번째 소년은 머리를 파묻고 두려움에 떤다. 또다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고, 두 번째 소년 역시 천장의 등에 숨어 사자에게 들킬까 두려워한다. 그렇게 사자의 방을 배경으로 하여 같은 구조로 이야기가 계속 된다. 뒤이어 소녀가 들어와 양탄자 밑에 숨고, 그 다음에 들어온 개는 거울 뒤에, 그리고 여덟 마리의 새가 커튼 뒤에 숨는다.
자세히 보면 무섭다고 숨어들어간 꼬마들이 그 와중에도 장난을 치고 있다. 아, 꼬마들이란!!
   모두가 어딘가에 숨어 떨고 있을 때, 드디어 사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사자 역시 왠지 자기 방이 낯설게 느껴진다. 거울의 위치도 달라진 것 같고, 천장의 등도 흔들리는데다 발 아래 양탄자에서도 알 수 없는 떨림이 전해진다. 덜컥 겁이 난 사자도 이불을 뒤집어 쓰고 벌벌 떤다.
  마지막으로 처음에 나갔던 생쥐가 다시 돌아온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아늑하다. 생쥐는 이불 위에서 편히 잠이 든다.


두려움의 본질, 미지(未知)


  내가 어두운 방 안에서 떨던 꼬마였을 때처럼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딸 아이는 부쩍 귀신, 도깨비, 괴물과 같은 존재에 관심이 많다. 무섭다고 이불 속에 숨으면서도 자꾸 이야기는 듣고 싶어한다. 괴물을 만난 주인공의 안전한 결말을 꼭 확인해야겠다는 듯이.

  두려움의 본질은 미지이다. 우리는 낯설고 확인되지 않는 것, 그래서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는다. 아마도 그것은 거친 자연생태계에서 맨몸의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준 생존본능의 산물일 것이다. 그래서 두려움은 우리의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는 가장 오래되고 강렬한 감정 중 하나이다.

 

'리디큘러스', 두려움에 맞서는 법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보가트라는 괴물이 등장한다. 이 보가트는 자신과  마주친 사람의 잠재 의식 속에 가장 두려워하는 것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 보가트를 무찌를 수 있는 마법주문은 '리디큘러스', 바로 우스꽝스럽게 하기이다. 눈 앞에 마주친 두려움의 가장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상상하여 주문을 외우면, 나를 노려보던 무서운 교수님은 할머니의 우스운 드레스 차림을 한 채로 당황하고, 다리가 여럿 달린 거대한 털개미는 몽땅 다리가 잘린 채로 버둥거리고, 피범벅의 끔찍한 모습으로 달려들던 미이라는 붕대가 풀어진 채로 사라진다.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즉, 그것을 똑바로 응시하고 그 실체를 간파하는 것이다.

  

  겁 많았던 나는 이제 어두컴컴한 방 안이 무섭지 않은, 아니 무서워서는 안되는 어른이 되었다. 딸 아이가 이불 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듣는  온갖 귀신과 괴물, 도깨비와 같은 이야기는 실체 없는 허구란 것을 안다. 그리고 아이의 엉덩이를 탁 치며 그건 다 가짜야라고 웃지만, 세상엔 괴물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사자의 방에 들어간 그들이  양탄자 밑을, 커튼 뒤를, 침대 아래를 한 번 들춰보기만 했다면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저 한 번 들춰보는 작은 시도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두려움을 대면하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슬그머니 비틀수 있는 웃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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