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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molove Nov 09. 2021

오빠의 눈물 젖은 핫도그

울 오빠는 현대판 장발장

2021.11월 9일. 화요일

우린 아직 가을을 맞이한 적도 없는데 가을은 벌써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

급격히 떨어진 온도와 차운 빗속에 나뒹구는 낙엽의 모습이 처량하기 짝이 없지만 모든 건 이치에 맞게 변해가는 것이기에 이젠 서글프지도 않다. 단지 해가 갈수록 어릴 적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면서 나의 가슴 한편 어딘가, 눈시울 적신 촉촉함이 조용히 저며온다.




시골에서 이사를 나와 산동네에서 짤막하게 1년 정도를 지내다가 마당이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마당엔 온통 고기잡이 그물과 바늘이 쌓여있었고 마당을 중심으로 10여 가구 정도가 모여 살았다. 한낮에는 마당에 어른들이 모여 앉아 그물을 손질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새벽이면 배를 타고 금강으로 나갔다. 잡은 생선들을 경매로 넘기거나 소매로 팔고 남으면 동네로 가져와 나누어 먹기도 했다.

집집마다의 사는 그림은 참으로 다양했다. 엄마 혼자 남매를 키우는 집. 아빠 혼자 홀어머니와 딸을 키우는 집. 잘은 모르겠지만 집에 머무는 정체불명의 요란하게 생긴 여성이 수시로 바뀌는 집 등등.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아침저녁으로 혼나는 소리, 싸우는 소리, 죽여라 살려라 하는 고성이 숱하게 들려와 주위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고통을 주었다.


우리는 그러니까....

1979년 내 나이 6살. 초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 오빠에게 집 열쇠의 권한을 주었기 때문에 4살 동생과 나는 문이 잠궈진 집안에서 오빠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때였다. 다른 날과 마챦가지로 오빠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다.  비가 요란스럽지도 않지만 우산 없이는 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내렸다. 하지만 뭐 어떤가. 비 좀 맞는다고 큰일이 나는 상황도 아니었는걸. 오빠는 안방에서 한참을 낑낑대다가 6살 여동생과 4살 남동생의 손을 잡고 마당 밖 골목에서 늘 튀김 냄새로 우릴 유혹하는 핫도그 포장마차로 향했다.


"핫도그 세 개만 주세요"

동생들과 먹을 생각에 눈이 초롱초롱한 울 오빠의 모습에서 난 아빠보다 더 큰 모습을 보았다.

"비 는데 우산도 없이 나왔냐, 감기 걸리겠다"

아저씨는 차례로 핫도그를 주셨고 오빠는 꼭 쥐고 있던 50원짜리 동전 3개를 펴 보이며 아저씨를 향해

"아저씨 맞죠?" 하면서 당당하게 내밀었다.

"오빠 돈 어디서 났어?" 하고 신기하게 물으니

"오빠 돈 많으니까 담에 또 사줄게"하고 동생들을 바라보며 말하는 울 오빠.

 

사건은 늘 터진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못 먹고 자란 탓에 영양실조에 걸린 4살 배기 막내가 휘어진 다리로 걷다가 빗길에 넘어진 것이다.

철퍼덕 앞으로 넘어지면서 핫도그가 진흙탕에 떨어졌다.

"으앙"

오빠와 나는 순간 당황해서 몇 초 동안 멍했다. 그러자 얼른 정신을 차린 오빠는 동생을 일으켜 세우고 여기저기를 살폈다. 큰 자식의 책임과 의무는 이럴 때 더욱 빛이 나나보다.

"으앙. 내 핫도그.."

동생이 울어대자 오빠는

"괜찮아 형꺼 먹어." 하며 막내의 손에 핫도그를 쥐어주며 어깨를 감싸주었다.




난 비겁했다.

난 그날 왜 내 핫도그를 손에 본드를 붙인 마냥 꼭 붙들어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핫도그를 어떻게 먹었는지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핫도그를 먹지 못하는 울오빠가 불쌍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오빠는.... 내 눈에 많이 대단해 보였다.


그날 저녁에 집이 발칵 뒤집어졌다. 아빠가 날마다 밥을 주던 돼지가 입을 벌린 채 아빠와 나란히 앉아있었고 범인이 누구냐며 우리 삼 남매는 추궁을 당했다. 오빠는 사실대로 밝혔고 아빠는 더 이상 아무 말씀 못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공평하게 오빠 세대. 나 두대. 막내 한 대씩 종아리를 맞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오빠의 돼지 털이는 어쩌다 한 번씩 배고픈 동생들을 위해 계속되었다.




오늘처럼 비가 오면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모습이다. 지금도 동생들이라면 자기 일처럼 나서 주는 오빠의 모습을 보면서 미안하고 고맙고 어찌 다 갚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뿐이다. 울 오빠가 오래도록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 또한 나를 위한 것만 같다.  오빠가 없는 친정은 생각해보기도 싫으니까.. 발길을 멈추게 될까 봐..

지금도 난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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