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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Dec 30. 2020

재생 중

넷플릭스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탁탁’, ‘탁탁’, ‘탁탁’

옆으로 누워 넷플릭스를 보는 내가 지루한 장면을 ‘빨리감기’하는 소리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주말 사이 드라마 시리즈 한편쯤 다 볼 수 있는 요즘,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과한 표정 연기로 질질 끄는 내용은 갈수록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다음 장면 바로 또 그 다음 장면. 적당히 줄거리만 알아도 된다 싶은 부분에서는 스크린의 오른편을 빠르게 두 번 터치합니다. 바쁘지 않아도 마음이 급한 세상, 아시잖아요. 이런 나는 TV로 중계방송을 볼 때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빨리감기가 없는 것이 애석해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점에서 생을 제 손으로 끝낸다는 건 곧잘 영화로 비유되는 저마다의 삶을 그만 보기 위해 상영관을 나와버리는 것과 비슷할까요? 막장드라마를 보다 TV 전원을 꺼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친구는 새로운 미드를 추천할 때면 언제나 “2편까지는 참고 봐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간부터 재밌다고요.

우리의 시시한 인생도 좀 더 참고 지켜보면 짜릿한 클라이맥스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사나운 팔자를 가진 사람의 결말에 반전이 일어날 지도 요. 그런데 빨리감기 기능도 없는 인생에서 자기 손으로 정지 버튼을 눌러버린다는 건 뒤가 어찌 될진 몰라도 그걸 보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는 것이겠죠.

신(GOD)을 믿는 나 같은 사람은 신이 주신 단 한 번의 생에 스스로 정지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주 나쁜 것이라 배워왔습니다. 애초에 내 생의 감독이 따로 있고 심지어 그것이 쪽대본처럼 생생하게 만들어져가는 게 아니라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부터 쓰인 각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내 멋대로 중도하차를 한다는 건 죄목으로 치자면 괘씸죄 같은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마 더 긴 장편드라마가 될 천국에서의 시즌2에는 캐스팅되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요.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내 인생이 결말이 미리 쓰여진 비디오라는 게 위로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되돌리거나 빨리 감아도 스토리는 정해져있고 한낱 이 씬의 주인공에 불과한 나는 시놉시스에 아무 의견도 덧붙이지 못할 텐데도 그쪽이 어딘가 더 ‘reasonable’하게 느껴진달까요.

지금 같아선 나 역시 내게 주어진 한 편의 생을 완주한 뒤 편안한 침대에 누워 가족들에게 엔딩크레딧을 읊을 수 있길 기대하지만, 살다가 행여라도 그럴 자신이 없어지는 날에는 부디 신이 나에게 남은 타임라인을 주마등처럼 보여주며 그래도 더 살았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길 바랍니다.

유명한 연예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에 지인들과 자살에 관한 저마다의 생각을 나눴습니다. 자살은 주변 사람들에게 못할 짓이라는 사람과 자살할 용기가 없다는 사람, 제 사전에는 자살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다는 사람. 그리고 그 옆에 ‘죽는 것보다야 어떻게든 사는 게 낫다’는 사람에게 내가 물었습니다.

“왜?”
“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길 텐데 죽어버리면 앞으로 좋을지 나쁠지 알 수가 없잖아”
“그걸 포기하는 거지. 더 좋아지지 않을 거라는 게 빤할 수도 있고. 좋을지 나쁠지 궁금하지도 않을 만큼 지겹거나.”
“그래도 살아봐야지.”
“왜?”
“죽는 것보다야 어떻게든 사는 게 나으니까”

나는 원점으로 돌아온 대답 앞에 굳이 ‘왜?’ 하고 되묻는 대신 몸을 숙여, 손을 쓰지 않은 채 빨대만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아이스커피를 마셨습니다. 삶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마땅한 답을 못 찾은 사람들이 아직 각자의 생에 남아있는 걸까요?

넷플릭스에서 “2편까지는 참고 봐야 한다”는 미드의 첫 번째 에피소드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를 재생했습니다. 남녀가 한 욕조 안에서 행복해하며 함께 목욕하는 장면 뒤에 여자 주인공 혼자 허름한 샤워실에서 몸을 씻는 장면, 곧이어 “그곳에서는 행복했다”는 내레이션이 나왔습니다.

보아하니 수감자들의 이야기군요. 왠지 수감자 중에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억울하게 잡혀왔거나 누군가를 대신해 누명을 쓰고 들어온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감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중간부터는 어떻게, 뭐 얼마나 재밌어지려나요. 그래도 한 시즌에 13개 에피소드씩 벌써 시즌7이라니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며, 잠 못 드는 밤 침대 위에 옆으로 눕습니다. ‘reasonable한 삶의 의미를 모른 채 사는 인생에는 몇 개의 에피소드가 남아있을까’ 그런 어려운 질문은 일단 머리맡에 내려놓고요.


https://www.netflix.com/title/70242311?s=i&trkid=1374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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