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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kimkim Feb 20. 2023

개발자가 되었다

2018년에 나는 정말로 개발자가 되었다

2018년, 20대가 거의 끝나갈무렵 나는 개발자가 되었다.

충동적으로 지원 버튼을 눌렀을 때도, 첫 전화면접 문자를 받으면서도, 면접을 보러가면서도 실감나지 않던 현실이, 합격 이메일과 함께 현실로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나는 공무원이었다.

어릴 때 컴퓨터를 조금 배운 적이 있으며, 약간의 사정으로 컴퓨터공학과 입학을 놓치고 다른 대학에 진학해 졸업을 하고 공무원을 하면서 지방에서 살고 있었다.


이 시기의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입상권 성적은 아니었지만, 나는 알고리즘 대회를 꾸준히 참여하고 있었고, 때마침 2018년 IT 기업들의 개발자 채용 트렌드는 코딩테스트였다. 나는 도메인 지식은 거의 알지 못했지만, 코딩테스트만은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면접에서 솔직히 개발을 아는 건 잘없고, 알고리즘 문제는 잘 풀수 있다고 말했는데 대부분의 면접관들은 아예 그런걸 신경쓰지 않는듯 했다. 오히려 나를 더욱 신기하게 봤던 것 같다. 유일하게 무서웠던 건 영어 하나였지만, 컴퓨터 용어야 애초에 영어다보니 어떻게 설명은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듣기는 그렇게 안중요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만 주로 말하는 면접이었다보니 통과했던 것 같다.


연봉협상을 했다.

그 당시의 나는 월 초과 근무를 100시간 정도하는 현업 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공무원임에도 돈을 참 잘 벌었다. Google을 제외한 다른 회사들은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연봉을 통보해줬고 Google은 희망 연봉을 물어봤다. 나는 나름 큰 용기를 내서 많이 불렀는데 실제 제안 받은 금액은 내가 부른 액수의 2배에 가까웠던 것 같다. 카페에 있었는데 너무 행복해서 입이 찢어지는 줄 알았지만, 침착한 척을 했다.


그래도 직장을 옮기는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내 주변에는 개발자는 하나도 없고, 공무원들만 참 많았다. 그래서 밖으로 나갔을 때 무슨 일어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나는 개발자로서의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고, 수습기간에 잘리면 아무리 좋은 회사를 가더라도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괜히 주제도 모르고 기어나갔다가, 인생이 망하면 어쩌나 정말 고민을 많이 했었다. 물어볼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나가기로 했다.

경험적으로 나는 했던 일보다 하지 못한 일을 더 두고두고 후회하는 경향이 있다. 퇴직 후의 미래는 알지 못하지만 공무원 조직에 머물렀을 때 평생 후회할게 명백해보였다. 그래서 나가기로 했다. 평생 후회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기회가 또 다시 올 수는 없으니까.


의원 면직을 신청했다.

내 퇴직 사유는 모든 분들이 축하해줬다. 로스쿨로 빠진 것도 아니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가기 때문인지 아쉬운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경무계에 가서 컴퓨터로 작성을 하고 흉장을 반납하고 모든 것이 그날 끝났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

당시 아내와 나는 모두 지방에 있었는데, 갑자기 나만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으니 미리 혼인신고를 하고 가기로 했다. 물론 결혼식은 시간을 두고 준비를 했지만, 결혼은 첫 출근보다 빠르게 했다. 덜컥 결혼을 하고 나니 이제 인생이 망하면 나만 조지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방학 때도 몇 번 자취했던 서울이지만 다시 올라올 줄은 몰랐다. 큰 캐리어 하나를 들고 지방에서 다시 서울로 상경했다. GFC는 정말 큰 건물이었고, 정문도 참 컸는데 첫 출근 때 인생이 정말 성공한 것 같아서 진심으로 행복했다. 물론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나이는 경력직이랑 비슷한데, 개발은 아는게 없고, 아는 사람도 없으니 참 부담이 컸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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