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원하는 답을 해줄 수 없다.
아직 보일러를 켜지 않아 차가운 물로 그릇을 헹군다. 헹군 그릇은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건조해진 다기는 찬장에 올려둔다. 이른 아침, 우편배달원이 두고 간 우편물 두 개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물기 젖은 손을 앞치마에 슥슥 닦으며 책상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각각의 다른 지역에서 발송된 서신을 설레는 마음으로 뜯는다.
서신을 뜯는 찰나, 난데없이 나의 기억 속에 찾아 들어온 너는 내게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진다.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떡해?」
그 기억은 너와 내가 다음 날 맞이할 손님들을 위해 무척이나 애쓰던 늦은 오후에 나눈 대화였다.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봐주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것도 아닌데..」 하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은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그건 아주 작은 정으로 바위를 부수는 일. 내 앞에 놓인 바위는 거대하며 내가 가진 정은 작고 보잘것없다. 그날, 네가 던진 질문이 내게는 마치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어떡해?"라고 들렸다. 아마 진심 어린 걱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네가 원하는 답을 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은 아주 지루한, 매일매일 같은 정으로 같은 바위를 깨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나는 네가 충분히 무가치하다 생각할 우편물들을 뜯는다.
그러나 이건 내가 아주 오랫동안 염원하던 서신.
- 2018년 10월 30일과 31일 사이, 서울콜렉터에서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