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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Mar 26. 2022

‘좋아함’의 무게감

영화 [줄리 앤 줄리아]


이 영화를 통해 꿈으로 반짝거리는 줄리, 줄리아에게 감명받았다란 사람들의 평은 

나를 다시한번 의기소침 하게 만들었다.

난 영화가 따뜻하지도 힐링 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영화를 보는 동안 불편했다는 감정이 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문제라기 보단 ‘좋아하는 일’에 대한 무게감을 고민하고 있기에 온전히 즐길 수 없었음을 안다.

잘나가는 친구들과는 반대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줄리는 평소 즐겨하는 요리를 

(그 중에도 존경하는 줄리아 요리책 속 요리를) 블로그에 올리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물론 처음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점차 그녀의 블로그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고

그녀의 도전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블로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생기며 그녀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하품이나 해’

자우림의 노래 <일탈>의 가사처럼 평범한 하루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그 하루는 신기하리만큼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좋아함’이란 그런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때론 사람으로, 종종 꿈으로.)

하지만 모든 것엔 (특히 빛나는 것엔) 그만큼의 댓가가 따른다.

어느새 처음의 마음은 잊은 채 보여주기 식의 도전을 강행하는 그녀에게 실망한 주변 사람들, 

그들로 인해 상처받은 줄리처럼.

줄리는 작가라는 ‘직업’과 글 쓰는 행복이라는 ‘꿈’이 혼돈되지 않도록 

그녀를 응원해주는 남편 ‘에릭’이 있어 다행히 꿈을 바라보며 한단계 더 성장 하며 영화는 마무리 된다.


지금의 난 어쩌면 줄리처럼 ‘꿈’을 가장한 비슷한 ‘직업’으로 인해

가끔의 어설픈 쾌락과 종종 오는 큰 슬럼프가 뒤엉킨 삶을 살아내고 있다.

한때 ‘꿈’이란 주제로 많은 청춘들의 마음을 울린 철학자 강신주님은

“꿈은 저주다.”라는 말과 함께 '진짜 꿈'과 '개꿈'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했다.

이루기 전에 포기 할 수 없는 저주받은 진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현실을 은폐하기 위한 노력하지 않는 개꿈인지 사실 헷갈려 잘 모르겠다.

더 불행은 나에겐 ‘에릭’ 같은 남편도 없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오늘은 ‘꿈은 개뿔. 꿈으로 엉망인 인생을 사느니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며 살거야.’를 외쳐보지만,

“보는 사람도 없는데 알 게 뭐에요?” 

떨어진 반죽을 태연히 손으로 집어 후라이팬에 집어넣고 다시 요리하는 줄리아처럼

‘좋아하는 것’ 앞에 모르는 척 다시 한 번 속아주며 내일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겠다던 청춘들은 어떤 길을 걸으며 꿈에 닿아가고 있을까


적어도 이 영화를 보고 ‘도전’이란 단어에 여전히 설레는,  
‘좋아하는 것’에 ‘행복한 삶’을 바로 연결 지을 줄 아는, 
“당신은 내 버터이자 인생의 숨이야.”라는 고백에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는.
그런 삶을 살아내고 있길 바란다. 


다만, 줄리아로부터 블로그를 거절 당해 다시 한 번 좌절을 느끼는 줄리의 시련처럼

‘좋아하는 것’은 그렇게 마지막까지도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을거다.

그럼에도 ‘나’를 살려내는 건 ‘나’라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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