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리차르에서 라호르로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이야기
파키스탄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인도의 와가보더(Wagah Border)를 통해 파키스탄으로 입국한다. 한국에서 파키스탄으로 바로 가는 직항편이 아직 없기도 하고, 경유편을 이용하더라도 인도행에 비해 파키스탄행 항공편이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와가보더로 가는 인도의 관문 도시인 암리차르(Amritsar)는 델리에서 기차로 10시간 이내면 이동이 가능하고(10시간씩이나 걸리냐고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광활한 인도 땅에서 기차로 10시간 이면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슬리퍼 클래스(SL) 기준으로 가격이 300루피 미만으로 저렴하기까지 하다. 라호르(Lahore)는 와가보더를 사이에 두고 인도의 암리차르와 마주하고 있는 파키스탄의 주요한 도시이다.
# 와가보더에서 내 여권을 확인하고 있는 인도 군인. 와가보더는 전 세계 모든 육로 국경을 통틀어 가장 독특한 육로 국경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내가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서 경험한 육로 국경들은 국경을 넘어 상대방 나라로 건너가려는 수많은 현지인들과 국경을 사이에 두고 양국에 복잡한 국경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북새통을 이루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적대국인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와가보더는 현지인의 통행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로지 소수의 외국 여행자들만 이용하는 세상에서 가장 한가로운 육로 국경이었다.
인도의 암리차르는 펀자브(Punjab) 주의 주도(Capital)이다. 파키스탄의 라호르도 펀자브 주의 주도이다. 두 개의 퍼자브? 이게 무슨 소리인가? 라호르라는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펀자브 주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더스강의 5개 지류(젤룸·체나브·라비·베아스·수틀레)가 흐르는 펀자브는 예로부터 5개 강의 관개용수를 이용한 농업이 크게 발달했고, 이러한 농업을 바탕으로 고대로부터 무굴제국과 시크 왕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중심지 역활을 했다. 반면, 개방적인 지형으로 인해 이민족의 침입을 많이 받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기원전 4세기 경에 인더스 주변을 침략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을 들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 기간 동안 그리스 문명과 당시 인더스 강 주변의 불교 문명이 만나 만들어진 간다라(Gandhara) 미술은 동·서문명의 교류에 큰 역활을 했다. 이슬람 제국이 인도를 지배하기 시작한 12-13세기 부터 라호르는 델리, 아그라 등과 더불어 인도의 중요한 도시로 역활을 했다. 특히 무굴제국 시기에는 황족들의 거처로 전성기를 보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면서 카쉬미르가 분리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펀자브가 분리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인도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펀자브 음식 덕분에 펀자브를 잘 알고, 특히 암리차르의 아름다운 황금사원(Golden Temple) 덕분에 더욱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인도의 펀자브 영토가 약 5,500km2인 반면, 파키스탄의 펀자브는 약 20만 5,000km2에 달할 정도로 펀자브는 파키스탄에서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펀자브가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뉘어지기 전까지 펀자브의 주도였던 도시가 바로 라호르였다. 라호르는 그만큼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도시이고, 역사 유물도 많이 남아 있어 파키스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도시인 것이다.
# 라호르의 대표적인 유적지 중 하나인 바드샤히 모스크(Badshahi Mosque). 무굴제국 시절에 지어진 모스크로, 이슬라마바드의 파이샬 모스크가 지어지기 전에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큰 모스크였다고 한다.
1. 암리차르에서 와가보더로 가는 방법
암리차르에서 와가보더까지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릭샤 혹은 택시를 타고 와가보더로 바로 가는 방법이고, 둘째는 황금사원 근처에서 와가보더까지 운행하는 합승밴을 이용하는 것이며, 셋째는 암리차르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와가보더 근처의 아타리(Attari)라는 마을까지 이동한 뒤에 거기서 릭샤를 타고 와가보더까지 이동하는 방법이다.
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을 이용했다. 암리차르에 있는 동안 국기하강식을 보러 와가보더에 다녀왔는데, 그 때는 합승밴을 이용했다. 비용은 편도로 100루피씩 총 200루피를 지불했다. 합승밴을 타는 정류장이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황금사원 근처에서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보통은 점심 이후에 황금사원 근처를 돌아다니면 합승밴 드라이버들이 먼저 접근을 해오기 때문에 찾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은 것 같다. 와가보더 앞에까지 데려다 주고, 기다렸다가 국기하강식이 끝나면 황금사원까지 다시 데려다 준다. 그런데 국기하강식만 보는 게 아니라 국경을 넘을 경우에도 이 교통편을 이용할 수가 있는 지는 확실치 않다. 국기하강식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보통 오후 4:30까지 가면 되는데, 대부분의 합승밴은 이 시간에 맞춰서 출발을 한다. 하지만 국경은 계절에 따라 다른데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문을 닫는다. 따라서 합승밴을 이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와가보더 국경을 넘을 때 나는 세 번째 방법을 이용했다. 암리차르 버스 정류장에서 아타리까지 버스를 이용하면 약 1시간에서 1시간 30분 가량 소요되며, 비용은 35루피이다. 그리고 아타리에서 오토릭샤 혹은 인력거를 이용해 와가보더로 가면 되는데, 20-40 루피 정도로 협상해서 이용하면 되며, 1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주의할 점은 인도의 이미그레이션은 국기하강식이 열리는 와가보더 이전에 있으니 릭샤 운전사에게 반드시 국기하강식이 아니라 국경을 넘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와가보더까지 편하게 이동하고 싶은 사람은 첫 번째 방법을 이용하면 된다. 비용은 이용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 아타리 마을에서 버스를 내려 인력거를 타고 와가보더로 향한다. 거대한 인도 국기와 파키스탄 국기가 휘날리는 와가보더의 낯선 풍경
Important! 이미 이야기 했듯이 국경은 폐쇄 시간이 있기 때문에 최소 오후 2시 이전에는 와가보더에 도착 할 수 있도록 암리차르에서 출발을 해야 한다.
Tip! 와가보더의 국기하강식은 인도에서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에서도 이루어 진다. 오후에 국경을 넘어 대충 수속을 밟고 파키스탄에 도착해 조금 기다리면 오후 4시 반에 국기하강식이 시작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기하강식을 모두 구경하고 싶다면 오후에 국경을 넘길 추천한다. 오후에는 국기하강식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와가보더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수많은 무리를 뚫고 유유하게 국경을 넘는 것도 색다른 재미이다. 반대로 오전에는 와가보더가 한산하다. 한적한 와가보더를 구경하고, 조용히 국경을 넘고 싶다면 오전에 국경을 넘으면 된다.
# 암리차르의 숙소에서 만난 룩셈부르크에서 온 얀(Yann). 와가보더를 넘어 파키스탄 여행 예정이던 얀과 숙소에서 만나 함께 파키스탄으로 향했다. 국기하강식 구경을 위해 관람석에 앉아 있는 관광객들을 뒤로 하고 도로 한복판을 걸어 국경을 유유하게 걸어 넘을 때의 기분은 정말 짜릿했다.
2. 와가보더에서 라호르로 가는 방법
인터넷에 여행 정보가 풍부한 인도에 비해 파키스탄은 정보가 빈약하다. 일단 와가보더에서 라호르까지 이동하는 교통편 정보부터 찾기가 쉽지 않다. 서칭을 해 본 결과 많은 여행자들이 라호르까지 릭샤를 이용하는 것 같은데, 비용은 600루피에서 1,000루피 사이인 듯 하다. 여기서 말하는 루피는 파키스탄 루피다. 인도 화폐도 루피고, 파키스탄 화폐로 루피다. 화폐 가치는 파키스탄 루피가 인도 루피의 절반 정도 한다. 파키스탄 100루피는 인도 50루피 정도 한다는 뜻이다.
국기하강식 시간에 맞춰 라호르에서 와가보더까지 운행하는 2층 관관 버스가 운행중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이용해 본 외국 여행자를 본 적은 없다. 아래 관련 정보 링크를 올려 놓을테니 이용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용해 보시길. (https://pakistantourntravel.com/2017/12/11/double-decker-bus-service-from-the-wagha-border-lahore/)
그리고 라호르에서 와가보더까지 15분에 한 대 꼴로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고 한다. 버스 번호는 12번인데, 이것도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라호르 기차역 근처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라고 한다.
와가보더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Jallo라는 동네이다. 여기에 라호르까지 운행하는 기차도 있고, 버스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표라던지 관련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껴보고 싶은 여행자라면 Jallo까지 릭샤 혹은 히치 하이킹으로 이동 후 이용하면 될 듯 하다.
나는 특별하게 와가보더에서 라호르까지 이동했다. 국경을 넘은 뒤 파키스탄의 국기하강식을 구경했다. 내 옆에 라호르에서 온 남자 청년 4명이 앉아 있었는데, 국기하강식이 끝나고 주차장까지 함께 걸어 나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라호르까지 이동하는 교통편에 대해 물으니 자신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 괜찮으면 자기들 오토바이로 라호르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배낭 부피가 큰데 괜찮겠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했고, 그렇게 그들의 오토바이로 이동했다. 그런데 4명이 두 대의 오토바이에 나눠서 타고 왔고, 내가 타면 3명이 한 대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거기다 15kg에 달하는 내 배낭까지 함께 말이다...살짝 위험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호의가 좋아보여 그렇게 이동하기로 했다. 무거운 배낭을 등에 매고 오토바이 맨 뒷좌석에 매달려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이동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거기다 파키스탄의 거친 운전 문화를 생각하면 참 짜릿한 경험이었다!
4명의 청년들은 내가 파키스탄에서 처음 만난 파키스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오토바이로 내 숙소 앞까지 데려다 주었고, 중간에 식사까지 사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파키스탄 사람들의 호의는 파키스탄 여행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내 여행의 8할 이상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던 파키스탄인들!
중간에 재미난 에피소드도 하나 있었다. 라호르 시내에서 결국 경찰에게 붙잡혔다. 조그만 오토바이에 3명이 메달려, 그것도 무거운 배낭까지 메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라호르는 시골 동네도 아니고 엄청난 대도시 아니던가. 내가 그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작은 오토바이에 이렇게 메달려 여기까지 왔는지 사정을 설명하고, 내가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고 이야기를 하니 경찰이 웃으며 그냥 가라고 했다. 이런 작은 에피소드 조차 파키스탄 사람들이 외국에서 온 여행자에게 얼마나 호의를 베푸는지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물론, 이렇게 위험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일은 하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 라호르에 도착해 늦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약간의 경계심과 설레임이 뒤섞여 모든 것이 흥분됐던 라호르에서의 첫 날 밤-
Important! 그래서 결론은, 만약 국기하강식 구경을 하고 라호르로 이동하는 경우라면 수많은 파키스탄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테니 적극적으로 히치 하이킹을 시도해 보기를 추천한다! 파키스탄 사람들의 호의는 정말 놀랍다. 나는 파키스탄에서 정말 수도 없이 히치 하이킹을 했고, 언제나 흔쾌히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그들의 호의에 매번 감동을 했다. 물론 파키스탄에서도 외진 곳에서의 히치 하이킹은 위험할 수 있겠지만, 국기하강식 이후의 와가보더라면 쉽게 시도해 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히치 하이킹으로 맺어진 파키스탄 사람과의 인연이 당신의 파키스탄 여행을 또 어디로 인도하게 될 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니, 기대를 해보길!
Tip! 라호르는 파키스탄에서 카라치 다음가는 대도시다. 라호르의 도심은 인도의 왠만한 대도시보다 더 복잡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라호르로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숙소를 미리 예약하고, 정학한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특별히 국기하강식을 보고 난 뒤라면 해가 떨어진 뒤이기 때문에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 인터넷을 검색하다 찾은 정보인데, 델리와 암리차르에서 라호르까지 운해하는 국제 교통편이 있다고 한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니 관심이 있는 분은 정보를 조금 더 찾아보고 이용해 보시길
- Lahore-Delhi Bus Service (LDBS) : http://www.tourism.gov.pk/ldbs.htm
- Lahore-Amritsar Bus Service (LABS) : https://www.travel-culture.com/ptdc/lahore-amrastar-bus-service.shtml
- The Lahore-Delhi (Samjhota Express) train : https://en.wikipedia.org/wiki/Samjhauta_Express
이야기를 쓰다 보니 또 길어졌다. 아무래도 라호르에서의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넘겨야 할 듯 하다.
암리차르에서 라호르 간의 거리는 약 50Km에 불과하다. 하지만 와가보더를 이동하고 나서 왠지 모르게 심신이 지쳤다. 한 나라였으나, 지금은 너무도 달라져버린 두 문화의 나라 사이를 이동해서였는지, 아니면 두 나라의 안 좋은 관계로 인한 심리적인 위축감이었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부터 나는 순식간에 파키스탄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