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일기 vs 엄마일기
1980년생 여자가 쓴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일기 속에서 공통된 스토리를 뽑다.
담배
90년 1월 29일
아홉시가 됐는데 아빠가 담배를 사오라고 하셨다. 요새는 절약을 하신다며 청자를 피우신다. 그래서 지폐 한 장을 들고 세탁소로 뛰었다. 문이 닫혀서 식당으로 갔으나 문이 닫혀있었다. 윗도리 하나만 입고 밤거리를 쏘아다니니 추웠다. 집이랑 먼 후지고 어두운 길을 건너 동덕약국으로 갔다. 그 길은 흙탕물이 많아 맨발에 흙탕물이 튀었다. 고생 끝에 동덕약국에서 담배를 사오자 아빠는 수고비로 400원을 주셨다. 일한 보람을 느껴 마음이 뿌듯했다.
91년 7월 18일
저녁 설거지를 하려는데 아빠가 담배를 사오라시잖아. 하는 수 없이 천원을 들고 세탁소로 달려가 88을 사왔지. 집에 왔더니 아빤 왜 이렇게 늦냐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담배를 보시더니 왜 그걸 샀냐고 하시는 거야. 다시 세탁소로 가서 솔을 사고 대문 앞까지 왔어. 그런데 조마조마했어. 아빤 작년부터 솔은 피지 않으시거든. 다시 세탁소로 가서 아저씨를 불렀지. 200원을 더 드리고 88 긴 것을 샀어. 간신히 아빠에게 대령했는데 아빤 왜 그리 늦냐구 호통이지 뭐야. 나는 너무 화가 났어. 88긴거나 짧은 거나 길이가 조금 다를 뿐인데 아빠는 괜히 그러시잖아. 세탁소도 챙피해서 못 갈 거 같고. 다시는 담배 심부름 안할꺼야!
담배
2007년 11월 22
당고개역에서 한정거장 내려가면 상계역이고
그곳에서 은행사거리 방향으로 7분을 걸으면
요즘 내가 다니는 운전면허학원이 나온다.
어젠 눈이 잔뜩 쌓여 미끌거리는 길을 걸으며 남자친구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운전면허시험장에서도 이 생각 저 생각 하느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결국 사고를 쳤다. 좌회전할줄 알았던 앞차가 직진 해버리고, 뒤꽁무니를 멍하니 쫓던 나는 교차로 한가운데 서고 말았다. 강사들이 깃발을 들고 달려온다. 젠장. 날 죽이려고 하더군, 분명 수강생 보험도 들었는데...
강사들한테 험한 욕을 먹으니까 화나고 분해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면허시험장 한 켠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남자에게 다가갔다.
"죄송한데 담배한대만...,, 운전 못한다고 욕을 너무 먹었더니...."
체면불구하고 담배 동냥을 했다.
디스가 이런날 이렇게 두 손 덜덜 떨리게 필요할 줄이야.
2015년 9월 17일
남편이 담배 산다고 돈을 달란다. 오천원을 줬다. 얼마전까지 사천원짜리 피더니 요즘은 사천오백원짜리를 피우는 것 같다.
치사하게 오백원에 목숨 거는 와이프가 되고 싶진 않다.
결국은 저녁에 다시 물어봤다.
사천원짜리 담배는 뭐고 사천오백원짜리 담배는 뭐야?
응. 사천원짜리는 디스고 사천오백원짜리는 말보로야. 왜?
그냥...
담배값이 살인적이다. 인상된지 1년쯤 된 거 같은데 인상된 대한민국 담배값에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남편은 오죽할까.
2015년
어떤 담배를 피우십니까.
얼마짜리 담배를 피우십니까.
비싼 담배 사느라 편의점 앞에서 망설이는 당신의 어깨에 나의 한손을 얹고 싶네요.
'괜찮아. 당신.....당신은 당신을 위해 사천원을 쓸 자격이 있어'
작게 보면 저의 일기지만 크게 보면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이기에 케케묵은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문창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