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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Feb 13. 2018

우연히, 그곳에서...<96화>

[ 제96화 _ 어쩌면,  네가 알던 그 사람은 말야... ]



“어떻게, 깊게 고민은 해보셨습니까? 한기태씨?”

통보에 가까운 협박으로 기태에게 조마조마함을 안겨주었던 아영과 야마다.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더한 압박을 선사했던 그들은 며칠 후 다시 기태에게 넌지시 연락했다.

이 며칠 간, 걸려오는 처음 보는 광고 전화에도 움찔움찔하며 몸을 사리던 기태.

바로 전화를 받아 지난 번 통화했던 상대 여성,
즉, 아영의 목소리를 확인했다.

“도...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 나보고 뭘 어쩌라는 말입니까?”

“생각해보시라고 시간을 며칠이나 드렸는데도 아직 결정을 못하셨다는 말입니까?”

“제... 결정에 따라 얘기가 어떻게 달라진다는 건데요...?”

확실히 깊은 고민에 지친 목소리였지만, 기태는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기태씨, 지금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차...착각이라뇨...??”

“우리는 지금 한기태씨랑 거래를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더 나은 결과 쪽으로 권유를 하는 게 아니라, 기회를 드린 겁니다. 이렇게 나오시면 이쪽에서도 그냥 한기태씨가 했던 방식으로 풀어버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했던 방식이라면 어떤...”

아영은 준비했던 대사를 단 몇 초간의 망설임도 없이 쏟아내며 기태를 압박했다.

“기자들에게 푸는 거죠. 아시죠? 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한기태씨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퍼져가는 건 금방이죠, 한기태라는 사람의 미래에 그리 좋지는 못할 영향을 끼치겠죠? 아마도...”


지금, 세계는 작가 한기태가 만들어 낸 이야기로 큰 화제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상상력 가득한 스토리 텔러... 그러나 이번 화제는 아이러니하게 결코 작가로서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심지어 이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이후, ‘작가’라는 직업으로서는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주목을 못받는 것 정도가 아니라, 말하자면 작가인생으로선 파탄이 나버리게 될 지도...


이 길만 파고들어, 언제가 될지 모를 성공을 바라며 지쳐도 참고 견뎌내며 살아오고 있거늘,

이제 와 다른 길로 바꾸라고 한다면 과연 자신의 인생은 어떻게 될 지...

문득, 길을 걷다 마주쳤던, 트럭을 운전하며 생계를 책임진다던 만식이 떠올랐다.

능력이 부족한 자의 허황된 꿈바라기...
였었던 건 지, 기태는 현실적으로 다가온 미래의 걱정에 숨이 턱 막혔다.

“그럼... 제가 직접 가서 얘기를 하면 뭐가... 달라질 수는 있다는 겁니까?”

“그거야, 모르죠... 받아들이는 쪽에서 어떤 식으로 나올 지... 그래도 출판사 측에선 이제까지 피해를 입은 게 있는데,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죄를 지은 거면, 당연히 대가는 감수해야죠.”

기자들한테 실명을 밝히지 않은 채로 제보하긴 했었지만, 조금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너무 원초적인 방법으로 세현에 대한 질투심을 표출해 버린 건 아닌지, 기태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아영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얼마만큼의 큰 문제를 야기했는 지는 따지지도 않은 채, 빠져나갈 구멍만을 찾으려 하는 기태가 더더욱 괘씸했다.

그리고 문득 일본에서 세현과 같이 일을 하던 때에 세현이 기태에 대해 간간이 이야기하던 모습들이 동시에 떠올라 부화가 치밀었다.

‘아이고... 이 병신아...! 세현이 네가 그렇게 친하다고, 선배님이라고까지 얘기해대던 네 어릴 적 친구가 네 뒤통수 치고 나 몰라라 하고 있는 이 뻔뻔한 놈이다...!! 불쌍한 놈같으니...’

“한기태씨! 더불어!! 당신이 임세현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 까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되면 임세현씨에게도 알려질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세...세현이 한테...아니, 저... 어차피 지금 그 얘기... 시들시들해가고 있지 않습니까... 부탁인데, 세현이한테 만큼은 따로 알려주지 말아주셨으면...”  

뻔히 자신의 이름이 나가게 되면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 당연한 일이거늘, 이제와 새삼 인지하지 못했다는 투로 당황하는 기태.

게다가 가장 큰 피해자가 세현이거늘...
역시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은 모습이 분명했다.

아영은 그야말로 어이가 없었다.

아영은 문득,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준비한 야마다의 각본대로 진행하려던 중, 세현과 기태의 관계는 한 번 더 되짚어 볼 문제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기태씨. 일단 그럼 하루... 정도만 더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 시간 넘기고 나면 저희는 바로 행동 들어가겠습니다. 출판사로, 기자에게로 모두 한기태씨 이름을 풀 테니, 알아서 하십시오. 그럼...”

“저기...제가...”

뭔가 할 말이 남아있었던 듯 변명을 시도하려는 기태의 말을 자르고 통화를 끊어버린 아영.

옆에 있던 야마다는 아영에게 다가와 물어댔다.

“아영씨, 저쪽에서 뭐래? 뭐래? 자기가 자수하겠데??”

“음...아직 잘 모르겠다는 눈치 길래, 너 써준 대로 엄청 협박해댔지. 그랬더니 쫄더라고...”

“그래서?!”

“하루...더 시간 주기로 했어. 내일까지 결정하라고...”

아영의 말에 야마다는 펄쩍뛰며 다급한 듯 말을 이어갔다.

“아, 그건 계획에 없던 조치잖아!! 내가 그랬잖아... 이런 건 빨리 해서 결말 내어버려야 한다고...

안 그러면 예상치도 못했던 부분에서 우리한테 피해가 생길 지도 몰라...!”

아영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침착하게 야마다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뭐 이제 자기 입으로 확실하게 밝혀졌잖아. 밀고자가 이 자식인 거... 근데, 이 놈 정보를 내가 세현이 한테 처음 들었었단 말이지...!

[친구], [선배]...하면서... 그러니까, 이 자식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한 건 세현이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는 게 맞는 것 같아.”

펄펄 뛰던 야마다는 아영의 말을 듣고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아영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아영씨, 혹시... 그 세현이라는 사람 좋아했어? 듣기론 여자친구도 있다더니...”

밑도 끝도 없이 치고 들어오는 야마다의 공격에 아영은 깜짝 놀라 굳은 얼굴로 변명을 해댔다.

“조... 좋아하긴 뭘 좋아하냐!! 그냥... 같이 일했고 친한 사이니까 그런 거지...!! 너 뭐 쓸데없는 소릴 하고 앉았냐!!! 얘 덕분에 크리스 찾은 거 잊었어?!”


“아니... 아영씨처럼 좀 냉정한 여자가 너무 배려하는 모습이라... 혹시 남녀 간의 그런 감정이 있었나... 해서...”

“쓸데 없는 소리 마!!! 세현이는 지금 내 친구랑 사귀고 있는 중인데 무슨 헛소리야!!

야, 인제 좀 길게 세현이하고 얘기를 해야 될 테니까, 너 어디 딴 데 좀 가있어...!!”

오히려 펄쩍 뛰는 아영의 모습에 의심을 갖는 야마다. 슬쩍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영의 말을 따랐다.

“참, 힘들다... 힘들어...”

“뭐?!”

“아... 아무것도 아냐, 아영씨 그럼 나 저기 한국에서 가보고 싶었던 종로라는 데 가서 구경 좀 하고 있을게. 나 사실, 한국은 이번이 처음이야...! 다 끝나거든 연락 줘...”

“멍청아, 여기가 종로라고 몇 번 말하냐...!! 알았어, 나중에 연락할게!”

알 수 없는 분위기만을 남긴 채 자리를 뜬 야마다.

생각이 많은 건지, 좋지 않은 버릇이 있는 건 지, 항상 쓸데없는 참견을 해대는 야마다에게 툴툴대며 조심스레 세현에게 연락을 시도하려는 찰나.

[부르르르르르]

우연인건지, 신기하게도 세현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

“참 나...!”

피식 웃으며 아영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영이니? 지금 통화 가능해??”

“아이고... 임세현씨, 오래간만입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전화를 주셨습니까?”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우연히 전화를 받은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한 아영.

“아, 전화 받을 수 있는 모양이네...!! 다행이다... 후... 여기 좀 복잡한 일들이 많았어서 말야, 아영이 너한테 부탁할 일도 좀 있고...”

“음...어려운 부탁이면 좀 곤란한데... 뭐부터 들을까... 그래, 복잡하단 일들부터 한번 얘기해봐.”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를 하는 아영.
일단 세현의 볼일이라는 것을 먼저 확인해보고자 했다.


“해인이 지금 나 일하는데서 같이 일하고 있어.”

“에? 뭐야? 크리스 자식이 뭐 해코지라도 했어? 와....이 자식 정말... 내가 미리부터 그 자식 멀리하라곤 했지만..."

“흠... 크리스라면 다른 데 튀지 못하게 여기서 아직 잘 감시 중이니까, 걱정 말고... 그 자세한 작업실 관련 얘기는 나중에 해인이한테 직접 듣는 편이 좋을 것 같네.

암튼 그 작업실에서 완전히 나와서 이제 나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중이야, 지금도 일하고 있어, 해인인...”

“일을 한다면...? 레스토랑에서 뭐 그림 그려주는 일은 아닐 테고... 그럼 그림은 어디서 그려?”

“그게 참... 갑자기 너무 많이 상황이 달라져 버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여기 사장님이 화가라, 그래서 그 분 밑에서 지금 그림까지 같이 배우게 됐어.”

“뭐? 거기 사장님 너희 아버지 친구 분이시라며...! 화가란 말 처음 듣는데?”

“나도 안지 얼마 안됐어...근데 그것도... 보통화가가 아니라, 아버지랑 같이 작업한 화가 분이셨데...
[ 그들만의 세상 ] 삽화가...”

“헉!? 해인이가 그 소설 얘기 나한테 얼마나 많이 한 줄 아니? 그 화가가 한국 사람인 줄도 몰랐는데, 직접 만나서 지금 배우기까지 하고 있다는 거야?! 와...어떻게...”

자신도 받아들이기 버거웠던 만큼 그다지 논리적으로 설명은 하지 못했던 세현.

그러나 역시나 눈치 빠른 아영은 이런저런 부연 설명 없이도 척척 알아듣고 이해해 냈다.

“음... 맞아...! 너무 즐거워하고 있는 중이야 아주...! 하핫... 내 장편 소설도 최근에 마무리 되어서, 그것도 이제 해인이랑 같이 작업해 나가려는 중이거든...!”

“하이고,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일한단 소문만 들어서 그냥 일본 있지, 왜 거기까지 가서 같은 고생하나 싶었더니,

따로 계속 진행 시키던 글이 있었군 그래? 히히...!
잘해봐라! 커플이 아주 죽죽 척척 맞나보네...!!”

“덕분이지 뭐...! 아, 그리고 나 부탁할 거 하나 있다고 했잖아... 뭐냐면...”

간단한 프랑스 상황 브리핑을 마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세현.

아영은 가만히 세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 잘 아시는 분이 이번에 잠깐 일본에 가실 일이 있으시다는데, 일본말이 영 서툴고 숫기가 없으셔서 좀 헤매실 것 같다네...? 혹시 시간되면 공항에 마중만 좀 나와 줄 수 있니?”

“잘 아시는 분? 누구? 가게 사장님인가? 프랑스 사람이면 내가 프랑스어를 못하는 걸...!”

“음... 괜찮아 내가 메시지를 써 줄 테니까, 그것만 그냥 피켓 만들어 들고 있어주면 돼! 어지간해선 부탁 안하는데, 내가 신세를 좀 많이 졌던 분이라, 꼭 좀 부탁할게...!!”

“그래, 뭐 까짓 거...! 나중에 날짜랑 준다던 메시지나 전달해 줘...!!”

세현의 볼일이 끝난 분위기라 가만히 이야기할 타이밍을 보던 아영은 은근슬쩍 기태의 이야기를 던져보았다.

“세현아 너...말이야. 전화 한 김에 내가 하나 확인해볼 게 있는데 말야..."

"응? 뭔데?"

"너...예전에 나랑 같이 일했을 때, 종종 얘기하던 네 작가 친구 기억나? 너 거기 가서도 연락 자주 했니?"

"작가 친구...? 아, 기태 말이구나...! 너 참 기억력도 좋다... 그냥 지나가면서 했던 말인데...! 그 자식 하도 까칠해서 최근엔 연락 잘 안했는데 왜?"

"그럼, 너 공모전 당선 된 후로도 연락 한 적 없는 거지?"

"응, 아 그러고 보니 그때는 연락을 좀 했어야 했나... 안그래도 삐딱한데 또 삐졌겠네...!!"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세현이 오히려 몹시 딱해보였지만, 아영은 할 말을 끝까지 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세현아, 너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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