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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Feb 17. 2018

우연히, 그곳에서...<97화>

[제97화 _ 처음부터... 잘못된 건 지도 몰라 ]



"세현, 내 말 잘들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다 진실로 밝혀진 얘기니까..."

진지한 말투로 세현에게 당부하는 아영.

용건이 있어 전화를 걸었던 것은 자신이건만,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도 분위기를 잡는 지, 세현은 통 감이 오지 않았다.

"너 친구 그 기태라는 사람 말이야, 너한테 무슨 피해의식 같은 거 늘 가지고 있었지?"

"피해의식!? 무슨 소리야, 걔는 나보다 훨씬 일찍 작가로 데뷔했는데, 자신감이 너무 넘쳐서 오히려 문제였었다고...!"

"그거 말야...! 자기가 먼저 작가가 되어 있는 입장에서, 뒤늦게 네가 그 길로 들어온다 했을 때 널 곱게 봤었느냐고...! 엄청 시기했지?

네 말대로 먼저 발 들여놓은 친구라면 조언이나 다른 도움을 줄 수 있는 거 아냐?!"

"시기는 무슨 시기야, 그냥 좀 까칠..."

그게 그거...였던 가...?

세현은 곰곰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기태와의 대화를 떠올려 보았다.

[ 작가는 뭐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줄 아니?! ]

[ 그 좋은 회사 때려친다 할 때부터 내가 그렇게 뜯어 말렸건만...]

[ 네 아버지처럼은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다 걸어야지, 재미로 하는 게 아니라고...!! ]

원래는 그렇게까지 까칠한 녀석이 아니었는데,  되돌이켜보면 기태는 세현이 작가를 향하겠다는 결심 이후에 몹시 달라진 모습이었다.

"까칠해진... 시기가 좀 겹치기는 하는데, 뭐 그것만 가지고 그렇다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근데, 기태는 갑자기 왜??"

아영은 잠시 뜸을 들인 후,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는 세현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제일 가까운 곳에 적이 있다는 말 알아? 널 잘 알고, 그만큼 약점까지도 간파하고 있다고 한다면..."

"적?"

"그래, 네 적...! 사실... 우연히 짚이는 구석이 있어서 내가 좀 알아봤어. 너도 그렇고 해인이도 그렇고 너무 억울하게 당하고 있다는 생각 들어서..."

"그...그래서...?"

세현도 조금씩 눈치를 채가는지 조심스럽게 아영에게 대답을 채근했다.

"공모전 발표 이후, 네가 당선 됐다는 게 밝혀지고 나서 조작이네 어쩌네 하면서 기사화 됐었던 신문... 그 기자한테 최초 제보를 했던 게 그 한기태라는 사람이야."

"...???"

잠시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적. 
꽤나 시간이 지나서야 세현은 어렵게 아영에게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너, 그거 좀 지나친 것 같은데... 시기심이니 질투심이니 해도 그럴... 수가 있겠어? 그렇게 가까웠던 친구한테..."

세현의 반응을 가만히 기다려주던 아영은 깊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래... 상식적으론 말도 안되는 일이지... 같은 업계에서 친구가 먼저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질투나 시기 정도 하는 걸로 끝나지, 보통 이렇지는 않으니까..."

"...뭐야... 그럼...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이란 거야? 그나저나 넌 그걸...어떻게 안거야??"  

기가 막히는 지 말까지 더듬어가며 사실 확인을 독촉하는 세현.

"나 같이 일 하기로 한 동료 있뎄잖아,  야마다라고 하는... 그 친구가 옆에서 쓱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그럴 수도 있다고 얘기 하더라고...

그 얘기 들으니까 좀 집히는 데도 있었고... 그래서 몰래 조사 좀 했어."

"지...직접 조사를 한 거라고? 그럼 설마 만나고 연락하고... 그러기까지 한거야?"

"맞아, 설마 연락하고 기어이 만나기까지 했어. 그리고 그 사실도 본인 입으로 들은 거나 다름없어. 혹시나 해서 녹음한 파일도 가지고 있지만...”

확신에 가득 찬 아영의 목소리. 
세현이 아는 아영은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칠 상대는 아니었기에, 이 말도 되지 않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충격에 여전히 묵묵부답인 세현. 

머릿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가득 들어찼다. 

기태와의 추억,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할 때의 말투, 표정...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그 기억들 때문에 세현은 좀처럼 아영에게 대꾸할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어렵게 크리스도 찾아주고, 물심양면으로 내 친구 해인이도 돌봐주고 있는 너한테, 뭐라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어쩌다 보니 두 사람이 다 고통 받게 된 이 상황이 나도 참 괴로웠고...”

“...음... 이건 고맙다고 해야 될 지... 솔직히 나도 좀 정리가 안 된다...”

“이해해... 충격이 크겠지... 나도 처음 알았을 땐 살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났는데, 본인은 오죽하겠어...”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은 세현은 다시 아영에게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야마다씨 얘기 듣고, 언젠가 내가 얘기했던 거 떠올려서... 결국 귀국까지해서 만났다 이거야? 
참, 너란 여자, 추진력 하나는...”

“응, 친구한테 고통주고, 출판사에 불이익까지 생기게 했으니, 얼른 자수하라고, 안 그러면 먼저 기자한테 풀겠다고 얘기했어. 

근데... 아무래도 내 쪽에서 움직이기 전에 세현이 너한테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 이건 네 일이니까...”

세현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 어느 정도의 정리가 필요해 보여 감정을 다시 추스르며 입을 열었다.

“걱정해줘서 고맙고... 직접 찾아다니느라 고생했겠네... 고마워... 수고 많았어..."

"수고는 됐고...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줗겠어? 이 후에..."

이제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듯, 한결 담담해진 목소리로 세현은 아영에게 말했다.

 "음... 아무리 그래도 직접... 기태랑 얘기를 한번 해보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얘는...! 되고 말고가 어디 있어..!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네 일인데, 누구한테 허락을 맡는 거야!?"

해인도 그렇고 이곳의 일들이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고 생각했더니,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지.



세현은 폭풍 같았던 아영과의 통화를 마무리 한 후, 한참 동안이나 휴대폰에 기태의 번호를 써놓고는 차마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임씨!! 뭐해!! 언제까지 땡땡이칠거야!?"

"임씨!! 너 낮에 혼자 일 시켜 힘들었다고 땡땡이치려는 거냐!?"

"에잇...! 해인이는 그렇다 치고, 왜 아저씨까지 저 임씨라고 불러요!?"

"그냥 입에 짝짝 붙네, 허헛...! 원래 내 나이대 아재들이 쓰는 말인 걸... 니들이 이상한거야!“

아영의 전화를 받으러 한참이나 레스토랑 밖에 나와 있었던 터.

저녁식사 때에 가까워져, 분주해진 레시토랑 안의 아저씨와 해인은 번갈아가며 세현을 불러댔다.

"가요, 가...!"

이곳에 와서도 정말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이 따뜻한 환경.

여기서의 이 행복이 쭉 이어졌으면 좋으련만...

세현은 차마 통화 버튼까지는 누르지 못한 채, 기태의 번호만 쓰여진 핸드폰을 주머니에 대충 우겨넣고는 바로 레스토랑으로 복귀했다.

근무 중 내내 다른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은 탓인지 
주문을 받다가도, 음식을 나르다가도 우두커니 서서 멍하니 한곳을 응시하고 있는 일이 많았던 세현.

"해인아, 저기 저 네 남자친구 왜 저러고 있니..."

"흠... 글쎄요...!!"

"하이고...! 완전 넋이 빠졌네... 완전 장사 망칠라...! 
해인아 오늘 저 놈 데리고 좀 먼저 들어가라...! 참, 그리고 말했지? 내가 낸 과제 끝내기 전까지 작업실 못 들어가는 거다...!"

"예? 그...그럴게요...! 감사합니다...!!"

그때까지도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있던 세현은 아무 저항 없이 그저 해인의 이끌림대로 레스토랑 밖으로 끌려 나왔다.

가게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해인은 세현의 정면으로 다가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보자...어디 정신이 나간 것 같지는 않은데, 
이 남자 왜 이래? 어디 배터리라도 방전됐니?"

초점이 없이 힘없게 풀린 눈동자와 맥없이 축 쳐진 두 팔. 

이내 세현은 해인과 눈을 맞추며 힘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너라면 어떨 거 같아?"

"응? 뭐가 어때? 진짜 무슨 일이야?! 서...설마 할머님이...??"

“아냐, 그건 아니고...”

그제서야 제 정신이 돌아온 듯 세현은 해인의 손을 꽉 붙잡고 천천히 가게를 벗어나 터벅터벅 같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굳은 표정과 경직되어 보이는 몸동작에 해인은 세현의 옆에 더 찰싹 달라붙어 채근해대기 시작했다.

“임씨...!! 뭔데 그래? 나한테 얘기 안 해 줄 거야? 끙끙 혼자 앓지 말고...”

“후우...!”

세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해인을 힐끔 내려다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해인이...너한테... 제일 친한 친구는 아영인거야?”

“응?!”

뜬금 없은 세현의 질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해인. 

“음? 갑자기 그건 왜? 뭐...오랜 기간 쭉 같이 만나오던 사이는 아니라 제일 친하다고 까진 못 하겠지만...”

“그럼, 누구...친척이라도, 계속해서 만나오고 그러던... 친했던 사람 혹시 있어?”

“음... 글쎄... 난 사는데 바빠서 딱 누구 떠오르는 사람이 없네... 다 고만고만 하다 그래야 되나... 근데 왜 답은 안하고 질문만 계속 하는데...?!"

"음... 만약에 말야...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한테...배신을 당했다 하면... 어떤 기분일 것 같아? 해인인...?"

"뭘 어떤 기분이야? 좋을 리야 당연히 없겠고, 어떤 식의 배신이냐에 따라서 응징을 할 지 말 지 정하겠지..!"

"어떤 식의 배신이냐에 따라..."

혼자서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살았다던 해인. 

어리바리해 보이는 천성과는 달리 인간관계에 있어선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해 보였었다.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배신도 했겠지... 생각은 하더라도, 나한테 돌아 온 피해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지...!"

해인에게 의견을 물어 지금의 복잡한 심경을 조금이나마 분산시키려 했던 세현.

정도를 따지며 응징을 논하는 의외로 냉정한 해인의 반응에 머리속은 더욱 복잡해 졌다.

"그래, 누구야...? 누가 우리 임씨를 배신했다는 게!
아까 전화 받으러 나가더니 지금 이렇게 된 거 잖아, 누군데...?"

"아니, 내 얘기는..."

 "...맞잖아!! 임씨 얘기...! 누구야, 배신한 놈...?!"

이벉 만큼은, 누구에게라도 들켜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까지 참담한 기분을 겉으로 숨기는 것은 불가능할테니...

"그래...이건 너도 관련이 있는 문제니까, 다 얘기 할께."

세현은 이미 이전에 몇번 얘기한 적도 있어 해인도 알고 있을 기태와의 이야기를 모두 해인에게 꺼냈다.

학창시절의 친구, 그리고 훨씬 이른 시기부터 세현이 가고자 하는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는 선배와도 같다는 존재.

최근들어 약간 괴팍한 부분이 있다곤 했었지만, 그 얘기 끝에는 항상 '크리에이터의 고충'이라는 변명을 같이 곁들여주던 세현이었다.

해인이 가끔 들어 인지하고 있는 기태의 이미지는 딱 거기까지 였다.

그런 사람이, 말 몇마디 잘못 놀려, 그것도 친구인 사람을 의도적으로 깎아 내리기 위한 밀고자였다면...

충격과 공포에 빠졌음이 당연했다.

배신 정도가 아니라, 아주 궁지로 몰아 자신과 같은 필드에선 아주 발을 들이지 못하게 병신을 만들어 버리는 행위임에 분명했으니.

어렵게 해인에게 이야기를 마친 후,  뭔가 다시 처음의 충격이 되살아나기라도 한 건지 온 몸에 미세한 경련까지도 느껴지는 세현.  

해인은 잠시 길옆의 벤치에 앉아 세현을 뒤에서 꽉 안아주었다.

환멸과 충격으로 피가 솟구치듯 식어버린 세현의 몸을 감싸안은 해인의 체온.

맞닿은 세현의 목부근에선 어느 때보다 큰 박동으로 맥박이 꿈틀댐이 느껴졌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아영이한테는 직접 연락해 보겠다고 말했는데... 연락해서 내가 어떻게 말하게 될 지 나도 가늠이 안돼..."

"음...일단 좀 진정하고... 냉정해 져,  임씨...! 이런 정도로, 친구였던 사람을 몰아붙일 수 있다는 건, 임씨랑 친하게 지냈던 목적부터 의심할 수 있는 문제 아닐까...!"

"목적...이라니?"

"아버지 유명세 때문에 말 걸고 아는 척하는 사람들, 예전부터 싫다고 했었지? 
그럼, 그 기태라는 친구의 처음은 어땠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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