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too Feb 20. 2018

우연히, 그곳에서...<98화>

[ 제98화 _ 대체 너한테 난 뭐였어?! ]


"아버지 아는 척하면서 접근해 오던 사람들.. 그렇게 싫었다면서..."

세현은 가만히 기억을 소환해 보았다.

학창시절 친구인 기태. 어린시절 이었다고는 해도 만나게 된 계기가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 네가 임세현이니? 혹시 아버님이 소설가 임형우씨? ]

이미 그 때부터 소설가로서의 삶을 꿈꾸며 작가 [임형우]를 동경했었다던 기태의 첫마디였다.

반이 같았었던 적도, 같이 학원을 다니거나 한 적도 없었건만.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이라도 하듯이 수줍게 다가와 통성명으로 시작되었던 기태와의 인연.

물론 그 때 역시도 마음에 썩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태...도... 그랬었네, 아버지 얘기하면서 나한테 말 걸었으니까..."

"좀 냉정하게 들릴 순 있겠지만, 그 사람도 결국 임씨가 싫어한다던 같은 부류잖아...!"

믿고 친하다 생각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정도가 아니라, 그 친구와의 만남부터 송두리째 거짓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이미지...

세현은 괴로움에 고통스러워했다.

"해인아...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볼땐 임씨는 말야, 좀 당하고 사는 경향이 있어. 옛날부터 그런 환경 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겠지만..."

"내...가?"

해인은 세현의 손을 꽉 잡아주며 말했다.

"연락해. 불만 얘기 하라고... 이번 일 만큼은 가만히 당하고 있을 문제 아니야...! 자기 꿈 중요하면, 남의 꿈 중요한 줄도 알아야지..."

냉정하게 직언을 해대는 해인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일로 인해 어렵게 상황을 극복해 가는 세현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 온 바, 말도 안 되는 누명 때문에 마음 고생하며 힘겹게  보낸 시간. 

심지어는 어렵게 결정한 작가의 길마저도 흔들거릴 수 있을 만큼의 큰 사건이었음에 분명했다.

해인 자신도 연관되어 있다는 문제를 떠나, 억울하게 당해온 자신의 남자친구, 세현이 고통 받은 기간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았으면 하는 이유였다.

“기자한테 제보하려던 순간부터... 그 사람... 이제 임씨 친구도 뭐도 아닌 거야...! 오히려 남보다 못한거지... 자기가 알고 있던 다른 정보까지 악용한 셈이잖아?"


아영의 충격적인 전화 영향인지, 상태가 영 좋지 않았던 세현을 배려한 사장 아저씨 덕에 조금 일찍 퇴근해, 밤 8시가 조금 넘어간 시점이었다.

그렇지만 유난히 칠흑같이 어두웠던 이날의 아를 하늘.

"임씨, 더 고민하지 말고...빨리 그 사람한테 연락해! 잠깐 자리 비켜 줄 테니까, 지금 당장 해!!"

"지...지금?"

세현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꺼내어 쥐어주는 해인.

휴대폰 화면에는 아영과 통화 후 바로 전화하려다 망설였었던 기태의 번호가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흠, 바로 찍혀있었네...! 고민 그만하고, 자...!!"

해인은 통화 버튼을 멋대로 눌러버리고는 커피를 사오겠다며 자리를 피해주었다.

속절없이 이어져 가는 통화 연결음.

[ 뚜 ㅡ 뚜 ㅡ ]

[딸깍]

"......"

"......"

분명히 전화를 받은 전화 상대 기태. 그렇지만 왜인지 말이 없었다. 

어색함과 낯섬에 전화를 건 세현 쪽도 무어라 말을 꺼내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전화를 했으면 말을 해야지..."

어색하게도 긴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건 기태 쪽이었다.

"그래...나다..."

두 사람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기태 역시 이미 어느 신원불명의 여성에게 협박을 받았던 바, 오래 간만에 걸려온 세현의 이 전화가 그저 안부를 묻기 위함은 아니었음을 직감했다.

세현 역시도 막상 기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배신감과 분노에 온몸이 떨려왔지만 일단 본인의 입으로 이 말도 되지않는 상황의 해명을 듣고자 했다.

"오래간만이다... 임세현..."

"그래... 오래간만이긴 한데, 썩 반갑지 않은 일로 이렇게 연락을 하게 됐네..."

"......"

어렵게 참아내던 세현의 분노는 결국 바로 본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설명해봐, 내가 들은 상황들..."

"누구한테...뭘 들었다는 거야? 다짜고짜?!"
 
이미 전화를 받는 순간의 침묵이 다 말해 주었거늘, 알고도 일부러 모른 체 하는 듯한 기태에게 세현은 슬슬 언성을 높여갔다.

"내가 누구한테 뭘 들었느냐 이런 거 말고, 너 나한테 먼저 뭐 할말 없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너한테 할 말이 뭐가..."

기태는 확실치 않은 상황 속에서 조금 더 시간을 끌어 볼 생각이었다.

세현이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추궁 전화를 했을 거란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끝까지 자신의 입으로 인정해서는 안될 문제라 여겼는 지.

그래도, 최소한 양심상 먼저 사과라도 해주기를 바랬던 세현은 이 뻔뻔한 친구에게 자신의 전화 목적을 또렷이 확인시켜 주었다.

"내가...공모전 수상한 데 불만 가지고 유언비어 퍼뜨린 게 너라는 거... 알고 있어...! 됐냐? 이래도 모르는 척 할거야?!"

드디어 확연히 입밖으로 새어나와 버리고 만 사실.

이미 흥미가 떨어진 건지, 사람들이 믿지 않는 건 지, 이미 세상에선 효력이 다한 듯 흐지부지 되어가고 있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당사자의 불명예와 당시에 받았던 상처만은 씻을 수 없었다.

"그건...내가 아니라도 누구나가 다 가질 수 있는 의혹이었어...! 떠올려봐도 의심이 갈 수 밖에  없지 않겠어?!"

"그래서!? 남들 다 가지는 의혹인데 누구 움직여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네놈이 앞장서서 총대 메고 횃불 붙였냐!? 마치 사실인것 마냥 그럴 듯이 포장해서!?"

"사... 사실 처럼 포장한 적은 없어! 다만, 상황이 이러저러 하니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했을 뿐이지...!!"

엉겁결에 범죄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실토해 버리고 만 기태.

심각하게 사실을 전달해 주었던 아영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실이 아니길 바랬다.

'무슨 소리냐, 나는 아니다' 라고 얘기해주길 기대했건만...

"그래서...!? 그런 말을 해서 네가 얻는 게 뭔데!? 너 내 친구 맞냐!? 이 나쁜 새끼야...!!"

울부짖음으로 변해버린 세현의 말투.
기태 역시 울컥한 기분이 차올랐지만 여기서 굽히고 들어갈 수 없었다.

"얻는 거?! 얻는 거 없지...!! 내가 대신 상 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어릴 적부터 같은 꿈가지고 살아오던 사람 입장에서, 부당해 보이는 사실에 불만을 가져서도 안된단 거냐?!"

"부당해?! 뭐가 부당한데!! 아직도 자기가 지어낸 말을 사실처럼 얘기하고 있네, 야...! 정신차려 임마,
나라고 뭐 아무것도 안하고 옆에서 차려준 밥상이나 기다리고 있었을 것 같냐!?"

"다시 말하지만...! 의심할 여지는 충분해!! 허황된 말 같았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믿었겠냐!?"

"그래서 네 말, 뭐야...? 내가 임형우 아들이라 출판사에서 특혜를 줬고, 심지어는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개최한 공모전이었다고까지 비난하려는 거냐!?"

눈앞에 있었더라면 치고받는 육탄전으로까지 발전했을 법한 두 남자의 감정싸움.

잠시 물러나 있겠다던 해인은 멀찌감치에서 계속되는 세현의 몹시 흥분한 모습을 지켜보았다.

"작가의 아들이면,  눈치보여서 글도 쓰지 말라는 거냐?! 아닌 말로, 다니던 직장이며, 생활이며 다 때려치우고 글 쓰는데 매달렸는데, 아버지가 유명하면 그럴 자격도 안된다는 거냐!?"

"문제는!! 임형우씨 덕을 본, 아니, 뭐 전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 출판사라는 거지...!! 누가 봐도...! 그렇게 은인 같은 사람 가정은 챙겨주고 싶은 생각 안들겠냐?!"

"그래서...!! 이래저래 상황만 보고서 다른 건 따져볼 생각도 안하는 거냐?! 너, 내 글 보기는 했냐?!"

"봤지!! 어디서 많이 봤던 문장에, 흔한 소재...! 명색이 내가 작가인데 그것도 안보고 내가 그런 소리 했겠냐?!"

"당연히 너도 공모전 참여 했겠지?! 그래, 그럼 그렇게 좋은 글 잘 가려낸다는 사람이 왜 명단에 
못 올라왔어?! 나라별로 수상인원 제한이 있던 것도 아니고, 네 말대로 나한테 특혜를 줬대도 네 거가 좋은 작품이라면 같이 올라올 거 아니냐!?"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고조될수록 서로의 창작 세계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오고가고야 만 두 남자의 대화.

멀찌감치에서 지켜보던 해인은 점점 커지는 세현의 목소리에 무슨 일이라도 터질 것 같아 걱정이 되었지만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됐건,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뒤통수 맞은 것 같아 기분이 아주 뭣 같다... 너, 그 얘기 제보했을 때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길 바랬겠지?! 이렇게 알게되니 당황은 좀 되냐?!"

"친구로서가 아니라, 내 직업, 작가를 걸고 나선거야!!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다른 힘들게 사는 작가들도 마찬가지 일 거고...!"

"야, 네 행동을 예쁘게 포장하려고 하지 마!! 너 힘들 게 산 걸 왜 남한테 보상 받으려고 하는데?! 네가 선택한 작가인생이고, 그 세계에서 경쟁은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공정한 경쟁이냐고, 이게!!??"

조용히 흘러갈 수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서로의 치부를 건드리며 막장에 이르는 개싸움이 될 줄은 몰랐는데.

세현은 점점 힘이 빠져갔다.
글 쓰는 사람이라고, 원래부터 자기주장이 확고하게 강한 녀석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얘기는 도무지 발전없이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왜 내가 이런 해명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결백한다...! 여기서 좋은 일러스트레이터 만났고, 그 사람하고 협업해서 실력으로 수상했어! 

너도 공모전 룰 알겠지만, 수상 전까진 작가가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시스템이잖아! 누군가가 깎아내릴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

갑자기 밀려든 먹먹함에 말문이 막힌 기태. 

세현에게 전화가 걸려온 순간부터 마음먹고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리라 생각했건만, 

막상 목소리를 직접 듣게 되니 그렇게 쉽지 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기태의 잠깐의 망설임을 바로 눈치챘음 일까, 타이밍을 늦추지 않고 세현이 다시 얘기했다.

“네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내가 학생 때부터 얼마나 아버지 부정하면서 아버지 아들인거 싫어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잖아! 

근데 이제 와 천연덕스럽게 아버지 덕을 보고 있다고 얘기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도 그 그늘 벗어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

기태는 더 이상 세현의 기세를 지탱해낼 힘이 떨어진 건지, 한층 힘이 풀린 목소리로 응수했다.

“어쨌든... 내가 네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말리던 작가 세계로 입문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네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어떤 목적을 달성한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나로선...”

“그러냐...?”

설득도, 권유도, 협박도 통하지 않음을 느끼고 이미 포기 단계에 다다른 세현. 

양쪽 모두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낸 탓인지 지쳐버린 목소리였다.

“아무튼...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알고 있는 거 그대로니까 나 욕할 거면 욕해라. 그럼 끊는다.”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린 기태.
세현은 핸드폰을 귀에 댄 그 자세 그대로 멍하니 땅만을 바라보며 꽤 긴 시간을 망부석 마냥 서 있었다.

두 남자의 치열했던 공방전만큼이나, 마치 곧 폭파할 듯 할 정도로 뜨겁게 달구어져 있는 핸드폰.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세현을 지켜보던 해인은 눈치를 채고 세현의 곁으로 돌아왔다.

휴대폰을 든 채 미동도 없는 세현, 시선은 오로지 땅만을 향하고 있었다.

전화 내용을 다 알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세현의 모습으로 어느 정도 기분을 알아채기라고 한 듯, 해인은 아무 말 없이 세현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미동이 없는 세현의 눈에서는 반짝하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분노와 배신... 
이제까지 자신이 겪은 억울한 일들의 시발점이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친구에게서부터 였다는 사실을, 직접 실체로 확인한 것에 대한 통한의 눈물.

철저한 성격의 아영이 하는 말이 거짓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심정적으로 믿고 싶지 않았었다.
 
해인은 자신의 손으로 세현이 눈물을 훔치며 가볍게 끌어안고 토닥여 주였다. 

“잘 된 거야... 아영이가 큰일 해줬네...어차피 끊어질 인연은 길게 끌고 있어봐야 좋을 게 없어.” 

품안에 안긴 세현의 몸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



통화를 마친 기태.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전화를 끊기는 했지만, 휴대폰 화면에 남아있는 세현의 번호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호통을 치며 싸우던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내리기 시작한...눈물.

'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나... '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매거진의 이전글 우연히, 그곳에서...<97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