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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Feb 23. 2018

우연히 그곳에서...<99화>

[ 제99화 _ 어찌 합니까...어떻게 할까요... ]


'한기태,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

기태는 세현에게 했던 자신의 행동을 있는 힘껏 정당화 시켰다.

자신도 모르게 자기변호를 위해 변명처럼 둘러댔던 내용은 너무 그럴 듯 해, 자신조차도 속아 넘어갈 정도.

냉정하게, 세현과의 통화를 마무리 해 버렸지만, 기태의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대화내용들이 맴돌았다. 

 [ 네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

특히 통화 막바지에 거의 오열을 하듯 내뱉어 졌던 세현의 말은 계속해서 잔상을 남기며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는 듯 했다. 

"왜?! 왜 내가 그러면 안 되는데?!!"

세현은 명백한 금 수저라고, 자신과는 다른 세상 사람임을 인정하고,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길이 달라 목표가 같지 않다면 친구로서 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저 학창시절 친했던 모습 그대로, 계속 좋은 영향을 주고 받아가며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돌연 방향을 틀어 기태가 가고자 하는 길과 같은 길로 들어와 버린 세현.

기태로선 사람 좋게 환영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었다.

이 길은 어렵다며, 다시 생각해보라며, 강력한 적의 등장을 막아보려 애를 썼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기태가 먼저 창작이라는 필드에 나와 있었기에, 세현은 '선배님, 선배님'해대며 뭔가를 배워가려 존경을 표했지만, 기태는 늘 냉담했다.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던 세현의 잠재력이, 늘 두려웠다.

‘성공한 작가’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봐오던 환경,

그것은 예비 작가에겐 어마어마한 무기가 될 수 있음에 틀림없을 것.

그리고 그 무기를 쓰게 될 일이, 가능하면 자신의 쪽으로 향하지 않기를 늘 바래왔었는데...

기태의 우려만큼이나 큰 모습으로 드러나 버린 세현의 잠재력.

시기도 적절하게 기회가 만들어졌고, 약속이나 한 듯, 세상은 그 잠재력을 알아보았다.

기태로선 부정하는 방법 외에 택할 길이 없었다.

남들보다 우월하게 타고난 환경의 덕, 오로지 그것뿐일 것이라고...



한국 시간 새벽 5시경.
이 꼭두새벽부터 전화가 걸려온 순간부터 기태는 누구일 것이라 짐작이 갔었다.

다짜고짜 전화해서 협박을 해대던 신원불명의 이상한 여자의 협박 이후,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탓이었는 지. 세현이 혹시 전해 들었다면 시차고 뭐고. 물불 가리지 않고 따지러 전화를 해 올 것이라고...

신경 쓸 일투성이에 근래 들어 잠이 잘 오지도 않았지만, 알람보다도 훨씬 더 센 자극을 준 세현의 전화 덕에 기태는 또렷해진 정신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오늘...이랬지...?’

기태의 정체를 세상에 공개하겠다며 겁을 주던 신원불명의 여성이 예고했던 마지막 날.

기태로선 상대가 어떤 여자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요목조목 다 따지려 드는 폼새가 허투루 말을 내뱉는 풋내기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예상보다도 훨씬 일찍 걸려온 세현의 전화에 정신이 빠져버린 기태는, 이 날까지 결정하라던 문제에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어떻게 됐든 밝히고 말 거란 거 아냐...? 내가 직접 밝히건, 그 여자가 밝히건...그렇게 되면...'


꼭두새벽부터 시작된 복잡한 감정들로, 먹먹하게 아침을 맞은 기태의 눈에 새삼스럽게도 자신의 책장 가장 위에 놓여있는 책 [그들만의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해인이 가진 책, 세현이 가진 책만큼이나 많이 보아 너덜너덜 해진 상태의 책.

[그들만의 세상] 소설은 오랜 시간 동안 문학계에서 사랑을 받아 온 만큼, 

소장본으로 깔끔하게 새로 만들어진 버전이 출간되긴 했었지만, 기태는 이 낡아빠진 구 버전의 책을 바꿀 수 없었다.

그 안에는 무려, 생전 임형우 작가에게 받은 친필 사인이 담겨있었기 때문에.

물론 작가의 아들과 친구라는 인연이었기에 주어졌던 기회이기도 했지만, 작가 친필 사인 소설은 십 수 년 동안 간직되어 온 기태의 보물이었다.

꺼내어 책장을 처음 펼치자마자 드러난 위대한 작가의 사인. 

무심하다 못해 대충 써 갈긴 모양새였지만, 새록새록 옛 기억들을 소환시켰다.

“야!! 너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나 작가님 사인한 책 한권만 선물해줘!!!”

“아, 뭘 자꾸... 아버지 집에 잘 있지도 않다니까...!! 얼굴보기도 힘든 데...얼굴을 봐야 뭘 부탁을 하던지 하지...”

“그럼 계실 때 언제라도 내 이름 써서 사인 한번만 부탁하자!! 응? 제발!! 내가 밥살께!!”

“고딩이 뭔 돈이 있다고 밥을 사...!! 됐어 임마!!”

학창시절,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 친구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기태는 명백히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세현에게 접근했었다.

임세현이라는 동갑내기의 '학교 친구'보다, 평소 동경하고, 가장 배우고 싶어 하던 ‘작가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이 먼저 관심이 갔기 때문에.

학교 내, 전반적으로 모범생에, 별다른 문제없는 학창시절을 보내길 희망하던 세현이 누군가와 싸우는 일이 생겼을 때, 시발점은 늘 아버지에 관한 시비에서 부터였다.

세현의 주변인들은 늘 아버지와 연관되어 ‘시기하며 시비를 거는 사람’과 ‘동경하며 우러러 보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었다.

기태는 명백히 후자 쪽. 그것도 가장 선두주자의 위치였다.

항상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나면 세현의 편에 서 주었고, 세현 역시 그런 기태의 모습에 서서히 마음을 열어갔다.

기태가 그토록 경계하던 세현의 '무기'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너무 유명해져 버린 ‘아버지’ 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누려오며, 습관적으로 타인에게 좀처럼 믿음을 주지 못하던 세현이 어렵사리 마음을 주었던 친구 기태.

계기야 어떻든, 학창 시절 내내 반도 달랐던 둘은 서서히 친해져 갔지만, 세현이 꿈을 변경하고부터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냉정한 모습으로, 냉랭해져 버린 두 사람의 거리.

세현은 이유를 알 수 없이 언젠가 부터 변한 기태가 서운했지만, 

늦은 나이에 어렵게 결정한 자신의 길을 찾아 가는 데에 바빠, 이렇게까지 틈이 생겨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태는 너덜너덜해진 표지 안쪽에 쓰인 임형우 작가의 사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인과 함게 표기되어 있는 짧은 메시지.

[ to. 세현이 친구 기태 / 훌륭한 작가가 되기를... ]

아마도 세현이 아버지에게 친구가 작가 지망생이니 무언가 메시지를 담아달라고 얘기해 덧붙여 놓은 것으로 생각되는 메모였다.  

작가 사인 책을 받아들고 좋아서 날뛰던 모습, 별 거 아니라며 허풍을 떨어 대던 세현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비겁하게 코너에 몰리게 된 지금에서야 이런 감상에 젖어들게 될 줄이야...

분함과 원통함... 그리고 자괴감에 괴로웠다.
자신은 그저 숨기고 있던 감정을 표출하고 싶었을 뿐인데, 

결국엔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제일 나쁜 놈이 되어 있는 것은 본인뿐이었다.

무엇보다 조마조마한 지금의 심경으로, 앞으로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빨리 어떻게든 벗어나지 않으면...' 




평소 밤늦게까지 글을 쓰느라 이른 아침 회사원들의 출근길을 많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기태.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출근길을 서두르는 회사원들 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어딘 가로 향했다.

알 수없는 어떤 여성의 반 협박 탓도 있었지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한 선택...

이것 역시도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일 뿐이었다.  





***





“어젠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녔어?!”

한국이 처음이라 이곳저곳 구경을 다니고 싶었다던 야마다. 

그저 아영의 서포트를 위해 들른 한국이긴 했지만 처음 나와 본다던 외국이 신기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아영씨, 근데 우리 언제까지 한국에 있어야 되는 거야?”

“한국 처음이라며? 어디 다른 데 가보고 싶은 데 없어?”

“진짜? 아영씨, 같이 가 줄 것처럼 얘기하는...?”

“음... 너 하는 거 봐서... 평소 네 스타일대로 이곳 저곳 다 가보고 싶어서 막 잔뜩 조사해 놓은 자료 들고 찾아다니는 그런 식만 아니라면 뭐... 이제 할 일도 거의 끝난 것 같고..."


“아...!! 아냐 안 그럴 게...!!! 그냥 딱 몇 군데만...!!”

그래도 나름 아영을 도와주기 위해 처음으로 바다 건너왔는데, 자신을 너무 혼자 방치해두는 것 같은 기분에 조금은 서운했던 야마다. 

사실 이미 야마다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아영의 우려대로, 

야마다는 한국에 오기 전 가고 싶었던 곳에 대한 조사를 마쳐 자료 한 무더기를 숨겨놓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동행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아영에게 모든 것을 맞춰 주기로 했다.

세현에게 기태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난 후라, 한층 마음이 홀가분해 진 덕인지, 아영은 보다 부드러워진 톤으로 야마다에게 이야기했다.

“어디 가고 싶은데? 뭐 다른 목적 없이 보는거면 번화가 느낌은 일본이랑 별로 안 다를 텐데...”

“명동...? 이란 데 가보고 싶어 명동...!!”

“너 어제 종로 혼자 돌아다녔다면서? 명동은 안 갔어?”

“종로 갔다니까, 명동 말고...”

“쳇, 거기가 거긴데... 암튼 뭐, 따라 와! 뭘 하자고 가자는 진 모르겠지만...”

어린 아이처럼 졸라대는 통에 야마다의 명동 구경에 동행하게 된 아영. 

이른 시간임에도 몰려드는 사람들, 사방에서 들려오는 외국어들에 야마다는 신이 나서 정신을 못 차리겠는 모양이었다. 

“야, 너 같은 스타일은 원래 사람 많은 거 별로 안 좋아하지 않냐? 왜 이렇게 신났어?”

“나한텐 외국이잖아! 아영씨, 저거, 저거 뭐야? 먹을래? 먹어도 돼?"

같이 조사하고 분석하고 그럴 때는 냉철하게 분위기 잡으며 우등생 흉내 내더니,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신이 난 야마다의 모습에 아영은 슬쩍 웃음이 새어나왔다.


서울의 대표 번화가 명동의 모습에 홀리기라도 한 듯, 야마다는 명동의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며 상점이며 사람들 구경에 심취했다. 

무엇보다 전 날과는 달리, 이동 내내 옆에서 아영이 같이 있어 주고 있는 사실에 감동을 실감하는 중이었다.

여전히 수수하게 차려입은 아영이었지만, 지나가는 곳마다 남자들이 힐끔힐끔 뒤돌아 볼 정도의 미모는 숨길 수 없었다. 

물론 언제나 처럼 본인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지만...

야마다는 명동 한복판에서도 주목받는 그 인기 여성과 현재 함께 걷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에, 몹시도 뿌듯함을 느꼈다.

비록 그저 매일 티격대는 동업자에 지나지 않는 관계이지만...  


한참을 돌아다니다 잠시 휴식을 위해 보이는 한 카페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두 사람.

“아, 참나...! 너 원래 그렇게 잘 돌아다니는 타입이었어? 아주 따라다니느라 힘들어 죽겠네...!!”

“아? 그래, 미...미안...”

사업관련 서류도 준비 할 겸, 세현 관련 일을 알아보러 한국에 온 두 사람이지만, 

일본에서 같이 진행하려는 이자카야 관련 사업이야기, 크리스나 안톤에 대한 이야기 등, 

거의 모든 사안을 같이 하고 있는 입장이었던 만큼, 얕거나 깊은 어떤 이야기에도 공감대를 갖고 잘 통할 수 있었다.


말하는 게 조금 어눌하긴 해도, 사건의 순간순간마다 결정적인 도움과 힌트를 주어오기도 했던 야마다.

이제는 확연히 믿음이 가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아영씨는, 세현씨가 기태라는 사람 어떻게 할 것 같아? 그래도 친구잖아...”

“친구는 무슨, 얼어 죽을... 자기 편한 대로 이용해 먹다가 불리해 질 때 절벽에 떠다 밀어버리는 게 친구냐? 연락한다고 했으니까 아마 대판 싸웠겠지...”

“그래도... 중학생 때부터 친구라며... 20년 지기...는 되는 건데... 그렇게 단칼에 자를 수 있을까...”

“아니...! 네가 모르는 게 있는데, 그 기태라는 자식은 세현이를 처음부터 이용하려고 접근했던 거야...!"

"그래도 세현씨는? 그렇게 생각 안했던 거잖아..."

"그건..."

아영은 순간, 분노보다 배신감에 떨려오는 듯 했던 세현의 전화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신이라면 어땠을 까... 일방적일 지라도 긴 시간을 친한 친구로 여겨왔던 대상이, 사실은 처음부터 의도된 만남 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면... 

[부르르르.....!!]
 
야마다의 날카로운 의견 피력에 또 다른 시선으로 접근을 하려던 아영에게 갑작스럽게 전화가 걸려왔다.

"응? 여보세요?! 해인이...??"

"응,  아영아...!  잠깐 시간 되니?"

"뭐야, 지금 세현이랑 같이 있어? 왜, 무슨 일 있어?"

"응, 뭐 별 건 아니고... 임씨 오늘 상태가 영 아니길래 일찍 들여보냈어...! 그나저나 임씨한테 얘기 다 들었어... 너 고생 많았다며..."

"고생은 무슨...! 별 거 아냐! 세현이 상태 많이 안 좋니? 기태란 자식한테 연락해 본댔는데..."

"응,  사실 그거 관련해서 좀 얘기할 게 있어서 말야..."

"???"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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