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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Mar 13. 2018

우연히, 그 곳에서...<104화>

[ 제104화 _ 나 만나러 온 거...아니잖아... ]



"야마다, 너 혹시 펜 가진 거 있어?"

"응?"

자신들의 사업 관련 서류 준비와 출판사 사건 범인 추적을 위해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던 아영과 야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나름 성공적으로 볼일을 마친 두 사람은 바로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세관 신고서 쓰려고? 자, 여기..."

"아니, 이거 말고, 매직이나 네임펜 같이 굵게 나오는 거 없어?"

"에? 굵게 나오는 건 갑자기 왜?"

"다 쓸데가 있어서 그래, 있으면 빨리 내놔 봐!!"

여전히 틱틱대는 말투였지만, 이곳에서의 목적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서 였을까, 

이전보다 한층 부드러워진 아영의 말투와 태도에 야마다는 그저 뿌듯했다.

"자, 여기...!"

"응? 뭐야? 진짜 있어?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만물상인가, 없는 게 없구만...!"

펜을 넘겨받은 아영은 자그마한 스케치북을 꺼내 어떤 쪽지를 컨닝해가며 영어 스펠링으로 보이는 글자를 쓱쓱 적어가기 시작했다.

"응? 뭐 적어? 영어? 이거 뭐야? 피켓 같은 거 만드는 거야?"

"몰라, 세현이가 저번에 부탁했던 거야. 자기 아는 사람 일본 오는데 택시 타는 데까지 가이드만 좀 해달라고... 일부러 일정 맞춘 것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시간대는 딱 맞네 아주... 뭐, 어려운 일 아니니까...”

"음...여기 뭐라고 써있는 거지...?"

"프랑스어로 뭐라 되어 있는데, 뭐라는 지 알 게 뭐야? [ 웰컴 투 재팬 ] 이런 거 겠지...! 뭐 굳이 알아야 할 내용 아닐 테니..."

세현이 남겨주었다던 메모 속 문장을 모두 옮겨 적은 아영은 스케치북을 덮고 그대로 앉아 있던 좌석을 눕히고 눈을 감아 버렸다. 

"자...이제 됐다... 이제 이거 공항가서 들고만 있으면 알아보고 찾아 오겠지...! 야! 나 좀 잘테니까, 말 걸지 마!"

"응? 아, 그...그래...자...!"

본디 호기심이 생기면 참지 못하는 야마다.

야마다는 아영이 스케치북에 옮겨 적던 글을 옆에서 몰래 베껴 아영이 잠든 틈에 번역기를 돌려 확인해 보았다.

"이런 뜻이...! 아, 엉...?!"

잘테니 말 걸지 말라며 벽을 친 직후이긴 했지만,
알게 된 뜻을 아영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옆자리를 확인해 본 야마다.

많이 고단했던 건지 아영은 눈을 감자마자 쌔근대며 이미 잠에 빠져있었다.

"그래 뭐... 그냥 만나면 되는 거지, 뭐...!”

야마다는 스튜어디스에게 담요를 하나 부탁해 아영에게 덮어 주었다.

새삼 지금 아영의 곁에 자신이 있다는 것에 혼자 감동하며, 자고 있는 아영의 얼굴을 흐믓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동경 하네다 국제 공항까지 이동에 소요되는 약 2시간여.

비행기 안에서 뭔가를 해보려 하면 바로 도착 소식이 들려 올 만큼 멀지 않은 거리였다.

[잠시 후, 하네다 국제 공항에 도착합니다 .
승객 여러분께서는...]

깊은 잠에 빠져버리기도 전에 도착한 아영과 야마다의 본거지.

번잡하게 자신의 짐들을 챙겨 공항으로 빠져나오는 승객들 틈으로, 아영은 준비했던 스케치북 판넬을 고이 챙겨들고 공항을 나섰다.

귀국 플랫폼 쪽으로 나간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 세현이 부탁한 손님의 귀국시간을 기다렸다.

“음... 파리에서 오는 비행기... 보자, 한 30분만 기다리면 도착한다니까..!”

“아영씨 지금 오는 사람, 프랑스인 인거지?”

“몰라. 뭐, 프랑스 인이겠지? 세현이가 써 준 글이 프랑스어에... 일본어를 전혀 모른다는 거 봐서는...”

“그...그런가...? 근데, 일본엔 왜 오는 거지...”

야마다는 아영이 옆에서 자던 사이, 검색으로 알게 되었던 이 판넬 속 문장이 영 거슬렸다. 

공항에서 가이드를 해달라 부탁했다고? 가는 길 정도야 인포메이션만 들러도 다 알 수 있는데 무슨...

이런저런 정황 상 나이가 많은 사람이겠거니 짐작했다.


세현에게 부탁받은 이가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30분 이었지만, 그 기다림이 지루할 새랴, 음료수며 간식이며 쉴 새 없이 사다 나르는 야마다.

"야, 내가 일본 한 두번 오는 것도 아닌데, 유난 떨지 말고, 슬슬 귀국 플랫폼 가서 서 있자...! 이제 올 때 다 됐다는데..."

"어, 어...! 그래...! 아, 근데, 아영씨! 혹시 괜찮으면 피켓 내가 들고 있어도 될까?"

"응? 왜? 프랑스 인 처음 봐? 아주 신기해 죽겠는 모양이네...! 그래, 뭐 나야 상관 없으니까 맘대로 하던가...!"

"아, 그래! 그럼 내가 들고 있을 게. 아영씨 팔 아플 까봐 그러지...! 저기 앉아 있어 그냥."

"쳇, 또 무슨 꿍꿍이야...!?"

"봐...!! 파리에서 오는 비행기 좀 더 늦어진데 잖아...! 앉아있어, 앉아있어...!”

야마다는 아영에게서 피켓을 넘겨 받아 들고는 억지로 아영을 뒤쪽 벤치에 앉혔다.

잠시 후, 
같은 시간대에 도착한 비행기 편수가 몰려 있었는 지 갑자기 공항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 무수한 인파.

여유롭게 자신의 나라로 돌아오는 일본인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공항부터 둘러보는 외국인들...

하나의 문에서 나와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는 인파들 속에서, 혹시나 자신을 보지 못한 채 지나칠세랴, 야마다는 피켓을 든 양팔을 위로 쭉 뻗어 흔들며 어필해댔다.

억지로 뒤쪽의 벤치에 앉아 턱을 괸 채로 야마다의 괴상한 행각을 지켜보고 있던 아영은 혼잣말로 속삭였다.

“좀 수상한데, 저 자식... 왜 저렇게 오버하고 난리야...?”

아영과 야마다가 나올 때는 그나마 한산했던 귀국장은, 나오는 인파와 맞이하는 인파가 뒤섞이어 어느덧 꽉 차게 붐비는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야마다는 서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신을 지나칠 때마다 눈을 맞추어 가며 피켓쪽을 가르켰다.

서양인들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피켓 내용을 확인하기는 했지만, 이내 자신들의 목적지로 흩어져 갔다.

왁자지껄하며 분주하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잠잠해질 즈음.

한 사람도 놓치지 않으리란 패기로 눈에서 레이져를 쏘고 있던 야마다를 향해 누군가 다가왔다.



시야를 가릴 만큼 큰 짐을 양손에 한아름 안고, 어기적대며 다른 승객들에 비해 뒤늦게 걸어나오던 한 청년.

그는 야먀다의 바로 코앞까지 가까이 와 야마다에게 물었다.

"저... 혹시 미야비씨 입니까?"

"예? 누구...십니까..?"

"들고 계신 피켓에서 찾는 사람입니다. 아, 보아하니 미야비씨 본인은 아니신 모양이네요...!"

그제서야 청년은 안고 있던 짐들을 옆에 조심스레 내려 놓고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땀을 닦았다.

"후우...! 그럼 미야비씨가 보내서 오신 분인가요? 본인은 지금 어디..."


"에? 이 피켓보고 오신 분이세요? 전 당연히 프랑스 분일거라고..."

"예? 대신 마중나와주신 분 같은데, 미야비상한테 말씀 못 들으셨나요? 프랑스에서 오긴 했지만, 일본인라고 말씀 드렸는데..."

의문점 투성이었지만 야마다는 가만히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뭐? 미야비? 뭐야, 누구야... 그럼 이 사람은 미야비라는 사람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왔다는 소린데...'

벤치에 앉아 있던 아영은 야마다에게 누군가 말을 거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일어나 다가왔다.

들고 있던 큰 짐에 가려 바로 얼굴을 확인할 수 없던 위치였지만, 

야마다에게 가까이 올수록 짐을 내리고 서서히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 이 청년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눈앞의 이 청년과 눈이 마주친 아영.

"......!!!"

"아...?!"

아영은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지며 성큼성큼 청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오로지 한 곳만을 응시하며 차츰 거리를 좁혀오는 아영 .

야마다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자신을 지나쳐 청년에게 필요 이상으로 더 가까이 접근하는 듯한 아영을 말리기 시작했다.

"아, 아영씨?? 자, 잠깐...!!"

[ 짜 - 악!!!!! ] 

사람이 많이 빠져나간 한적한 공항 내부 전체로 울려 퍼지는 소리. 

선명한 소리는 이곳저곳의 작은 웅성거림들에 파묻히지 않고 정확하게 사람들의 귀에 꽂혔다.

근처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이곳으로 집중 될 정도의 존재감으로.

아영의 눈앞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뺨을 어루만지고 있는 청년.

"...너... 너 ..."


보자마자 다가가, 다짜고짜 따귀를 올려 친 아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기억을 소환해 내는 듯한 그.

확신에 가득 차 여전히 분노로 이글대는 아영의 눈빛. 당장 눈앞의 남자를 갈아 마셔버리기도 할 듯한 눈빛으로 청년을 노려보았다.

[ 짜 악!!! ] 

어리숙하게 한쪽 뺨을 어루만지며 아직까지도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청년의 반대 뺨으로 다시 날아든 따귀 한 방.

피하지 못한 건지, 피하지 않은 건 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이번에도 그대로 자신의 다른 뺨을 내주고 말았다.

"어이...! 얘기해봐라, 이 개자식아,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아니, 그... 저... 내 얘기를 좀...”

두 번의 따귀 세례에 잠시 정신을 놓았던 것인지, 잠깐의 머뭇거림 후, 서둘러 허리를 숙여 내려놓았던 짐을 다시 집어든 청년. 

그는 카와모토였다.

홈페이지를 통해 구매 의사를 밝힌 한 일본인과 접선하려, 직접 그림을 들고 일본행 비행기를 타 장시간의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던 카와모토. 

구매자는 분명히 일본 공항의 귀국 플랫폼에서 알아볼 수 있을 팻말을 들고 있겠노라 했었다.

가져온 소중한 자신의 그림에 혹시나 흠집이라도 날세랴, 조심조심 운반하다보니 나오는 데 시간이 꽤 걸리고 말았던 카와모토.

인파의 뒷 꽁무니를 따라 플랫폼으로 나오자, 카와모토는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피켓 내용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 자신도 프랑스어로 표기되어 있을 지는 예상치 못한 채.

[ 크리스 화백님 환영합니다. 멋진 그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


이제부터 밝아질 듯한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청운의 꿈을 안고 몇년 만에 돌아온 고국이건만,

들어오는 관문에서 자길 맞이하고 있는 게 가장 들켜서는 안되었던 아영이었다니...

이 피켓을 들고 있었다는 건 일본에 돌아올 자신을 알고 있단건데, 이건 또 어떻게 된 영문인지... 

카와모토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아영, 네가 왜 여기서 이런 걸 들고..."

"이런 거? 너 뭐냐고!! 그런 짓을 하고 사라져놓곤 이러고 당당하게 나타나?! 네 놈이 사람 새끼냐고 묻잖아!!?"

주위 시선 아랑곳 않고 흥분에 극에 달해 있는 아영을 보며 옆에서 지켜보는 야마다는 침착하게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이게... 우연이 아니라면... 부탁했다던 사람이 저 사람이란건가...? 프랑스에서 같은 동네에 있었다고 했으니까, 그럼 일부러...?'

야마다 역시도 이제까지 같은 피해자 신분으로 카와모토 일행을 쫓아다니던 입장이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마음의 상처까지 어마어마했던 아영과 카와모토의 분노의 재회장면에 섣불리 끼어들기는 쉽지 않았다.


"너... 아니, 사정따윈 듣고 싶지도 않아 내 돈... 그리고 저기 저 친구도 빌려줬다는 돈...당장 내놔!! 그리고... 정식으로..."

아영은 갑자기 얘기 중 차오른 울분에,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왈칵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그렇게 갑자기 어디로 사라져 버려서...
 사람 엿먹이니까 기분이 홀가분하디?!  며...몇년을 너따위 쓰레기 찾아 헤맨다고 내가..."

카와모토에의 감정은 사랑으로 시작해 분노로 바뀌어 갔지만, 찾아 헤매던 시간과 공들이 결실을 맺었다는 허탈함인지,

긴 시간 동안, 감정을 배제한 채 그저 쫓기에만 급급해 무뎌져 버린 자신의 감정에의 연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였는지 고개를 숙인 채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아영.

날카롭게만 보이던 아영의 순식간에 무너진 듯한 모습에 무언가 빈틈이라도 발견한걸까.

카와모토는 아영에게 다가가 슬쩍 어깨에 손을 올리려 했다.

[탁!]
 
떨리는 아영의 어깨에 카와모토의 손이 닿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카와모토의 손을 내리쳤다.

"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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