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전인가 그랬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메시지가 왔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봤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초점이 맞지 않았다. 3센티미터 정도, 화면을 멀리 하니 조금 나아지는 듯했지만 여전히 제대로 읽을 수는 없었다.
거기까지.
나는 그 거리 그대로 몇 초 간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잠시 생각하듯 입을 오므렸다가, 고개를 한두 번 끄덕이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고개를 들었다. 40, 41, 42... 숫자가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여전히 무슨 메시지인지 알지 못한다. 읽지 못했으니 당연하다.
화면을 더 멀리 하거나, 안경을 이마에 올려 썼다면 또렷이 보였을지 모른다. 알고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참아낼 수 있는 거리는 딱, 거기까지였다. 중년의 입구에 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지만 문턱을 넘고 싶지는 않았다.
빈도가 잦아졌다. 눈은 쉬이 피곤했고 초점은 더욱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 '거리'를 유지했다. 대신 몇 주 후 노트북 화면을 확대했고, 그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 글씨를 한 단계 키웠다. 한 화면에 담기는 콘텐츠가 줄어 화면을 이리저리 움직여야 했고, 여전히 스마트폰 메시지를 읽기가 불편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편한 것은 마음이었다. 또래에 비해 나은 편이지 않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유난은... 하며 스스로를 달래기도 꾸짖기도 하였으나, 어떻게 하든 한심하게 느껴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래, 인정.
병원에 가 보기로 했다. 검진 받아 보고 결과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다. 봄나물도 전적으로 동의하고 지지해 주었다. (내 결정에 봄나물이 이렇게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마침 다음 주 월요일이 휴가니 아침에 당장 가기로 했다.
가지 않았다. 오늘은 화요일이고 곧 수요일이 될 것이다. 갈 생각이 없다. 봄나물도 이제는 포기했는지 별말하지 않았다.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많이 아프거나 불편하지 않거나 뭐 그렇다기보다는,
귀찮았다.
귀찮음이 불편함을 이기는 것을 보니 나는 아직 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