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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Nov 08. 2024

단란한 동네

벚나무가 가득한 동네였다. 늦가을이라 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길가에 집들 사이에 단지 곳곳에 벚나무가 있었다. 나무들은 크지만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힘껏 뛰면 꽤 높은 가지까지 닿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림없는 정도의 크기였다. 다정하게 내려다보는 눈길이 따뜻했다. 


벚꽃이 가득한 동네를 떠올렸다. 눈처럼 꽃잎이 날리는 풍경은 그림 같았다. 아내를 꼭 닮은 그림 같은 아이가 꽃잎을 잡으려고 어설프게 뛰다 당연하게 주저앉았다. 아이가 꽃잎을 하나 주워 들고 뒤돌아보면, 유모차를 밀고 가는 나와 그 옆에 다정한 거리를 두고 함께 걷는 아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모두 웃고 있었다. 행복이다! 가슴이 뛰었다. '단란한 가족'을 장면으로 표현하면 이와 같으리라. 


계약해 버렸다. 이사할 곳을 알아보던 중 지인의 소개로 '일단 동네 구경이나 한 번 가 볼까' 한 것이었다. 꽃이 피지 않은 다정한 벚나무와 아내를 닮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그림 같은 아이가 있는 단란한 상상이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렇게 벚나무가 가득한 동네 주민이 되었다. 


이사한 첫 주말에 눈이 어마하게 내렸다. 저녁에 동네에 있는 유명한 찐빵집에서 만두를 사다 먹었다. 밤에 끝도 없이 내리는 눈 속을 달려 병원에 갔다. 아이가 태어났다. 아내를 꼭 닮았다. '해야아' 부르니 아이가 오른손을 가만히 들었다. 


동네에 벚꽃이 가득 달렸다. 한겨울에 거짓말처럼, 길가에 집들 사이에 단지 곳곳에. 눈길이 닿는 곳마다 눈이 있었다, 온통 눈길이었다. 


이듬해 봄, 벚꽃이 피지 않았다. 대신 귀여운 새순이 돋았다. 벚나무가 아니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지만 아직 뛰지 못했다. 대신 아내나 내 품에 매달려 가지 사이로 날리는 햇빛을 손으로 받거나 만지곤 했다. 손목에 주름이 잡히는 작고 통통한 손이었다. 모두 웃고 있었다. 상상과 다르고 같았다. 나무가 가득한 단란한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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