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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먹히는 핑계다

by 소기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설 연휴 전 월요일, 임시 공휴일 확정' 기사가 뜨자마자 마음을 굳혔다.


임시 공휴일이 아니어도

으악 그냥 확 마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떠나버릴 참이었다. 거의. 진짜.


여행의 이유는 많고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이번만큼은 딱 한 가지였다.

시험대비다 특강이다 두어 달을 쉬는 날 없이 일한 아내에게도

야구부 훈련과 대회 참가, 개인 훈련 등으로 주말도 방학도 없는 아이에게도

까닭 모를 회의에 끝 모르게 빠져버린 나에게도,

휴식이 간절했다.

(써 놓고 보니 내가 제일 덜 힘든 거였구나 싶어 부끄럽고 미안하다)


ㅡ바다 보고 싶어.

ㅡ응, 또?

ㅡ없어.


모처럼 합의가 순조로웠다.

느닷없는 황금연휴에 좋은 숙소를 구하기 어려웠지만

이 역시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양양에 가기로 했다.

거기 바다가 있으니까.


디테일한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숙소를 정하고 식당 몇 군데를 봐 두었다.

2박 3일 일정인데 괜찮을까?

파워 J인 아내보다 P인 내가 더 걱정하는 상황이 낯설었지만

아내는 오히려 들떠 보였다.


출발하려면 아직 몇 날 며칠이 남았지만

마음을 먹는 순간, 여행은 시작된다.

떠날 결심 만으로

공기가 달라졌다.

달고 개운하다.


드디어 전날 밤,

계획은 간단했지만

짐은 간단치 않았다.


4킬로그램 남짓한 강아지 한 마리 늘었는데

10킬로그램은 짐이 늘었다.

그래도 녀석이 있어 여행의 밀도가 높아질 것이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아이도 너무 설레 잠이 안 온다고 노래를 부르다

정신을 잃었다.


ㅡ오늘부터 여행 시작인 거야.

ㅡ술 먹으려고 별 핑계를 다 댄다.


그러면서 아내는 맥주가 달다고 했다.

여행은 먹히는 핑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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