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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Aug 22. 2023

경험을 전승하는 로컬 창업을 위하여

Discovery

2018년 언저리에 청년 중심의 지역 창업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도시에서 탈출(exit)하여 지역으로 간 청년이 늘어서라기보다는 정부의 지원 확대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지역 창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지속되고 있다. 인구 감소와 지역 격차 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로컬 창업이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 험난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속가능한 로컬 창업 생태계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글. 더가능연구소 조희정 연구실장

고향이 아닌 곳에 이주해 정착하는 ‘J턴’과 ‘I턴’의 주요지로 꼽히는 제주


이 시대 청년 창업의 지난함

청년 창업자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의견을 들어보니 창업 후 안정화까지 최소 3년, 지역 정착 안정화까지 최소 6년이 걸린다는 게 중론이었다. 초기 단계에서 데스밸리(death valley)를 거쳐 후기 단계로 이어지는 스타트업의 생애주기 속에서 무난하게 시리즈 A, B, C 투자를 유치하여 성공적으로 IPO를 하는 기업은 매우 드물기도 하다. 모든 것이 이래저래 안정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따지고 보면 기회형 창업(벤처)뿐만 아니라 생계형 창업도 항상 불안정 상태다. 쉴 새 없이 시장 변화를 파악하고, 상품 품질을 높이고, 갑작스러운 외부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그야말로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은 어느 형태의 창업자나 모두 경험하는 일이다. 시장에서의 생존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창업 시작을 알리는 자리에서 눈부신 파워포인트로 그럴싸하게 발표하면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투자 유치를 위한 IR을 발표할 때는 혹독한 평가를 경험해야 한다. 투자 유치 후의 과정도 그보다 어려우면 어려웠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있다. 누군가는 자원과 새로운 창업방식이 세팅되지 않은 지역에서 다양한 창업자나 투자자들과 연결되기 어려워서 외롭고 힘들기까지 하다.



로컬 창업의 특수성

정부가 창업을 독려하는 모양새이지만 독려만으로 모든 사업이 완성되기는 어렵다. 창업 아이템과 콘텐츠, 기술력에 따라 수많은 지원과 협력이 필요하고 민간투자 독려 방식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기술 창업자는 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를 통해 팁스 운영사의 지원을 받고, 지역 창업자는 민간투자연계형 매칭융자(LIPS)를 통해 라이콘(Lifestyle & Local Innovation Unicon)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

TIPS는 구체적인 기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투자 판단의 근거가 명료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역 창업의 경우는 좀 더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로컬크리에이터’, ‘지역가치창업’, ‘로컬 벤처’로 불리는 지역 창업 부문은 보통 ① 지역체류형, ② 지역탐구형, ③ 지역비즈니스형(F&B, 농임어업), ④ 지역문화기획형, ⑤ 지역커뮤니티빌딩형, ⑥ 지역문제해결형 등 6개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로컬크리에이터 창업 부분 6개 유형

지역 시장의 규모가 작다 보니 대부분의 사업체가 유형 하나에 해당하기보다는 복합적인 유형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주로 지역체류형, 지역비즈니스형과 지역문화기획형이 다른 유형보다 많은 편이다. 즉, 지역에 가서 일단 거주해 보고, 뭔가의 아이템으로 사업을 해 보거나 요즘 세대들이 선호하는 문화상품을 기획하는 유형이 많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6개 유형보다 더 많은 유형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다수를 이루는 유형보다 지역탐구, 지역커뮤니티빌딩, 지역문제해결도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머물고, 판매하고, 문화를 향유하는 만큼 지역자원을 지속해 탐구하고, 지역 내외의 연계를 위한 커뮤니티 빌딩을 통해 지역의 인적 자원 구조를 풍부하게 구성하며, 인구문제뿐만 아니라 교육·사회·참여·요양·보건·환경·공정성 등 지역의 많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건 정부가 인프라를 공고히 하거나 대기업의 사회공헌 분야에서 할 일이지 일반 사업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UJI턴*한 청년들이나 지역에서 굳건하게 살아온 주민들은 모두 공감하는 절실한 문제들이며 그러기에 더욱 좋은 아이디어와 사업화 방안이 필요한 부문들이다. 

UJI턴


로컬이 비즈니스로 이어지려면 

첫째, 많은 창업자를 창업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창업가는 직업이 아니다. 매일 창업만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지역의 생활과 산업이 부실하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지역 창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제는 시작만 독려할 때가 아니라 제대로 된 사업화를 모색할 때가 되었다. 창업이 사업으로 이어질 필요성에 대해 좀 더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둘째, 실무 차원에서는 - 산업적으로 중요한 부문에 규제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가 시행되는 것처럼 - 지역적으로 시급한 부문에 (가칭) 로컬샌드박스라도 필요할 것 같은 상황이다. 지역 창업자들이 사업자로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직면하는 문제는 사실 일반 규제샌드박스 부문의 애로사항과 유사하다. 즉 과도한 소요기간, 주관부처 구분의 어려움, 복잡한 신청절차, 과다한 신청서류, 승인기준 불명확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일상적으로 주민들과의 소통과 갈등 관리, 안정적인 사업장 확보, 또래 인구 유입 활성화, 사업 관련 지식습득과 교류 등 수많은 난관에 직면하고 있다. 어느 부처에서 진행하든 적극적인 정부 지원은 많을수록 고마운 것이지만, 그것이 단기간의 성급한 결과 증명과 복잡한 행정절차의 피로감과 함께 진행된다는 것을 익히 체감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사업진행 과정에 대한 섬세한 이해 없이 유니콘 기업이 되라고 독려한다면 그야말로 상상 속의 동물 유니콘에 대한 회의감만 깊어질 뿐이다. 국내에서 창업 10년 이내에 기업가치 1조 원을 달성한 유니콘은 2023년 2월 기준으로 18개 업체이고, 이런 특출한 트랙에 들어갈 수 있는 아기유니콘, 예비유니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많은 개인 창업자와 팀 창업체들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셋째, 위와 같은 관점에서 로컬크리에이터가 거대한 유니콘이 되고자 하기 이전에 일단 지역에서 제대로 정착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 많은 이익을 얻었다고 해서 누구나 지역에 안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현재의 지역 창업 수준에서 필요한 것은 성장을 위해 통합적 지원을 하는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나 벤처 캐피털(venture capital, VC), 로컬 펀드(local fund) 등이 아니라 좀 더 초기 단계에서 꼼꼼하게 지역 사정을 살펴 지역 현실에 맞는 종합지원을 하는 로컬 인큐베이터(incubator)일 것이다. 

일반적인 인큐베이터 활동은 공간 제공에 초점이 맞춰있고, 액셀러레이터는 좀 더 전문적인 사업 지원에 초점이 맞춰 있는데, 지역 창업에서는 그 중간에서 지역 현실을 반영하여 좀 더 지역에 잘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로컬 인큐베이터 기관이 필요하다.

떠밀려서 압박감을 느껴 창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가 전문적으로 무르익도록 검토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저 전문가의 강연이나 멘토링을 듣고 그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힘들어하기보다 능동적으로 질문을 준비하여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형 멘토링을 경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창업이나 사업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삶의 가치가 지역의 조건과 조화되도록 노력하는 과정에 창업이 좋은 수단이 되고 사업화를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의 효능감이 지역과 조화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초기의 지역 창업자들이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노하우의 축적이나 계승이 이어지지 못한 채 계속 맨땅에 헤딩하는 식의 새로운 창업만 이루어지는 악순환을 멈춰야 한다. 소위 지역 창업 생태계가 제대로 형성되려면 양적인 창업 규모 성장, 창업체의 수익 규모 증가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지역 갈등에 대한 극복 사례, 작은 지역이라도 좀 더 규모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지속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역 창업의 규모와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화려한 목표를 향한 단거리 질주보다는 주변과 소통하며 실력을 제대로 축적하는 절차탁마의 성숙 과정이 필요하다.

제주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로컬크리에이터 / (위) 제주의 빈집을 재생해 마을을 살리는 ‘다자요’  / (아래)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해 손세정제 등을 만드는 ‘코코리제주’




기획 및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이루다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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