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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Aug 25. 2023

가장 자연스럽고, 우리다운 Local을 찾다

미국 로컬 비즈니스 트립

여행지에서 먹은 음식은 그날의 분위기와 공기를 다시금 떠오르게 하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로컬 버스에 끼어 탔던 것마저 좋은 경험과 기억이 되고, 두꺼운 플라스틱 젓가락, 꼬질꼬질했던 옆자리의 아이들까지 다시 생생하게 보인다. 그렇게 로컬은 강한 힘이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새로운 로컬을 만들어 낸다.

글/사진. 오잔디 손양화 디렉터

오잔디 손양화 디렉터


신혼여행을 가장한 로컬 비즈니스 트립!?

예전부터 맛있는 음식과 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술을 사랑했다. 그래서 30대 때는 오롯이 술과 함께 한 기억이 많다. 겨우 소주 한 병이 최대 주량이지만, 그저 맛있는 술을 좋아할 뿐. 

서른이 넘은 시점, 술이 좋아서 만 6년간의 커리어를 뒤로 한 채 맥주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당시 회사와 업무, 사내 문화 등이 만족스러워 1년간 맥주회사에 다니는 것이 행복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만, 그때의 인연 덕분에 나는 인생에 큰 변화의 순간이었던 ‘미켈러맥주축제’에 가게 됐다.

도쿄에서 열린 미켈러맥주축제에서 다양한 맥주를 만났다. 그중에서도 슈퍼스티션 미더리(Superstition Meadery)의 ‘미드(Mead)’라는 꿀술은 아이스와인과 비슷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꿀의 단맛이 느껴져 그 맛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달지도 않았으며, 부재료에 따라 각양각색의 맛과 향을 내는 게 신기했다. 미드에 빠져서 계속 부스 근처를 서성이기도 했다. 이후에는 당시 마셨던 미드만큼의 감동을 만나지 못했고, 가슴 한편에 꼭 다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만 담아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주 플랫폼 구축과 꿀술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전통주 플랫폼 구축과 꿀술 사업을 제안해 창업지원 프로그램인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되었다. 본격적으로 꿀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슈퍼스티션 미더리의 미드를 맛보고 싶었다. 마침 신혼여행을 준비하고 있었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자 직접 슈퍼스티션 미더리를 찾아 미국으로 신혼여행 겸 로컬 비즈니스 트립을 떠났다. 우리 부부에게 휴양지보다 배낭여행이 더 인생에 남을 추억이라 생각했다.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LA, 샌디에이고, 피닉스, 시애틀, 포틀랜드 등을 돌면서 유명한 혹은 유명하진 않지만 특별한 로컬 브루어리들과 로컬샵, 로스터리 등을 찾아다녔다. 로컬 로스터리에서 개성 강한 커피도 마셔보고, 크고 작은  브루어리의 맥주를 마시며 사진첩을 로컬로 채웠다. 그중 우리가 가장 기대했던 일은 미켈러맥주축제에서 만났던 슈퍼스티션 미더리를 로컬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미국 현지에서 찾아간 슈퍼스티션 미더리


직접 경험한 로컬의 가치

슈퍼스티션 미더리의 SNS를 통해 마케팅 담당자에게 연락했고, 운이 좋게 인터뷰에 응해주면서 그들의 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를 얻었다. 미국 애리조나 주도인 피닉스에 있는 슈퍼스티션 미더리를 찾아 차로 이동하는 내내 미국 서부에서는 보기 힘든 붉은 바위산, 사막과 선인장이 펼쳐져 압도당한 느낌이 마저 들었다. 슈퍼스티션 미더리를 만든 이들은 전직 소방관이었던 제프(Jeff)와 그의 아내 젠(Jen)이다. 그들은 집에서 취미로 수제맥주, 사이다, 미드를 만드는 홈 브루어(Home Brewer)였다. 미드의 매력에 빠진 후 취미에서 사업으로 이어진 것은 2012년이었는데, 여느 창업자가 그러하듯 초기에는 설비를 갖출 자본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친구가 운영하는 양조장의 게스트가 되어 설비를 대여하는 방식(*Alternating Proprietorships)으로 생산을 시작했다. 애리조나에서는 첫 사례였다.

*Alternating Proprietorships 
미국 내 주류 및 담뱃세 및 무역 등을 담당하는 기관인 TTB에서는 초기 창업가의 부담을 덜고자 Alternating Proprietorships을 시작했다. 기존에는 양조장에서 허가받은 회사 외 다른 회사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불법이었지만, ‘Alternating Proprietorships’을 통해 양조장 설비와 생산을 다른 회사와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쌍방 간 명확한 계약조건 아래 진행된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미드에 쓰이는 모든 꿀은 애리조나산이며,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 전 세계의 다양한 재료, 과일 등을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창업자 제프는 어느 한 인터뷰에서 ‘슈퍼스티션에서는 생산 방법이나 공정, 재료의 종류 등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가 발전해 온 방식’이라고 했다. 즉 애리조나산 로컬 꿀로 정체성을 확보하고,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맛과 스타일은 이외의 부산물로 나타낸 아닐까 싶다.

흥미로운 이야기만큼이나 현지에서 마신 미드의 맛은 상상 이상이었다. 개성 넘치는 라인업 중에서도 백미는 선인장으로 만든 미드 ‘Desert Monsoon’이었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사막에서 영감을 받은 미드다. 애리조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Prickly pear(선인장 열매)와 야생화 벌꿀의 조합이라니,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조합이다. 


환경이 만드는 자연스러움과 상상력 

미국 여행에서 어마어마한 대자연, 차원이 다른 시장의 규모, 로컬을 몸소 경험했다. 하지만 해외의 선진 사례를 가져와서 우리에게 억지로 맞추는 건 자연스럽지 않겠다고 느꼈다. 로컬은 그저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즐기는 문화 자체이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의 자연스러운 로컬을 보여주면 되는 게 아닐까.

미국에서의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항상 마음속에 있었다. 결론은 억지스럽게 맞춰 넣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우리답게’ 하자였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 에서 답을 찾았다. 김해 토박이인 필자의 어머니는 39년 동안이나 김해에서 고래 고기, 꼼장어, 한식 등 요식업을 해오셨다. ‘로컬 식재료’, ‘팜투테이블’이 요즘 화두가 되고 있지만, 오랜 기간 요식업을 해온 어머니에게는 예전부터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인해 생계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어머니를 필두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오잔디’라는 로컬 기반 스타트업을 만들었고, 꼼장어에서 수제 한식도시락으로 메뉴를 변경했다. 웬만한 식재료는 김해 로컬시장에서 직접 구하고, 샐러드에 필요한 양상추나 채소는 외할머니 밭에서 직접 가져오기도 한다. 어머니는 도시락의 맛 본질에 집중하고 여기에 우리가 좋아하며, 재미있는 콘텐츠를 더하기로 했다.

오잔디는 말 그대로 감탄사 ‘오!’와 자연을 의미하는 ‘잔디’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자연 속에서 즐기는 피크닉의 즐거움을 전달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조미료를 최소화한 자연스러운 맛을 제공하며 고객의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춘 도시락 구성을 제안하며 김해, 부산 지역에서 도시락을 판매하고 있다.

오잔디는 야외, 공원, 자신만의 공간에서 즐기는 피크닉을 통해 일에 갇힌 삶이 아니라 일로 나를 표현하는 삶을 살도록 응원한다. 피크닉과 잘 어울리는 상큼한 과일 향이 가득한 수제맥주를 출시하기도 하고 로컬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을 통해 피크닉 노트와 모임을 기획하며 피크닉의 가치를 로컬에서 전달하고 있다.


도시락을 통해 피크닉의 가치를 전하는 ‘오잔디’

오잔디는 로컬에서 우리만의 재미있는 시도를 하고, 스토리를 쌓아나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오잔디의 수제맥주 ‘오쏘파인’을 출시한 것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부산 로컬 브루어리 와일드웨이브와 협업했는데, 거짓말처럼 우리가 원한 그 맛을 구현해 주었다. 오잔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picnic everyday’와 소풍에 대한 설렘도 맥주에 담았다. 도시락 업체에서 맥주를 만드는 게 쓸데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재미있다면 기꺼이 할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고객에게 전하며, 김해만의 피크닉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오쏘파인 맥주





기획 및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이루다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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