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영 Sep 18. 2020

[윤리에세이] 알고보니 오류와 원래그래 오류

세상에 원래그래도 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Copyright (c) ullimcompany, all rights reserved



이미지 출처 : https://my.blogkor.com/es/984356/


학창시절 까칠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절하게 말해도 될 것을 지나치게 날선 표현을 하는 친구의 의중이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처음에 까칠하게 대하다가 나중에 조금만 잘해줘도 사람들이 좋아하거든~
난 내 첫인상이 까칠한 게 더 편해” 



친구의 대답을 다시 풀어보자면, 친절에 대한 기대치를 의도적으로 낮추어두면 나중에 보통수준의 친절만을 베풀어도 체감 친절도는 높아진다는 일종의 관계 전략이었던 셈이죠. 

이런 친구의 전략을 한 선배는 “알고 보니 오류”라고 명쾌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까칠한 줄 알았던 친구가 어느 날 의외로 친절한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은 “알고 보니 걔는 착한 아이 더라~ 한번 마음을 열면 세상 진국이야”라고 착각한다는 것이죠. 알고 보니 오류는 평가절상의 효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번의 반전행동이 이전의 부정적 행동을 흐리게 하는 효과이죠.

이와 반대의 결과도 있습니다. 

늘 친절하던 사람이 어느 날 화를 내면 “알고 보니 걔 착한 아이가 아니더라고. 그동안 착한 척한 거였지 뭐 야~”라고 평가절하한다는 것이예요. 사실 누군가 늘 친절하다면 심리의 건강상태를 의심해 봐야해요. 내가 피해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친절하다면 그것은 건강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누군가 한번 화를 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 전부를 단적으로 평가해서는 안되요. 이건 미성숙한 자세입니다. 


이와 비슷한 오류 중 “원래 그래 오류”도 존재합니다. 늘 나쁜 짓을 도맡아 하는 친구가 있다고 가정해보세요. 어느 날 누군가의 지갑이 없어지고, 범인이 바로 그 친구라고 밝혀져요. 사람들의 반응은 아마 이럴 것입니다. “그럴 줄 알았어. 걔는 원래 그래~” 그런데 그 친구가 반성의 기미도 없고, 이미 훔친 돈은 다 써버렸으니 맘대로 하라고 버팁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요? 맞아요. 아마도 “어쩔 수 없지. 걔는 원래 그러니까~”라고 말해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심각한 오류가 숨어있어요. “원래 그래”라는 한 문장에 사건의 심각성이 휘발되어 버립니다. 동시에 피해자의 고통도 휘발되어 버리고 말아요. 때에 따라서는 피해자에게 이해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걔는 원래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라고 말이죠. 

“원래 그런” 그 친구는 참으로 편리하게도 본인의 잘못을 그 문장 뒤에 숨겨버립니다. 그리고 아주 손쉽게 “원래 그래”라고 변명해버립니다. 자신도 그 말한마디면 이해 받는 편리함에 죄책감은 둔화되어 버리고 말아요. 왜?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요. 


원래 그렇다는 일종의 프레임은
사고의 심각성을 가리고, 죄책감을 무디게 하며, 반복하는데 망설임을 줄여줍니다. 너무나 편리하게 가해자의 가해성은 가벼워지죠. 


물론 법정에서의 형량은 객관적이겠지만, 사회적 죄의식은 쉽게 휘발되어 버립니다. 그저 원래 그렇다는 프레임 뒤에 숨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죠. 자신의 잘못을 이해 받기 위한 사람들의 변명을 들어봐도 이와 비슷합니다. “제가 원래 좀 그러잖아요. 이해해주세요” 제3자는 원래 그런 사람을 쉽게 이해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원래 그러니 이해해주고, 피해를 복구할 여력이 없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 어쩔 수 없이 참아 달라는 것이 쉽게 수용될 수 있을까요?

음주운전으로 몇 번이나 적발된 유명인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도 “또? 그럴 줄 알았어.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라고 심각성이 휘발되는 표현을 합니다. 누적된 부도덕한 행동으로 입방아에 오르는 정치인을 보고 사람들은 또 쉽게도 “또? 그럴 줄 알았어. 정치하는 사람들은 원래 다 그렇잖아”라고 평가절하된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원래 그렇다는 프레임을 만들어주어서는 안됩니다. 쉽게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재발을 막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원래 그렇다고 단정짓지 말고 재발방지를 위한 촉구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늘 반복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늘 비윤리적 행위를 반복한다면, 피해사태를 직면하고 책임감있는 후속조치를 요구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세상에 원래 그래도 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저도 당신도 그리고 원래 그렇다는 소리를 듣는 그도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윤리에세이] 나만 아니면 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