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원 Mar 02. 2020

보아라, 그리고 절망하라

미드 <브레이킹 배드>

(본 리뷰에는 브레이킹 배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작 미드라기에 처음엔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플롯을 기대하고 보기 시작했다.
물론 <브레이킹 배드>는 줄거리 자체로도 흥미진진하다.

- 폐암에 걸린 화학교사가, 가족들에게 유산을 남겨주기 위해 마약왕이 되는 이야기

하지만 브레이킹 배드의 플롯이 가진 힘은

이야기에서 매우 일부분일 뿐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가장 뇌리에 박혀있는 것은
주인공 월터의 인생이다.
사실은 이 드라마를 보는 걸 가장 힘들게 만든 장본인이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는

드라마에서 떠나는 걸 막고 있는 장애물이 된 것이다.

시즌 2가 되도록 브레이킹 배드를

다 식은 밥 먹듯이 꾸역꾸역 볼 수밖에 없던 건
주인공인 월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높은 자존심과 낮은 자존감이 낳은 열등감.
그로 인해 제시에게 가스 라이팅도 서슴없이 하고,
가족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범죄를 저지르는 그의 모습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 회까지 모두 보고 나니

그 모든 감정들이 결국엔 애증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그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노벨화학상을 받고, 미국에서 손에 꼽히는 기업의

CEO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이
작은 학교에서 듣지도 않는

학생들 앞에서 화학을 가르치고,
돈을 벌기 위해 부업으로 세차장에서 일한다는 것.
그게 얼마나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을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마지막 시즌에서 스카일러에게
마약왕이 되는 과정에서 느꼈던

희열과 성취감을 고백하던 그 장면에서
나는 그가 폐암에 걸리기 전 느껴온 비참한 감정을
마약을 만들게 된 과정에서 모두 상쇄했다는 걸 깨달았다.
월터는 결국 폐암이 아닌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 마약 제조실에서 죽는다.
그가 선택한 자업자득인 것이다.




5개의 시즌에서 만난 모든 캐릭터의 모습에서
나는 인간이 얼마나 다채로운 면을 가지고 있는지 보았다.
양아치 제시가 가진 순수한 영혼.
가족을 지키고 싶었지만

바람까지 피웠던 스카일러의 망가진 삶.
악당인 줄 알았던 마이크와 프링의 의리와 믿음까지.

그런 모습은 두세 시간짜리 영화에서

담을 수 없는 면모였다.
중요한 캐릭터들이 위기에 빠지고 몰락할 때마다,
내 영혼 역시 벽에 부딪치는 것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사람이 죽고 이야기가 끝나면
모든 것들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평온해진다.

하지만 길 위에 적힌 오지만디아스의 글처럼
브레이킹 배드를 보게 된 이상

마치 형벌처럼 전과 같지 않은 나를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My name isOzymandias, king of kings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들의 왕


Look on my works, ye Mighty, and despair!
내가 세운 것들을 보라, 위대한 자들아, 그리고 절망하라!

Nothing beside remains, Round the decay
아무것도 없었다네, 둘러싼 부식과


Of that colossal wreck, boundless and bare
거대한 균열 사이 경계모를 헐벗음이


The lone and level sands stretch far away.
외로운 모래의 지평선이 끝없이 뻗었을 뿐이었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