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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 Sep 26. 2016

'몸 값', 사려다 팔리고 말았네

처음인 여고생과 자고 싶었던 남자의 운명은?


단편 히치하이킹, 두 번째 영화 '몸 값'



교외의 모텔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남성을 그를 기다리고 있던 여성이 넉살 좋게 맞이한다. 남녀는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교복을 입은 여성은 여고생으로 보이고, 남성의 외모는 적어도 30대 후반, 혹은 40대로 추정된다.


남녀는 막힘 없는 대화를 이어간다. 목적이 다분해보이는 만남이다. 남자는 '처음인' 여고생과 섹스를 하기 위해, 즉 소녀의 처녀성을 사기 위해 이 먼 교외 모텔까지 찾아왔다. 하지만 그 목적의 윤리성과 별개로 대화의 내용은 더없이 일상적이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의례적으로 서로의 외모를 칭찬한다. "키가 진짜 크시네요"라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아저씨도 멋있으세요"라고 화답한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와 "아하하하"라는 기계적인 웃음이 뒤이어 어우러진다. 남자는 자신의 나이를 18세라고 소개하는 여자의 말에 나직이 "좋다"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키도 크고, 친절하고, 단아한 인상에, 나이도 어린 여자가 남자는 족히 마음에 든 표정이다.


여고생의 말씨는 조금 느리고, 여유가 있다. 당돌하기보단 친절하다. 그 나긋한 말투로 내뱉는 한 마디는 아주 자연스럽게 남자의 의심에 불을 지핀다.


"저 혹시, 담배 피우고 있었는데 마저 피워도 될까요?"


이충현 감독 '몸 값' 예고 영상 화면 캡처



스포일러



영화 '몸 값'(감독 이충현, 14min, 2015)이 소재와 배경으로 삼은 것은 '원조교제'로 지칭되는 성매매 현장이다. 성인 남성들이 '조건 만남'을 통해 미성년자 여성들의 성을 구매하는 행위는 이미 많은 작품들을 통해 재현돼왔지만, '몸 값'의 스탠스는 조금 특별하다. 소재는 심각한 사회 이슈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고발하거나 세태의 원인을 파헤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관객은 현실과 풍자를 오가며 고갈 없이 대사를 주고 받는 두 남녀의 대화를 가만히 따라가면 된다.


다시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텔방으로 가 보자. 여고생 주영(이주영 분)은 남자(박형수 분)를 능숙하게 맞이하고 피우던 담배를 마저 피운다. 남자는 주영 못지 않게 능청스럽다.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셔서"라며 흡연에 양해를 구하는 주영에게 "왜 싫어해, 담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라며 몹시 포용적인 (성구매) 어른인 양 굴지만, 추궁은 시작된다. 언제부터 피웠는지, 혹시 본드도 불어봤는지. 그리고 의심의 끝은 명료하다.


"너, 그런데 처음은 맞는 거지?"


남자의 의식은 정확히 이와 같이 흐른다. '여고생이 담배를 피운다->얌전한 학생이었을 것 같지는 않다->많이 놀았겠지->그럼 남자랑 자보지 않았을까?->처녀 아닐 것 같은데...' 그리고 '처녀 검증'을 위한 남자의 요구 조건이 이어진다. "피가 났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그것이다. 하지만 능숙한 여고생 주영은 곤란하고 또 미안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응수한다.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손으로..." 주영은 담임의 성추행으로 인해 피는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며 남자의 요구를 피해가려 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 두 남녀의 대화를 보는 관객의 감상을 가로지른다.


남자는 '피를 보여줄 수 없는' 여고생에게 애초 약속했던 100만 원을 다 줄 수 없다고 선언하고, 통상 원조교제 수준의 금액으로 주영의 몸 값을 깎으려 한다. 이를 납득할 수 없는 주영과 남자 사이의 신경전은 계속된다. 남자는 주영에게 다니는 학교 이름을 묻고, 주영은 그만 입고 있던 교복에 새겨진 이름과 다른 학교명을 대고 만다. 단지 원조교제로 만난 남성에게 신분을 숨기고 싶어서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게 다는 아니다.


까다롭게 구는 남성에게 주영은 입가에 웃음을 담고 묻는다. "아저씨, AB형이죠?" 까칠해진 낯선 남성과 단 둘이 방 안에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 게다가 몸 값이 대폭 깎여나갈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라곤 믿을 수 없는 여유다. 사실 처음부터 승자는 주영이었다. 곧 남성은 이 베테랑 여고생의 계략으로 어딘가에 눕게 된다. 아쉽게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여고생과 하룻밤을 보낼 침대가 아닌, 수술대일 것이다. 어색했던 단발 가발을 벗어던진 주영은 성큼 성큼 걸어 가 옥상 문을 열어제낀다. 은밀한 장기밀매 사업의 수많은 복무자들이 뻐끔 뻐끔 담배를 피우며 '건수'를 찾고 있다. 모두 여성이다. 물론, 모두 교복을 입었다.


이충현 감독 '몸 값' 예고 영상 화면 캡처

몸을 사려다 몸이 팔리는



이 발칙한 반전의 이야기는 두 커다란 사회 문제를 나란히 소재로 삼아 완성됐다. 음지에서 여전히 성행 중인 성매매, 구체적으로는 미성년자 성매매인 '원조교제'로 영화를 열고, 장기적출 및 매매라는 또 다른 범죄로 반전을 꾀한다. 단편 중에서도 러닝타임이 짧은 편에 속하지만, 충실한 구성의 범죄물이라기에 손색이 없다.


그간 '원조교제'를 소재로 한 영화 속 반전의 상황이란 '조건 사기'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원조교제'를 원하는 척 하다 되려 법을 어긴 남성의 모습을 촬영해 돈을 뜯어내는 이들의 이야기가 예측 가능한 반전의 시퀀스였다. '몸 값'의 결말이 뿜어내는 신선함은 이런 기시감에서의 이탈에 기인한다. 범죄의 주체와 종류를 단번에 뒤집어버리는 그 대범함이 놀랍다. 몸을 사려던 자의 몸이 되려 팔릴 대상이 되면서, 주체는 객체로 전락한다. 이 순간 두 인물의 권력 구도는 재빠르게 뒤바뀐다.


관객은 '처음인' 여고생과 자겠다는 일념 하에 외딴 모텔까지 굳이 찾아온, 미묘한 폭력성을 내비치며 여고생의 몸 값을 치열하게 흥정한 이 남자의 하찮음에 지속적으로 놀랄 것이다. 그리고 처녀성을 미끼로 미래의 희생자를 손쉽게 찾아낸 인신매매 조직의 무시무시한 발상에 두 번째로 놀랄 법하다. 결국 이것이 영화의 반전을 가능케 한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주영이 한 순간에 가발을 던져버리는 순간, '여고생-아저씨' 관계에서의 전복된 권력에 통쾌한 놀라움을 느끼는 것도 관객의 몫이다. '처녀성'으로 가치가 상승했던 여고생의 '몸 값'이 남자의 장기들이 지닌 또 다른 의미의 '몸 값'으로 치환되는 과정은 제목의 중의성과도 탁월하게 호응한다.


'몸 값'은 지난 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뒤 올해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4만번의 구타 부문 최우수작품상과 Btv 관객상을 수상했다. 제33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도 부산시네필어워드와 심사위원특별상을 거머쥐었다. 여기에  제10회 대단한단편영화제 작품상과 관객상까지, 지난 1년 간 상영된 단편영화 중 단연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작품임에 분명하다. '몸 값'은 곧 열릴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국내 경쟁 본선에도 올라 또 한 번 관객을 만난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에겐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가 가장 가까운 기회다.


***'단편 히치하이킹'이 다룰 세 번째 영화는 '세이프'(감독 문병곤)다. 한국 감독의 작품 최초로 지난 2013년 제6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단편 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해 화제가 된 영화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이후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배우 이민지가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몸 값'에서 '세이프'로의 히치하이킹은 제목이 지닌 중의성을 기반으로 치밀한 구성을 선보인 수작이라는 공통점 아래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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