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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ola Jeju

제주 영어 가이드가 된 이유와 삶의 변화

제주에서 외국인 가이드요?

by Soraya

"제주에서 외국인 가이드요?" 내 소개를 들은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되묻는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됐는지, 생계를 이어갈 수는 있는지, 그리고 정말 제주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지. 그 질문에 이제는 대답할 수 있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분명한 나의 선택이었다. 제주에서의 삶은 나를, 그리고 우리를 더 우리답게 만든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전까지 나는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을 하는 경기러였다. 중남미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에서 인솔자 겸 오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일은 재밌고 만족했지만 사실 내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시간은 출퇴근 지하철이었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여행은 멈췄고 나는 힘든 시간을 거쳐가야 했다. 스펙이 좋아도 나이가 많고 경력도 엉망진창이다 보니 작은 회사조차 나를 채용해주지 않았다. 꽤 힘들었다. 그러다 회사 다니느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던 관광통역안내사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처음엔 경복궁 2~3시간 투어를 하고 하루 5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출퇴근 지하철은 마찬가지였다. 출근길은 오히려 더 멀어져 지하철만 왕복 두 시간이 넘었다. 그래도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배 가이드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고 실전에도 나가면서 천천히 경험을 쌓았다. 그러다 우연히 채용사이트에서 제주 여행사 영어가이드 모집 공고를 봤다. 정말 별생각 없이 바로 지원했다. 나의 장점이나 단점 중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한다는 거다. 화상 면접 후, 제주에 가서 2차 면접까지 보고 바로 합격했다.


그 당시 남자친구(현 남편)는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만난 지 일 년쯤 되었고 남자친구는 결단을 내렸다. 이렇게 보내면 헤어질 것 같다면서 본인도 함께 제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남자친구는 제주 내려가기도 전에 두 군데 면접을 보고 모두 합격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제주로 내려갔다. 마침 남자친구의 전세 만기 날짜도 다가왔다. 운명이었다.


서울에서의 삶은 어찌 보면 곧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서울'의 분노에 가끔씩 놀라곤 했다. 출퇴근 시간의 버스와 지하철에서 특히 그 분노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나도 그 분노에 전염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남자친구도 나처럼 서울을 좋아하지 않았다. 둘이 제주로 여행을 갈 때면 항상 '나중에' 꼭 제주에 와서 살아보자고 얘기하곤 했었다. 이렇게 결정하고 보니 어차피 나중에 와서 살 거, 몇 년 좀 일찍 가면 어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제주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정말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특히 우리는 제주로 이주하면서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돈과 일보다는 항상 마주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더 감사하게 되었고, 저녁에 술 먹으러 나가는 일이 없어졌다. 카페에 가지 않고, 대신 바다 앞에서 캠핑의자를 펴고 앉아 말없이 노을을 보게 되었다. 구조견 봉사활동을 나가면서 좋은 사람들과의 건강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육지보다 친구는 많이 없지만 오히려 삶은 훨씬 더 가까워졌다.


길은 알고 나서 걷는 게 아니라, 걸으면서 알게 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제주에 온 건 새로운 삶을 선택하겠다는 용기보다는 우연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우연이 모이면 운명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운명처럼 제주로 이주했다. 더는 미룰 수 없는 마음이었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여행이 더 깊어지게 돕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함께 웃고, 울며, 가끔은 조용히 함께 걸어주는 존재로. 변화된 삶 속에서 우리는 제주에서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는가'로 삶의 중심을 옮겼다. 누군가에게는 낯선 길이지만, 나에게는 가장 나다운 길. 그 길을 찾아 걸어본다. 길은 알고 나서 걷는 게 아니라, 걸으면서 알게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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